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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회 문수문예] 소설 가작 <구원>
작성자 이** 작성일 2021-12-03 조회수 270

소설 삽화.jpg

 

커피 한잔할래요?” 은하는 바닥에 시선을 떨구었다. 또래 아이들에게 모래 장난에 끼워 달라고 부탁하는 쑥스러움 많은 소녀처럼 자신 없지만 정확하게 말했다.

 

구원이란 시공간에 한정되지 않는 성육신의 죽음이 요구되는 거룩하고도 잔인한 사건을 요구한다. 그러기 위해서 인류는 스스로 죄인으로 전락시켜야만 했으므로 당신은 벌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네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고 말았다. 죄인이라면 응당 벌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정말로 그렇다라고 대답하는 순간 우리는 주기적으로 의사를 만나 상담을 받아야 할 것이다. 만약 죄인이 없다면 구원도 필요 없다. 만약 구원이 필요하다면 벌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벌을 받고 있다면 당신은 죄인임이 밝혀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구원을 기다리면서도 벌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그렇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해야 하는 아이러니에 처해있다.

 

정말로 네 그렇습니다.”하고 대답을 하는 바람에 주기적으로 의사의 상담을 받는 사람에게 어쩌면 커피 한잔할래요?” 하는 질문만큼 적절한 구명 튜브도 없으리라고 은하는 생각한다. ‘요즘 어때?’는 첫 마디로 너무 부담스러워서 상대를 움츠러들게 하기 십상이다. 무작정 즐거운 얘기를 하거나 자신을 드러내는 이야기만 하면 상대의 반감을 사기에 충분하다는 것이 은하의 생각이다.

 

그 한 마디에 대하여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누군가의 구원사 속-은하에게 또한- 11절을 담당하는 한 마디로서 둘도 없이 적절한 첫 문장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은하는 자신이 그러한 구원사의 간증임을 믿고 있다.

 

은하는 가서 전하라는 예수의 명령을 따라 살고자 하여 오늘도 카페로 출근했다. 말이 좋아 출근이지 대부분 그녀의 업무는 이러하다. 먼저 카페의 출입문이 보이는 가장 구석진 자리를 선점한다. 그녀의 자리에는 벽에 붙은 긴 소파가 있고 원형 테이블 하나를 사이에 두고 등받이 의자가 놓여있다. 그 의자 옆에는 몬스테라 화분이 놓여있다. 소파에 앉은 은하는 가방을 풀고 성경책을 꺼내어 눈을 감은 채로 손을 더듬어 펼친다. 그녀는 모든 일에는 신의 섭리가 있으므로 우연으로 보이는 일일지라도 실은 우연이 아니라 일어나야 할 일이 일어나는 것이며, 따라서 어떤 사건이 우연으로 보이면 우연으로 보일수록 그 속에 내재 된 신의 음성은 더욱 뚜렷해지는 법이라고 믿고 있다. 그렇게 선정된 이른바 오늘의 말씀을 받아든 그녀는 마치 실제 음식을 씹 을 때처럼 입을 오물거린다. 그리고 신에게 기도한다. ‘오늘도 저에게 일어나야 할 일들이 모두 일어나도록, 하나도 빠짐없이 당신의 뜻을 받들 수 있도록 하소서.’ 읊조리다 보면 매번 달라지긴 하지만 그녀의 기도는 이러한 범주를 크게 벗어나는 법이 없었다. 경건의 시간이 끝나면 그녀는 퇴근하기까지 카페의 출입문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기다리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인연의 탄생이 그러하듯이 은하 역시 자신이 기다리는 사람이 누구인지 모른다. 다만 그 미지의 대상은 결국 자신을 사랑하게 되리라는 확신과 결국 그 사람은 자신을 떠나가게 될 것이라는 믿음, 마지막으로 그 사람은 무조건 죄인임이 틀림없다는 사실이었다.

 

상대는 아무런 답이 없다. 은하는 깍지를 끼고 팔을 축 늘어트린 채 남자의 답장을 기다리고 있다. “저기요.” 은하는 들숨을 크게 마시고 다시 한번 말했다. “저랑 커피 한잔하실래요?” 물론 은하도 알고 있다. 그 사람은 은하의 말을 듣지 못했거나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불렀으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답장을 지연시키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자신이 너무도 역겨워서 그 누구도 자신에게 다가오고 싶지도 않으리라, 만약 누군가 다가온다고 할지라도 결국 떠나 가리라고 믿고 있으므로 어떤 우연도 발생시키고 싶지 않은 상태에 있었다. , 그는 어떤 초대도 들일 수 없을 만큼 망가진 우체통을 두었기에 그녀의 부름에 응할 수 없는 상태였다. 그래서 그는 얼음만 담긴 채 땀을 흘리며 소멸하고 있는 플라스틱 컵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 그의 상황을 충분히 짐작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은하는 마치 제 목소리가 너무 작아서 듣지 못했군요? 그렇다면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라는 듯이 말을 걸었다.

 

그제야 남자는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왼편에 있는 은하를 보기 위해서 턱보다 눈동자를 먼저 움직인 후 천천히. 은하의 발에서부터 다리와 상반신을 지나. 금세 은하의 얼굴이 보였다. 끝내 고개를 모두 돌리지 않았다. “저한테 말씀하신 거예요?” 남자는 은하의 인중과 손 사이에서 시선을 움직이며 낮고 더듬더듬 물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제가 살게요.” 은하는 이미 상대가 승낙이라도 했다는 듯이 메뉴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커피가 싫으시면 차를 마시거나, 조금 이르지만, 저녁을 먹으러 가도 좋아요.” 은하는 상대의 부담을 덜어주는 특유의 편안한 미소를 지으며 남자를 바라봤다. 남자는 여전히 은하의 눈을 피하고 있었지만, 눈동자는 열심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는 은하와 눈이 마주치기라도 하면 모든 것이 끝나게 되어있다는 듯 훑어보았다. 그는 거절해야 할 것인지, 한다면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거절했다가 상대방에게 실례를 범하는 것은 아닌지, 거절을 하는 게 당연하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덜컥 두려워졌다가도, 혹시 아는 사람이었던가. 그는 기억 속 앨범을 꺼내 빠르게 훑느라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선약이 있어서요.”

좋아요. 그러면 그전까지만 시간을 내주세요.” 남자는 이쯤 되니 다단계나 사이비 종교를 전파하는 사람이 틀림이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아까와는 다른 부류의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그사이 은하는 자신의 가방을 가지러 갔다. ‘하나님, 당신이 저를 통해서 하시고자 하는 모든 일을 하나도 빠짐없이 행하소서.’ 은하는 남자에게 접근하기 전부터, 남자와 대화하는 동안마저 단 한 순간도 쉬지 않으려 했던 기도를 마음속으로 읊조리며 가방을 챙겼다.

 

8월 한국, 비가 하루 내릴 때마다 무더위는 성큼성큼 뒷걸음질 쳤다. 카페에는 ‘Norah Jones ? What am I to you’가 재생되었다. 기석은 진열대에 팔을 괴고 음악을 흥얼거리며 자신의 사장이 그녀만의 괴팍한 업무를 진행하는 광경을 지켜보고 있다. 사장은 기석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는다. 사장은 애초부터 카페 내 기석에게 맡겨진 어떤 업무에 관해서 감 놓아라, 배 놓아라 한 일이 없었다. 카페 내에서 자신을 사장으로 대하지 말 것 한 가지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기석이 이곳에서 일한 지도 벌써 3년이 지났다. 처음에는 학비를 벌 목적으로 6개월 정도만 일할 작정이었지만 학교로 돌아 가리라 다짐한 반년이 지나고도 그는 여전히 이 카페에 남아있게 되었다. 학교로 돌아 가봤자 그 어떤 환경도 그를 받아 들여주지 않으리라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단순히 복학생이 느끼는 두려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기석은 자신의 삶에 희망이 없었다. 학교를 졸업한다고 해서 무엇하나? 그는 사람들은 일찍이 ··이라고 싸잡아 부르는 인문학도였다. 기석은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사실만으로는 세상 그 누구도 돈을 주지 않는다고 믿게 되었다. 능력이 뛰어나거나 운이 좋아야 한다. 당연한 일이다. 결과의 평등만을 원하는 태도는 나약한 것이다. 설령 그 바람이 부모의 부고로부터 강화된 것이라 할지라도 세상은 기석의 응석을 받아줄 수 있을 만큼 여유로운 공간이 아니었다.

 

그런 기석을 두려움에서부터 해방해 준 존재는 오직 여기 카페뿐이다. ‘save’라는 카페의 간판은 기석에게 있어서 유일한 실재였다. 따라서 기석은 열심히 일했다. 비록 그의 업무 중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이라곤 지금처럼 팔을 괴고 사장님의 특별 업무를 흘겨보는 일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기석이 3년간 지켜보고 정의 내린 사장님의 업무는 일종의 자선사업이었다. 그가 보기에 사장은 곧 세상이 망한다고 믿고 있거나 이미 ?적어도 그 사람의- 세상이 망했으며 곧 자신도 함께 소멸할 것이기에 그에 대한 마음을 준비함에 있어 마지막 단계에 돌입한 사람처럼 여겨지는 사람들에게만 접근했다. 단순히 실패의 냄새가 짙은 사람들에게 다가갔다는 사실만으로 자선사업가라고 정의 내린 것은 아니다. 그의 사장은 그 사람들과 깊은 관계에 돌입한 것처럼 보였다. 그 사람들과 사장님이 함께 카페에 등장하는 기간은 짧게는 3개월에서 길게는 6개월 정도에 그쳤는데, 그녀와 만나는 그 짧다면 짧은 기간 동안 상대는 패배자의 모습이 말끔히 지워져 있었다. 오히려 날 때부터 부족함 없는 사랑을 받으며 자란 건강한 영혼을 지닌 사람으로 보였다. 항상 그쯤 되면 사장과 익명의 연인은 다시는 함께 나타나지 않았다. 그리고 한 관계가 끝나면 사장은 마치 일반적인 사업가가 자신의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돌아와 다음 프로젝트를 준비하듯이 다시 그녀의 자리로? 몬스테라 화분 옆, 출입문이 보이는 소파- 돌아왔다. 여기서 기석은 그녀를 사업가적인 면모와 자선활동에 열중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하영과 성현은 작동을 마친 드럼세탁기 속의 빨랫감처럼 뒤엉키어 널브러져 있었다. 성현은 그녀가 샤워하고 나오면서부터 쉬지 않고 재생되고 있는 음악을 끄거나 그녀의 휴대전화를 부수고 싶다는 충동을 억누르며 하영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었다. 미국 출신의 가수는 ‘What am I to you’하고 노래했다. 성현은 오늘 들었던 이 가수의?Norah Jones- 노래 중에서 지금 듣고 있는 이 노래가 가장 최악이라고 생각하는 중이었다. 특히나 ‘tell me darling truth’라는 가사는 혐오스러운 나머지 소름이 돋아 몸이 미세하게 떨리기까지 했다. 짧은 음악이었지만 당신에게 나는 어떤 존재냐?’라는 가사만을 반복하는 이 노래는 성현이 느끼기에 매우 수치스러웠다.

 

성현은 이제껏 만나왔던 여자들로부터 끊임없이 이런 종류의 질문을 받아왔다. 만나왔던 여자 중 그 누구도 자신의 마음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성현은 생각해왔다. 잠자리를 가지고자 한다면 사랑이 선행해야 한다는 사람-직접 선을 긋는 부류도 분명 존재했지만,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구술로 고백해야만 할 뿐만 아니라, 사랑을 구체적으로 느끼게 해주는 눈빛과 분위기를 더 중요시했던 것이 분명하다고 성현은 생각한다.-, 적어도 어느 정도 기간을 두고 지켜보기라도 해야 한다는 듯 행동하는 사람 등, 그는 그러한 끊임없는 의심과 확인받고자 하는 갈망으로 뒤덮인 관계에 염증을 느끼고 있었다.

 

성현은 여자들의 그러한 태도로부터 자신의 사랑은 상대방의 마음에 닿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그는 사랑과 성적 결합의 연역적인 연결고리가 어디서부터 유래했는지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으며 사랑의 결정체로서의 잠자리란 낭만주의에 근거한 구시대적인 유물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아직도 그런 사상을 자신에게 들이민다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이별을 고하던 그였다. 물론 그 역시 사랑을 갈망하는 청년임에는 자신이 두고 온 여느 여성들과 다를 바가 없었지만 말이다. 지금 그가 가진 문제는 이러한 까닭에서부터 발생한다. 하영의 품에 안겨 있으면, 그녀와 시간을 보내기만 하면 성현의 마음은 본인조차도 이해하지 못하는 단어들을 제멋대로 조합하더니 이내 목젖을 축축이 적시는 것이었다.당신에게 나는 어떤 존재이냐고.

 

우리 이제 나갈까?” 가만히 성현의 머리칼을 쓰다듬던 하영이 입을 열었다. “여기 근처에 내 동생이 일하는 카페가 있다고 했잖아. 오늘은 꼭 같이 가자.” 하영은 자신의 손에 가려졌다 나타났다 하는 성현의 정수리를 보며 말했다. “, 거기 이름이 뭐였더라?” 성현은 일부러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세이브. 벌써 몇 번째 말해주는 건지 기억도 안 난다.” 하영은 옅은 미소를 띠었다. “오늘은 꼭 내 동생을 소개해 주고 싶어.” 성현은 침을 삼켰다. 짧은 시간 정적이 흘렀다. 그동안에도 노라 존스의 노래는 쉴 생각이 없어 보였다. 성현은 어떻게든 빠져나갈 생각을 하고 있었다. 다시 그곳을 가야 하는 날이 오리라고는 상상도 한 적 없었던 그는 이미 그녀의 초청을 여러 차례 거절해왔었다. 성현에게 있어 세이브는 가장 외면하고 싶은 질문들만으로 가득 찬 상자와 같은 곳이었다. 그러나 그는 선뜻 거절할 수 없었다. 더는 적당한 변명거리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하영은 사소한 사건의 지평을 나뭇가지처럼 자라게 두는 일을 즐기는 사람이다. 자라면 자라는 대로, 왼쪽으로 뻗는다고 타박하지도 오른쪽으로 뻗는다고 타박하지도 않는다. 어차피 머릿속에서나 일어나는 일이다. 하지만 나무가 열매 맺는 일이 자연의 순리이듯이 다 자란 생각은 실천으로 옮겨야만 하며, 실천의 열매를 수확하는 시기만큼은 꼭 직접 개입하여-생각의 가지가 제멋대로 뻗게끔 둘 때와는 달리- 완수하는 데에 차질이 없게 해야 직성이 풀리는 편이다.

 

누구나 둥글게 살고자 하는 태도가 여러 방면에서 좋다는 말을 들어본 경험 있으리라 생각한다. 적어도 해롭지는 않으리라고 말이다. ‘둥글게 살아야 한다면?’이라는 문장에 뿌리를 둔 하영의 생각은 그녀가 이제껏 그래왔듯이 제멋대로 가지를 쳤으며 완벽하게 열매를 맺었다. 하영은 지금 그 열매를 수확하고자 한다.

 

열매는 현재 뿌리를 닮아 둥근형태를 유지하는 중이다. 그리고 뿌리를 따라 뻗은 생각들은 과거와 현재의 만남을 성사시키는 데에 있다. 하영은만약 시간이 원형이라면 어떠할까?’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안타깝게도 과거와 현재를 직접적으로 만나게 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범인들이라면 타임머신을 떠올려 공상으로 시간을 보내며 본인이 과거로 가서 과거의 사건을 바꾸는 상상을 하거나, 그 나비효과를 상상해보는 데에서 재미를 찾았겠으나 하영은 다르다. 그녀의 가지는 무럭무럭 자라 과거의 상징과 현재의 상징을 만나게 하면 시간의 원형을 비유적으로나마 완성할 수 있겠다는 데까지 미쳤다. 이제 다음은 간단했다. 그녀는 지금 현재와 함께 하고 있다. 남은 일은 현재를 과거와 만나게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성진은 커피 한 잔을 끝으로 길었던 형벌로부터 자신을 구원하러 갈 계획이었다. 가는 길에 우연히 이 카페를 발견했을 뿐인데 그는 자신의 구원사에 큰 차질이 생겼다고 생각하는 중이다. 그래도 괜찮다. 어떤 이야기에나 위기는 존재하는 법이니까 말이다. 이제껏 견뎌왔던 삶에 비하면 큰 고통은 아니라고 성진은 생각한다.

 

당신은 정말 괜찮은 사람 같아요.” 은하는 어깨를 움츠린 채 오른손에 집게손가락으로 빨대를 쥐고 커피를 휘휘 저었다. 성진은 아무런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는 듯이 얼음이었던 액체를 보고 있다. 남은 커피와 섞여서 연한 갈색이었다. “당신은 하나도 못 믿겠죠? 방금 처음 만난 사람이 대체 자신의 어떤 부분을 보고서 그런 말을 하는 건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되겠죠.” 은하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노래 한 곡이 끝났다. “그냥 봐도 알아요. 죽고 싶은 마음이 강한 사람일수록 실은 그건 죽고 싶지 않다고 말하고 있는 거예요. 최선을 다해서.” 성진은 주먹을 꽉 쥐었다. 카페 안에 다른 손님은 아무도 없었다.

 

아무런 흥미도 없다는 듯이 창밖을 보며 지나다니는 사람을 보던 기석은 정적 사이에서 사장이 하는 말을 엿듣고 있었다. 저런 말을 듣고 힘이 날 거라면 저런 상태까지도 가지 않았을 거라고 기석은 속으로 비웃었다.

 

이거 보여요?” 은하는 카디건을 걷어서 손목을 내밀었다. “오늘 처음 죽으려고 하는 거죠? 사람 그렇게 쉽게 안 죽어요. 그렇게 죽고 싶어서 힘줘서 칼로 손목을 그었어요. 계속. 한심한 게 그러고서 제 손으로 직접 구급대를 불렀어요.” 은하는 옅게 미소를 띠며 이마를 쓸어넘겼다. “지혈하면서 응급실에 가서 의사한테 제가 뭐라 그랬는지 아세요? 살려달라고. 제발 살려달라고 그랬어요. 한심하죠? 웃기죠?”

 

성진은 수치스러움에 고개를 들지 않고 있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들을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그깟 손목에 상처 하나로 자신을 다 안다는 양, 마치 자신이 그러했으니 너도 그럴 것이라고 단정 짓는 그녀의 말투. 자신은 어떤 죽음의 위기에 놓여도 절대 살려달라는 말은 하지 않으리라는 확인을 속마음으로 몇 번이고 받아내고 있는 성진이였다.

 

이만 일어나겠습니다.” 성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은하는 성진을 붙잡으려 했다. “저기.” 은하는 성진을 붙잡았다. “이거라도 가져가세요. 혹시 생각나거든 연락해주세요.” 은하는 손바닥만 한 성경책을 내밀었다. 성진은 한숨을 쉬며 은하의 손 위에 놓인 물건과 은하를 번갈아 보고는 코웃음을 쳤다. 은하는 바닥에 시선을 깔고 손만 내밀고 있었다. 그는 은하의 손에서 성경을 뺏어 문을 향해 걸어갔다.

 

안녕히 가세요.” 기석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성진은 성경책을 내팽개쳤다. 미닫이 유리문이 강하게 열렸다 닫히면서 바깥의 소리가 새어 들어왔다. 문은 쿵쿵하는 소리를 점점 줄여가며 차근차근 평온을 되찾았다. 기석은 아랫입술을 깨물고 눈을 질끈 감았다. 사장에게 가서 말을 걸고 싶은 마음을 꾹 억눌렀다. 그가 보기에도 오늘 그녀의 실적은 엉망이었다.

 

은하는 자리에 주저앉아 얼굴을 감쌌다. 그녀 자신도 이해할 수 없었다. 은하는 흐느끼며 낮게 깔린 안개처럼 기도를 되뇌었다. “하나님.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제발 용서해주세요. 저의 연약함을 용서해주세요.” 은하는 같은 말을 계속 반복하다가 의자에서 쓰러지듯 바닥으로 떨어져 무릎을 꿇었다. 그 과정에서 테이블이 엎어지고 남은 커피와 얼음의 기억을 아직 간직한 채 갈변한 액체가 쏟아졌다. 은하는 커피에 젖어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대로 손바닥으로 바닥을 짚고 고개를 떨구었다. 그녀의 머리카락이 바닥에 흘렀고 머리카락에는 커피가 묻었다. 그녀는 더는 주체할 수 없다는 듯이 소리 내어 울면서 기도를 이어나갔다.

 

기석은 깊은 내적 갈등으로 괴로워했다. 우리가 어려서부터 배워온 격률-어려움에 부닥친 사람을 도와주어야 한다.-을 지켜야 하는지, 이런 상황에도 사장과의 계약을 이행해야만 하는지의 기로에 섰다.

 

커튼. 커튼을 쳐요.” 은하는 절규에 가까운 목소리로 요청했다. 그리고 목에 울음이 막혀서 꺽꺽거리는 소리를 냈다. 기석은 발만 동동 구르다가 커튼을 치고, 출입문의 팻말을 돌려서 openclose로 바꾸었다. 그리고 천천히 걸어서 카운터로 향했다. 혹시나 도움을 청하면 즉시 달려 나가야 한다는 마음의 준비를 하면서.

 

왜 이렇게 잔인한데요?” 기석은 은하의 말을 듣는 즉시 자리에 멈춰 섰다. 정면에서 자동차가 달려와서 곧 추돌 위기에 처한 사람처럼 양 주먹을 허벅지에 붙이고 서서 은하를 바라보았다. “?” 기석은 어찌해야 할지 몰라서 되물었다. 카페 안에 다른 사람은 없었다. 따라서 당연히 본인에게 했던 말이라는 걸 인지하고 있었지만, 기석은 다시 한번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기석은 아직도 고민 중이다. 다가가도 되는지, 함부로 위로해도 되는지.

 

솔직히 말해봐요. 쭉 이상하다고 생각했죠?” 은하는 태어나서 처음 걸음마를 시도하는 4족 짐승처럼 말을 이어나갔다. 넘어졌다가도 다시 일어나는 듯이. “아니 저는은하는 그의 말을 가로챘다. “구원을 믿으시나요? 저는 알아요. 저를 구원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에요. 그럼 저 사람들은요? 저는 하늘의 일을 하는 거라고요.” 기석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어디서부터 어떻게 말을 시작해야 할지도 몰랐기에 그저 듣고만 있었다.

 

여기로 와보실래요?” 은하는 조금 진정된 듯했다. 기석은 용기를 내서 다가갔다. 은하는 자세를 고쳐 무릎은 그대로 꿇은 채로 허리를 세웠다. 그리고 기석을 바라보았다. “말해봐요. 당신도 저랑 자고 싶죠? 아닌가요? 아니라고 말하겠죠. 아뇨. 세상은 결국 그게 다예요. 그 누구도 사랑을 원하는 사람은 없다고요. 사랑을 원하는 척하면서 결국 아니었어요.” 기석은 조금 억울해질 지경이었다. 물론 기석 역시 그녀를 보고 설레는 마음을 가진 적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던 일이라고 기석은 생각한다. 은하는 누가 봐도 매력 있는 여자였다. 몸매를 꾸준히 유지하고 있으며 자신 외모의 강점을 알고 꾸밀 줄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억울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혼자 흥분해서는 자신마저 경멸의 대상이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에 뭐라도 말해야 한다는 열망에 사로잡혔다. 하지만 그렇게 한다면 은하는 완전히 무너질 것이다. 자신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도 않을 것이며, 더 강한 환멸의 대상으로 전락해버릴 것이 뻔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여쭤봐도 될까요?” 기석은 그녀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그녀를 바라보았다. 최대한 공감하고 있으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뜻을 나타내기 위해서였다. 은하는 고개를 들어 그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떨구었다. “버림받았어요. 그런데 잘 생각해보니 그건 구원이었어요. 그런 잔인한 구원은 둘도 없겠지만. 실제로 저는 그 사람 덕분에 지옥보다 더 최악의 삶에서 벗어날 수 있었어요. 이해할 수 있겠어요?” 그녀는 다시 고개를 들어 기석을 보았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떨구어 기석의 가슴께에 시선을 두었다.

 

담배 한 대만 더 피우고 들어가자.” 성현은 벌써 담배만 세 개비 째 죽여나가는 중이었다. 골목 모퉁이만 돌면 카페가 나온다. ‘세이브구원. 그는 담배를 입에 물며 라이터를 켰다. 앞서 불을 붙였던 열기가 그대로 남아 부싯돌이 뜨거웠다.

 

혹시 뭐 걸리는 거라도 있어?” 하영은 순진한 얼굴로 물었다. “아니. 그냥.” 말하는 동시에 담배 연기가 새어 나왔다. 성현은 은하를 생각하고 있다. 아직 그리워하는 마음에서 시작된 것은 분명 아니었다. 일종의 죄책감에 더 가까운 형태였다. 이렇게 다시 마주할 줄 알았더라면 그 카페를 그녀에게 넘겨주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처음으로 그 카페를 넘겨준 것은 최대의 잘못이었다고 뉘우치는 중이다. 이제 생각해보니 위치가 좋아서, 땅값이 올라서 따위의 금전적인 문제는 당연히 아니다. 모든 이별이 그러하듯 그 역시 재회를 기대한 적 없다.

 

현대의 결혼이라는 제도는 두 남녀를 엮어주는 사랑의 종착지와 같이 여겨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성현과 은하 역시 그 제도 안에 기꺼이 몸을 맡겼던 시절이 있었다. 은하는 깊은 사랑의 표현으로서 그 제도를 받아들였을지 모르겠으나 성현은 그저 도피에 가까웠다. 누군가 그에게 결혼을 강요했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 스스로 수많은 연애에 염증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은하에게서 다른 여자들이나 다른 연애와 다른 특별함을 느꼈기 때문도 아니었다. 그냥 시기상 적절했다고 그는 아직도 생각한다. 염증은 곪아서 곧 터질 지경이었고 제도 안에 갇히지라도 않으면 투신을 선택하고 싶을 지경이었다. 그는 사랑을 깊게 불신하던 사람이었다.

 

이혼을 결심하게 된 까닭은 연애보다 잔인한 결혼생활 때문이었다. 성현 역시 낭만적인 결혼생활을 기대했다. 더는 다른 사람을 만나며 불안해할 필요가 없으리라, 이미 결혼까지 한 마당에 사랑을 확인받고자 하는 여자의 요구를 들을 일은 없으리라 하는 등의 상상 말이다. 그러나 그건 지나치게 짧은 생각에서 비롯된 오만함에 가까운 상상이었다. 그러나 지금, 성현은 이해할 수 있다. 사람은 끊임없이 인정받아야 하는 존재임을,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당신에게 나는 어떤 존재이냐고 묻고 싶은 충동은 자연스러운 욕구라는 것을 말이다.

 

은하에게 있어 성현은 구원 그 자체였다. 당시 은하는 말 그대로 죽기 직전이었었다. 은하는 자신이 벌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던 사람이었다. 그 전의 이별을 모두 자신의 탓으로 돌려버렸기 때문이었다. 따지고 보면 그녀가 혼자 남겨진 것은 그녀가 이상한 사람이어서, 히스테리로 가득한 문제아여서가 아니었다. 상대가 하영이었을 뿐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일을 시작한 거예요. 아무리 나에게 아픔을 줬던 사람이었지만, 나는 그 덕에 살아남을 수 있었어요. 사람들을 돕는 거예요.”

 

기석은 최대한 은하의 말을 이해해보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망가진 사람에게 다가가서 그 사람에게 사랑을 주는 척 위로해주고 그 사람이 모두 치료가 되었을 즈음에 버린다니. 기석은 도무지 무슨 말을 해야 적절한 것인지 알 수 없어서 눈을 크게 뜨고 은하를 뚫어져라 쳐다보기만 할 뿐이었다.

 

그러니까 저는 일종의 의사 같은 거예요. 어차피 그 사람들 저 아니었으면 죽었을 목숨이에요. 그런 사람들을 거두어서 살려둔다면 그게 구원이 아니고 뭐겠어요? 제가 뭔갈 잘못한 건가요? 기석씨도 봤을 거 아녜요. 제가 이제껏 데려왔던 사람들이 어떻게 변했는지. 그 사람들은 아마 저에게 고마워해야 할 거예요. 저 역시 지금은 고마울 뿐이에요.” 은하는 자신 역시 그렇게 잠시나마 삶의 위로를 얻었던 경험이 있으니 그 사람들 역시 그러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어찌 보면 틀린 말이라고만 할 수도 없었다. 정말 그 사람들은 얼핏 보기에 괜찮은 사람이 되어있었으니까. 사장이 그들을 버린 이후의 결과는 모르지만 말이다.

 

그러면 결국 그 사람들이 사장님에게서 다시 상처를 받은 후에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말씀이신 거예요?” 기석은 겨우 입을 열었다. 최대한 침착하게 말하려 했지만 이해할 수 없는 분노가 울컥울컥 새어 나왔다.

 

말했잖아요. 어차피 그 사람들은 제가 아니었어도 죽을 사람들이었다고. 그 뒤에 무슨 일이 있든 그건 제 잘못이 아니에요. 원래 구원은 모든 사람에게 열린 게 아니라고 했어요. 그건 제 소관이 아니에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죠.” 은하는 기석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말했다. “우리의 삶에는 하나님이 던진 구원의 밧줄이 있어요. 그걸 가치 있게 여기는 사람만이 살아남는 거라고요. 자신이 죽을 위기에 처했다는 걸 모르는 사람들이 더 많아요. 구원을 받으려면 자신이 이미 죽을 위기에 처했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고요. 나는 하나의 밧줄인 거예요.”

 

아니, 사장님이 처음 힘들어했던 이유도 상실감 때문이었지 않나요? 당신이 그 전 사람들이랑 다를 게 뭔데요. 그럼 사장님은 진심으로 당신에게 상처를 줬던 사람들이 인제 와서 내가 널 구한 거야 넌 내게 감사해야 해하고 말해주길 원하시는 거예요?” 기석은 이제 화가 나서 물었다. 마치 자신이 이제껏 은하가 구원이랍시고 베풀었던 은혜를 입은 사람이라도 된 듯이 말이다.

 

거봐 열리잖아.”

출입문이 열렸다. 기석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커튼을 거두며 하영이 들어왔고 그녀의 등 뒤로 성현이 들어왔다. 수줍음 많은 아이가 어머니의 뒤에 숨어 고개만 빼꼼 내미는 것처럼 그는 최대한 자신을 숨기면서 들어왔다.


어서 오세요.” 기석은 최대한 분노를 감추고 웃어 보였다. “누나

오랜만이야. 잘 지냈어?” 하영은 잔뜩 들떠있었다. 드디어 열매를 수확할 수 있게 되었다는 생각에 기쁨을 감출 수 없는 마음으로 은하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런 하영을 보고 등 뒤에 숨어 있던 성현은 눈을 휘둥그레 뜨고 그녀의 뒷모습과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은하를 번갈아 보았다. 은하는 하영의 인사를 듣고 믿기지 않는 눈으로 서서히 고개를 들었다. 머리카락이 시야를 가려서 머리카락을 넘겨야 했다.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순간이었다.

 

10년 만이었다. 하영은 처음 그녀에게 사랑을 가르쳐준 사람이었다. 일반적으로 사랑의 개념을 이해하기 시작하는 시기는 부모의 품속에서일 테지만, 8살부터 양육원에서만 자란 은하에게는 그럴 기회가 없었다. 은하는 어려서부터 버림받은 사람이었다. 그런 그녀의 곁에서 사랑을 말하고 처음으로 신을 알려주고, 세상을 아름답게 바라보는 법을 가르쳐준 사람은 하영이었다. 그리고 세상은, 사랑은 말 한마디 없이 네덜란드로 떠나버려도 될 만큼 목표 앞에 무너지기 쉬운 개념임을 체험하게 해준 사람 역시 하영이었다.

 

인사해. 내 남자친구야.” 하영은 친구에게 남자친구를 소개하는 평범한 여자의 표정으로 얘기했다. “안녕하세요.” 기석은 꾸벅 인사를 하고 하영과 은하를 번갈아 봤다. “안녕하세요.” 성현은 최대한 태연한 표정을 지으려고 노력했지만 떨리는 목소리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는 허리를 숙여 기석과 은하에게 인사했다.

 

고마워. 두 사람 모두.” 은하는 자리에서 일어나 음료 제조대로 향했다. “사장님.” 기석은 아직도 상황을 이해하지 못해서 그녀를 쫓아가려고 했다. 은하는 기석의 기척을 느끼고 고개를 돌려 그를 째려보고 다시 걸었다. 하영은 큼직하게 자란 열매에 싱글벙글 웃으면서 순진한 표정으로 성현을 돌아보고 다시 은하에게 몸을 돌렸다. 성현은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은하가 말한 두 사람 모두.’에 자신이 포함되었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듯 어색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싱크대가 있고 싱크대에는 설거짓거리가 가득했다. 스테인리스 재질의 휘핑기, 빵을 담는 접시, 머그잔, 빵칼, 포크. 현재와 과거가 만나는 순간. 구원의 밧줄이 단단히 매어지는 순간이었다. “커피 한잔할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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