별 하나의 추억과 별 하나의 사랑 | |||||
작성자 | 최요한 기자 | 작성일 | 2024-01-02 | 조회수 | 1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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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주 (2016)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는 윤동주 시인의<서시> 중 한 구절이다. 일제 강점기 윤동주 시인은 자신의 삶을 떳떳하게 살아가기 위해 노력했던 ‘민족시인’이다. 많은 문인들이 절망했던 1940년대 한국 문학의 빛을 밝혀준 윤동주의 생애를 영화 <동주>를 통해 소개하고자 한다. 윤동주는 고종사촌 송몽규와 함께 연희전문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당시 같은 방을 사용했던 강처중과 함께 문학을 공부하며 우애를 쌓는다. 1939년 일제는 학생들에게 창씨개명 할 것을 요구했지만, 윤동주는 졸업 직전까지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연희전문학교 졸업 후 동경 입교대학 문학부 영문과 입학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히라누마 도쥬(平沼東柱)’라 개명하게 됐다. 우리 민족 자체를 말살해 버리는 굴욕적인 일제의 정책을 따를 수밖에 없었던 윤동주는 자신의 삶을 반성하고, 새로운 삶을 살겠다는 의미로 ‘참회록’을 작성했다. 이후 일본에서 수업을 받고있던 윤동주는 교련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군인들에게 머리카락을 잘리는 수모를 당하게 된다. 이런 부당함을 피하고자 송몽규가 재학 중이던 도시샤대학으로 편입한다. 그러나 둘의 재회는 그들에게 곧 불행으로 다가왔다. 송몽규는 과거 독립운동 전과가 있어 일본순사의 특별감시 대상이 되었고, 윤동주는 같이 생활했다는 이유만으로 함께 투옥되었다. 일제는 당시 투옥된 죄수들에게 정체 모를 약물을 투입해왔으며, 윤동주와 송몽규 역시 실험대상이 되었다. 결국 1945년 2월 윤동주는 끝내 광복을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사람들 마음속에 살아있는 진실을 드러낼 때 문학은 온전하게 힘을 얻고 그 힘이 모여 세상을 바꾼다”는 영화 속 대사가 있다. 윤동주는 자신의 글을 통해 대한독립을 응원했던 것이다. 암울했던 시기 우리 문학의 빛을 밝혀준 시인 윤동주를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이유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