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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쓸신잡] 밥 한 끼 어때요?
작성자 윤** 작성일 2019-03-12 조회수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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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은 먹고 다니냐?”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송강호가 연쇄살인사건의 유력 용의자 박해일에게 하는 대사다. 이게 무슨 말일까. 문장 뜻만 보자면 그저 "밥먹고 돌아다니느냐?"라는 뜻일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대사를 단순히 식사의 의미로 해석하지 않는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특정 단어를 사용해 다양한 언어적 표현을 대체한다. 대표적인 '밥'을 예를 든다면 식사(밥 먹어라), 호감(저랑 밥 한번 드실래요?), 감사(나중에 밥 한 끼 쏠게) 등 특정 행위뿐만 아니라 감정까지 나타낸다.

 

왜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는 것일까. 미국의 인류학자 에드워드 홀(Edward T. Hall)은 ‘고맥락’이라는 개념을 제안했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고맥락은 타인 간의 의사소통이나 인간관계에 있어 내용 자체보다는 맥락이나 배경에 더 큰 비중을 둔다. 특히 한 곳에 정착해 사는 농경, 집단주의 사회에서 많이 나타나며 같은 문화권 내에서 잠정적으로 합의된 맥락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관용 표현으로 ‘뒷북치다’가 있는데 단어만 따진다면 ‘등 뒤의 북을 치다’, ‘뒤에 있는 북을 치다’의 이중적인 의미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뒤’는 ‘뒤늦게’를 뜻하며 실질적인 의미는 ‘뒤늦게 쓸데없이 수선을 떨다’로 해석된다. 이처럼 우리나라는 고맥락 문화의 특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같은 문장이라도 다른 의미를 가지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그렇다면 왜 하필 밥일까. 물론 중국, 일본, 베트남 등 같은 밥문화권에서도 ''을 주식으로 표현한다. 빵을 주식으로 삼는 서양과 기독교 문화권에서도 비슷한 표현이 존재하지만 우리나라처럼 다양하게 사용되는 경우는 드물다.

 

가장 유력한 추측은 밥이 주식으로 그 사용 빈도가 매우 높았다는 것이다. 아시아의 대표적인 밥 문화권인 중국과 인도가 각각 만터우이라는 빵 문화가 혼용된 것을 생각하면 매우 이례적이다. 조선 시대 기록에서 백성들의 밥 소비가 얼마나 많았는지 알 수 있다.

 

 

·이극돈이 아뢰길 "백성이 멀리 보지 못하고 풍년이 들면 아끼는 것이 없어 한 사람 한 끼니가 중국 사람이 하루에 먹는 양과 맞먹습니다. (후략)"

<성종실록> 191, 성종 1752일 병오 5번째기사

 

 

·다식(多食)에 대해서는 대신과 평민의 구별이 없다. 조선 사람들은 많이 먹는 것이 곧 명예로운 것으로 여기며, (중략) 각자가 한 사발씩을 다 먹어치워도 충분하지 않으며, 계속 먹을 준비가 되어 있다. 많은 사람들이 2~3인분 이상을 쉽게 먹어치운다. (후략)

<조선사 입문을 위한 노트> 성 다블뤼 안토니오

 

 

이렇듯 밥은 주식으로써 우리나라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문화로 남게 된 것이다. 그래서 무의식적으로 하나의 정신으로 계승되지 않았을까. 한국인이 일을 할 때는 밥심으로 한다고 한다. 그 힘의 원동력이 빵이든 시리얼이든 우리의 정신적 근원에는 밥이 있는 것이 아닐까.

 

윤병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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