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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코넛과 상어 중 누가 ?사람을 더 많이 죽일까?-<나, 다니엘 블레이크>
작성자 송** 작성일 2019-12-12 조회수 13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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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로 정답은 ‘코코넛’이다. 바다의 포식자 상어보다 일개 과일이 사람을 더 많이 죽인다는 건 참 아이러니하다. 그러나 이 아이러니야말로 영화를 관통하는 작품 속 대사이다.  

 

 

주인공 ‘다니엘’은 어느 날 전문의에게 심장병 진단을 받는다. 의사의 권고로 다니엘은 질병수당과 실업수당을 신청한다. 그러나 그의 아픈 몸에도 불구하고 질병수당과 실업수당은 반려되기 일쑤며 항소도 지지부진하다. 융통성 없는 관료체계에 맞서다 지친 다니엘은 결국 항소 당일 심장마비로 죽는다.

 

다니엘의 사망 원인은 심장병이나, 그 뒤편에 현대 복지 시스템이 있다. 영화의 배경인 영국은 ‘선별적 복지’의 대표 주자다. 마거릿 대처 총리 재임 시절 소위 ‘영국병’에 시달리던 영국은 복지 수혜자를 선별해 혜택을 주는 방식으로 복지 시스템을 바꿔 긴축재정을 이뤘다. 

 

그러나 대처 총리의 복지 시스템은 국민에게 ‘인간다운 삶 보장’이 아닌 ‘부정 수혜자 선별’을 우선시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영화 속 다니엘은 의사의 소견에 따라 질병수당을 신청했으나 까다로운 선별 방식이 그의 발목을 잡는다. 또한 수당 신청을 컴퓨터로 해야 하나 IT기기에 익숙지 않은 다니엘은 연거푸 고배를 마셨다.

 

영화의 사례를 더 들여다보면 다니엘은 의사나 간호사가 아닌 고용노동부에서 파견한 자칭 ‘의료 전문가’가 심사한다. 파견 직원은 다니엘의 지병인 심장과는 상관없는 질문만 한다. 그리고 그 질문을 바탕으로 한 평가에서 다니엘은 점수가 부족해 질병 수당 수령에 실패한다. 공무원의 부당한 대우에 자존심이 상한 다니엘은 결국 수당 포기에 이르게 된다. 

 

이와 같은 사례는 비단 영화 속 이야기만이 아니라 현실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 다니엘과 같이 복지가 필요한 국민이 정작 혜택을 받기 위해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많은 혜택자가 자존심이 상하거나 번거로운 절차, 정보 접근의 어려움에 혜택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마치 코코넛이 상어보다 사람을 많이 죽이는 것처럼 시민을 위한 복지가 오히려 시민을 해치는 사례인 것이다.

 

이렇듯 영화와 우리 주변의 사례는 현대 복지 시스템의 결함을 잘 보여준다. 우석훈 경제학자는 “복지의 정의는 ‘시민을 위한 서비스’이다”고 한다. 과연 현대 복지 시스템이 시민을 우선시하는지, 혹은 선별을 우선시하는지 곰곰이 생각하게 하는 영화다.

 

송하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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