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대학교 | 울산대미디어
본문바로가기
ender

울산대신문

울산대신문

[제43회 문수문예] 수필 당선 <추억의 다른 이름>
작성자 이** 작성일 2021-12-03 조회수 237

수필.jpg

 

-중우가 와 글노? 

  할머니는 <동물의 왕국>에 나오는 오랑우탄의 콧구멍을 보다말고 나의 옷차림새에 관심을 보였다. 당연히 나는 중우가 무엇을 말하는지 몰랐다.

 

-할머니, 중우가 뭐예요?

-바지 말하는 거야, 바지. 

  이모는 바닥을 닦으며 넌지시 일러주었다. 할머니 눈에는 내가 입은 회색 트레이닝 바지가 이상했나 보다. 나는 열 살짜리 어린이를 대하듯 물었다.

 

-할머니, 내 바지가 이상해요?

-아니. 잠옷 같애. 

  무심한 대답을 툭 던진 채 할머니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려버렸다. 시월 가을의 햇살이 유독 따사롭게 들어왔다. 햇빛을 따라왔는지 말벌이 현관 입구를 왔다 갔다 하는 게 보였다. 온 몸이 새카만 녀석은 도시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크기를 가졌다. 말벌의 움직임에 따라 할머니의 신경이 예민해지기 시작했다. 할머니는 소리를 꽥 질렀다. 

 

-저 놈, 저거, 들어올라칸다! 

  할아버지는 요즘 할머니가 말벌이 나타나면 아주 날카롭게 반응한다고 말씀하셨다. 

 

  예전의 할머니는 독사도 맨손으로 잡던 사람이었다, 라고 엄마는 말했다.  

  나도 안다. 삼 년 전만 해도 할머니는 파리채로 말벌을 잡았다. 커다란 나방의 날갯짓조차 신경 쓰지 않던, 밭에서 발발 기어 다니는 지네도손으로 밀쳐내던 할머니를 기억한다. 엄마나 이모 그리고 삼촌들, 사촌 오빠나 사촌 언니들까지 모두 그때의 할머니를 알고 있다. 할머니만, 오직 할머니만이 삼 년 전 당신을 떠올리지 못하는 것이다. 어느 샌가 우리는 다른 인격의 할머니를 마주하고 있었다. 

 

  치매를 판정받은 후 일 년 동안의 할머니는 무기력하고 무신경한 사람이었다. 일어나서 걸을 생각도 하지 않았고 밥상을 차려 식사할 생각조차 없었다. 누가 오든 말든 우두커니 소파에 기대어 눈을 감은 채 숨만 몰아셨다. 그 숨소리는 바싹 마른 뿌리처럼 섬약하고 거칠게 느껴졌다. 

 

  이모와 엄마는 그런 할머니를 오전이나 오후만이라도 노인주간보호센터에 보내는 것이 좋겠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센터에 보내는 것을 꺼려하셨다. 뭐하러 그런 곳을 보내냐는 것이었다. 아마 생판 모르는 사람들에게 할머니를 맡기는 것이 못 미더우신 것같았다. 그리하여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그런 곳’으로 보내지 않기 위해 갖은 노력을 쏟기 시작하셨다. 할머니를 매일 책상에 앉혀 놓고 글공부나 숫자 공부를 가르치시고, 시조나 노래가사를 달달 외우도록 만드신 것이다. 

 

  할아버지의 별난 노력 덕분인지 아니면 약효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할머니는 차차 명랑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감정을 표현하는 것에 거침없고 솔직하게 속내를 드러냈다. 얼마나 솔직한가하면 자식들과 손주들이 준 돈봉투를 받자마자 열어보는 것이었다. 엄마는 웃음을 참으며 너희 할매 좀 봐, 라며 나의 옆구리를 툭툭 쳤다. 나는 엄중하고 진지한 표정으로 돈봉투 안의 지폐를 세는 할머니의 모습에서 새로운 종류의 슬픔을 맛보았다. 결국 명랑하고 순수한 할머니의 모습도 낯설기는 매한가지였다.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데없다, 어즈버, 태평연월, 꿈이런가,하노라! 

 

  할머니는 할아버지와 함께 박수를 치며 시조를 낭송했다. 뒤이어 다섯편의 시조를 더 낭송하고 난 뒤 할머니는 없는 노래도 지어서 부르기 시작했다. 할아버지가 낄낄 웃으시며 이제는 하다하다 노래를 다 짓네, 라며 할머니를 놀리셨다. 그러자 할머니는 정색을 하고 이건 만들어낸 노래가 아니다, 원래 있는 거다, 라며 완강히 주장하였다. 

 

  할머니의 주장에도 아랑곳 않고 할아버지는 일지를 쓸 시간이라고 하시며 종이와 연필을 들고 나오셨다. 어디서 나셨는지 맨 위에 ‘오늘의 기억’이라고 적혀 있는 일지의 형식은 꽤 정교한 기억들을 묻고 있었다. 기상시간, 식사시간, 오늘 먹은 음식, 만난 사람 그리고 기억에 남는 일 등을 적는 칸을 할머니가 어떻게 다 메꿀 수 있는지 의아했다. 할머니는 어제 오늘 일은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일지는 모두 할아버지의 도움으로 쓰인 것이었다.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기억력을 얼마간 재촉하시더니 곧장 답을 가르쳐주셨다. 할머니는 그저 받아쓰기를 하듯 할아버지가 일러주신 일상의 흔적을 적어나갔다. 할아버지는 매일 쓴 할머니의 일지들을 정성스럽게 철해 놓으셨다. 나는 한 장 한 장 일지를 들춰 보았다. ‘오전에 앞밭에가서운동 하고 오후애도 운동 하고 감자파 가지고 와서국끓여 먹엇다’라는 문장을 보는 나에게 할머니는 부끄러워하며 그만봐, 라고 웃으며 먹고있던 말린 대추를 절반 떼어 주었다.   

 

  나는 삶이 추억의 연쇄라고 믿어왔다. 추억이 있기 때문에 살 수 있고 추억이 삶을 지탱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할머니의 희미해져 가는 삶은 더 이상 삶이 아닌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순전히 할아버지의 지시에 의해 쓰인 일지를 보며 추억의 다른 이름은 사랑이었다는 것을알았다. 사랑이 있다면 지워져 가는 삶도 여전히 삶이다. 

 

<저작권자 ⓒ 울산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