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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장칼럼] 비판을 받아들이는 자세에 대해
작성자 이** 작성일 2021-12-03 조회수 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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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비판의 자세로 기사를 쓰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 이번 신문 12면 설문조사에서 익명의 학우가 “에브리타임에 종종 올라오는 학내 논란에 대해 울산대신문이 직접 나서서 비판하지 않는 것이 실망스럽다”는 글을 남겼다. 이 글을 보고 기자는 편집국장으로서 부끄럽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절망스러웠다.

 

언론은 좋은 점만 다루는 홍보대사가 아니다. 잘못된 것과 부조리함을 바로 잡기 위해 사건의 경위를 명확히 알리고 비판하는 곳이다. 물론 한 권력 세력과 유착해 언론플레이하고 진실을 왜곡시킬 수도 있다.

 

그러나 애초에 언론은 부정부패를 포착하거나 대중들이 알아야 하는 정보들을 보도하는 등 사회가 그릇된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도록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우리는 민주주의 사회를 살고 있지만 한 개인이 부조리함과 비리를 파헤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에 언론이 이를 예의주시하고 대중을 대신해 감시와 견제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어떤 식으로 기사를 쓸 건데요?” 행사 취재를 간 기자에게 돌아온 관계자의 퉁명스러운 대답이었다. 정말로 어떤 식으로 기사를 쓰는지에 대한 궁금증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저 행사의 진행 상황을 물어본 것임에도 불구하고 관계자로부터 매몰차게 취재를 거절당했다.

 

이것이 한 번뿐이면 그러려니 넘기는데, 유독 최근 들어 이러한 상황들이 종종 일어나고 있다는 것은 학생 언론기구를 대하는 태도에 문제가 있다는 의미가 아닐까.

 

날이 갈수록 취재 활동이 쉽지 않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잘못된 것이 있으면 학우들을 대표해 비판하는 것이 학생신문의 역할임에도 기사를 쓸 때마다 “이런 내용을 다루는 건 안 좋아할 텐데”라는 생각을 하며 글을 고친다.

 

더불어 민감한 사안을 건드렸다가 당사자들이 신문사에 대한 편견을 가지면 후배들이 어려움을 겪을까봐 취재를 포기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기자가 학생신문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국장칼럼에 이런 글을 싣게 된 이유는 취재를 비롯한 신문의 비판을 피하기만 하는 현상에 대해 조금은 달라지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저 좋은 모습만 보여주려 하고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 것을 외면한 채 언론을 무시하는 태도로 일관하는 집단은 사람들에게 결코 선한 영향력을 미칠 수 없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 그러나 실수를 바로 잡지 않으면 소크라테스의 “검토하지 않은 삶은 살 만한 가치가 없다”는 말처럼 더 성장하지 못 하고 평생 그 자리에 머물 수밖에 없다.

 

비판은 상황을 파헤치기만 하고 혼란스럽게 하는 도구가 아니다. 당장 비판을 받는 사람에겐 나쁜 의미로 다가올 수도 있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잘못된 점을 고치고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발판이 된다.

 

그렇지만 비판을 하는 사람도 항상 자신을 돌아보며 성찰해야 한다. 익명성 뒤에 숨어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퍼트리거나 지나친 조롱을 하는 것은 사건의 논점을 흐리고 누군가에겐 상처를 줄 뿐이다.

 

제보가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제보자가 제시한 정황들에도 잘못된 사실은 존재할 수도 있기 때문에 각자의 주장을 묻는 크로스체크는 언론의 필수 요소다.

 

기자들은 각종 어려움에도 사명감 하나로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학우들의 알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열심히 발로 뛰며 밤새 신문을 만들고 있는 학생기자들을 위해 취재, 현장 촬영 등 많은 기회를 만들어 주길 바란다.

 

울산대신문은 학우들의 눈과 귀를 담당하는 언론으로서 책임 의식을 갖고 묵묵히 제 역할을 해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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