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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회 문수문예] 시 당선작 <미안해, 밤을 읽지 못해서>
작성자 이** 작성일 2017-12-15 조회수 1009

< 미안해, 밤을 읽지 못해서 >

    

어마루(국어국문학·2)

    


높아져 가는 관람차 안에서 넌, 29년 전 종로 극장에서 죽은 시인의, 내가 알지 못하는 시구를 조금 뜯어내, 내겐 어둔 페이지가 많아 그걸 들여다 볼 수 있겠어? 라는 걱정 섞인 말을 했고, 그런 내가 건넨 말들이 어떤 자세와 강도로 널 안아 주었는지 보듬어 주었는지 토닥여 주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낯선 나라의 밤이 스며든 관람차 안에서 나는, 네가 풀어 펼친 밤을 함께 나고 자란 나라의 언어로 전하고 받을 수 있는 유일한 이방인이었고, 그래서 우리는 기원을 알 수 없는 그 밤을 함께 읽으며 관람차를 내렸던 것 같았는데

    

네 밤은, 내가 알지 못하는 낯선 나라의 언어와 함께 나고 자란 나라의 언어가 이리저리 섞여 미처 오독을 알 수 없었고, 오랜 시간이 흘러서야 잘못된 이정표를 알아챌 수 있었지. 서로 안은 품에서 읽던 밤은, 멀어진 거리만큼 짙어져 있었고, 전화기 너머로 흘러드는 목소리는 밤을 다 보여주지 못해서 미안해 라고 말했고, 나는

    

미안해, 밤을 읽지 못해서

라고 말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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