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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토래비] 대박 쫓다가 쪽박 차게 생긴 우리말
작성자 윤** 작성일 2019-03-12 조회수 828

 

대박! 얼마 전 가족여행을 다녀와서 여행지에서 촬영한 영상들을 정리하다가 내가 유독 ‘대박’이라는 단어를 자주 쓰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영상에 담긴 아름다운 자연과 훌륭한 음식, 아득하게 오래된 유적지에는 어김없이 하나의 감탄사가 함께했다. 대박! 대~박! 대박이다! 학생들에게 신조어나 속된 표현은 되도록 멀리하고 바르고 고운 우리말을 많이 쓰라며 가르치는 내가 이토록 연신 ‘대박’만을 외치고 있다니, 그 사실은 나에게 정말로 대박(?)이었다. 글쓰기 선생이라는 직업이 무색하리만큼 나의 감탄사는 너무나 단출했던 것이다. 영상에 정성스럽게 담아온, 말로는 다 표현하지 못할 아름답고, 굉장하고, 색다르고, 굉장했던 경험들이 그저 평범하고 단조롭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얼마 전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가 큰 인기를 끌며 한 예능프로그램에서 프레디 머큐리(Freddie Mercury)를 패러디하며 모든 의사소통을 ‘에오(Ay-oh)’로 대신하는 모습이 떠오르기도 했다.

 

 

언제부터 나는 ‘대박’ 하나로 ‘좋다, 멋지다, 훌륭하다, 굉장하다, 최고, 정말, 대단히’ 등등을 표현하고 있었을까? 생각해보면 ‘대박’보다는 ‘짱’을 많이 쓰던 때도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짱’은 사라지고 그 자리를 ‘대박’이 대신했다. ‘대박’은 원래부터 있던 우리말은 아닌 게 분명했다. 신문기사를 검색해보니, 1996년에 “영화의 완성도와는 관계없이 「대박」(빅히트를 지칭하는 영화계 용어)으로 불릴 만한 작품이?”와 같이 ‘대박’이라는 말이 처음 등장했다. 1998년 중반에는 한 대기업 광고에서 ‘왕대박잔치’라는 표현을 쓰기 시작했다. 그 다음 해인 1999년은 ‘대박’의 사용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시기이다. 이때가 ‘대박’이라는 말이 크게 유행한 시기였을 것이다. 아마 나 역시도 이때부터 ‘대박’을 사랑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다면 국어사전에서는 신조어 ‘대박’을 어떻게 처리하고 있을까?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대박’은 두 개의 다른 의미를 가진 동음이의어이다. 대박1(大-)은 ‘어떤 일이 크게 이루어짐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며 ‘대박이 나다, 대박이 터지다, 대박을 터뜨리다’와 같이 쓸 수 있다. 대박2는 ‘큰 배(大舶)’라는 뜻의 한자어이다. ‘대박 좋다, 대박이다, 대박, 대박 짜증나’ 할 때의 ‘대박’은 대박1에서 파생된 용법이라고 볼 수 있다. 한편, ‘대박’을 쪽박(작은 박)의 반대말, ‘커다란 박’으로 처리한 사전도 있다. 실제로 포털사이트에서 ‘대박’의 1순위 연관검색어가 ‘쪽박’이고, ‘대박’을 찾으면 ‘쪽박’이 고구마줄기처럼 줄기차게 딸려 나오는 것만 보아도 대박과 쪽박은 깊은 관련이 있어 보인다.

 

 

처음에는 ‘대박’도 참신하고 독특한 표현이었을 테고, 다양한 표현 중의 하나로 우리말을 더욱 풍성하게 해주었을 것이다. 그런데 자꾸만 덩치를 키워 이제는 다른 표현들을 모조리 잠식하고 있다. 정말로 대박만 쫓다가 쪽박 차게 생겼다.

 

인문대학 국어국문학부 박진아 외래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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