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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모두 평등하다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
작성자 이** 작성일 2021-12-03 조회수 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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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2008)

 

 한강에서 숨진 채 발견된 의대생의 죽음은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졌다. 그러나 비슷한 시기에 공사 현장에서 사고를 당해 죽은 한 청년의 죽음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한 네티즌은 “같은 죽음, 다른 관심”이라며 이런 현실을 꼬집는 문구를 SNS에 올렸다. 사람들은 더 주목받는 것들에 대해 쉽게 관심과 동정심을 갖는다. 기자는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을 보면서 영화 속 유대인들의 죽음을 외면했던 것에 대해 반성했다. 

 

나치 장교의 아들인 주인공 브루노는 수용소에 갇혀있던 유대인 소년 슈무엘과 철장을 사이에 두고 친구가 된다. 인종 청소라는 명목으로 유대인을 수용소에 가두고 학살했던 나치 장교의 아들과 유대인 소년의 관계는 그 당시 유럽 사회의 잘못된 인식과 차별들을 뛰어넘는 아이들의 순수한 우정이었다. 그러나 나치 장교로 수용소에서 일하는 아빠를 보기 위해 슈무엘의 죄수복을 빌려 몰래 철장을 넘은 브루노는 가스실로 향하는 유대인들의 인파에 휩쓸려 결국 죽게 된다.

 

영화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점은 이야기의 흐름이 철저히 브루노의 서사에 집중돼 있어 수많은 유대인들의 죽음보다 나치 장교 아들의 죽음이 더 와닿고 슬프다는 것이다. 대다수의 관객 또한 평점 리뷰를 통해 “영화를 보는 내내 브루노의 상황에 몰두하느라 수용소에 갇힌 유대인들의 죽음에는 관심을 갖지 않아 부끄러웠다”고 말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하고 저마다의 서사를 갖고 살아간다. 우리가 브루노를 더 불쌍하게 여기고 유대인들의 죽음을 외면했던 이유는 동정심이라는 감정으로 사람을 차별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영화는 언론에 많이 다뤄진 사건일수록 사람들의 관심이 한 쪽에만 몰려 정작 주목받아야 할 일들은 외면받는 오늘날의 사회 현상을 지적한 것일지도 모른다. 물론 세상 모든 이들의 죽음과 아픔에 슬퍼할 순 없다. 그러나 ‘어느 한 사람의 죽음 또는 일을 더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지양해야 하지 않을까. 

 

 차재경 수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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