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토래비] 여러분, 요즘 개힘든가요? | |||||
작성자 | 이** | 작성일 | 2018-06-07 | 조회수 | 14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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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정하고 울지는 않았지만 이왕 터진 울음 작정하고 내버려 두는 그런 날이 있다. 그러다가도 "많이 힘들지?" 한 마디에 조금은 살 것 같은 날, 그래서 너무 고마운 그런 날이 있다. 만일 그 때 "많이 힘들지?" 대신 "개힘들지?"라고 위로한다면 어떨까. 나는 또 쓸데없는 생각을 해 보았다. 적어도 나라면 그 위로가 진심이건 아니건 내 마음이 우습게 취급받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을 것 같다.
몇 년 전에 우리 대학교 교정에서 한 삭생이 친구에게 "개짜증나"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그 때만 해도 그런 말은 지금보다는 훨씬 비속어였고 욕설이었다. 여러 명이 동시에 그 학생을 쳐다보았던 것 같다. 그 학생은 머쓱했는지 자리를 피해버렸다. 그런데 지금은 학교 여기저기서 그러한 말들을 너무도 쉽게 또 자주 듣게 된다. 얼마 전에는 내 수업을 듣던 한 학생이 "선생님, 과제가 개힘들어요." 라고 말한 적도 있다. 물론 그 학생이 애교섞인 투정으로 한 말임을 알았지만, 적잖이 놀랐다.
?도대체 '개-'는 어떤 뜻이길래 이렇게 많은 학생들이 열심히 쓰고 있는 것일까?
견(犬)에서 온 말이라고도 하는데 그러한 근거는 부족하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접두사 '개-'는 세 가지 다른 뜻으로 쓰인다. 첫째, '야생 상태의, 질이 떨어지는'의 의미로 쓰이는 경우이며, 그 예로는 개꿀, 개떡 등이 있다. 둘째, '헛된, 쓸데없는'이라는 의미를 더하는 경우로, 예로는 개꿈, 개죽음 등이 있다. 셋째, '정도가 심한'의 뜻을 나타내는 경우이다. 그 예로는 개망나니, 개잡놈 등이 있다. '개힘들다'나 '개짜증나다'에서 '개-'는 세 번째 '정도가 심한'이라는 의미를 더하는 접두사로 보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
그런데 이 접두사는 본래 부정의 뜻을 나타내는 명사 앞에서만 쓰인다. '힘들다'나 '짜증나다'는 명사가 아니므로 여기에 '개-'를 붙여 쓰는 것은 잘못됐다. 같은 맥락에서 '개쩐다', '개고급지다'와 같은 표현 역시 올바른 쓰임이 아니다. 접두사 '개-'는 부정의 뜻을 가지는 일부 명사 앞에 붙는다고 했으니, '개쩐다', '개고급지다'와 같이 긍정의 의미로 쓸 수 없는 것이다.
말은 생각을 담는 그릇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개힘들겠다." 같은 말은 어떤 그릇일까? 이 그릇은 사람의 마음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는 작디작은 그릇이다. 게다가 사람을 낮잡아 보고 욕을 했던 나쁜 마음들을 담아왔던 그릇이다. 모든 면에서 누군가의 마음을 담기에는 많이 부족한 그릇이다. 작은 그릇에 마음을 구겨 담으려 애쓰는 것 보다 큰 그릇에 마음을 담는 것이 훨씬 수월하고 단정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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