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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회 문수문예] 수필 가작 <특별한 산책>
작성자 이** 작성일 2017-12-15 조회수 612

< 특별한 산책 >

최희진(역사문화학·3)

 

밤 운동을 하러 나갔다. 우중충한 하늘에 싸늘한 바람이 코끝을 스쳤다. 날씨 좋네. 어느 날부턴가 이런 날이 좋아졌다. 이어폰을 끼고 노래를 들었다. 경쾌한 음의 팝송, 원래 팝송은 잘 듣지 않는 편이지만 오늘은 알아듣지 못하는 가사의 노래를 듣고 싶었다. 집 옆에 꽤 큰 강이 있는데 그 길로 산책로가 있다. 밤 열한시. 좀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사람은 별로 없네. 별로 개의치 않았다. 이런 우중충함이 좋아진 그 어느 날, 그 날부터 두려움도 없어지고 있었으니까. 죽는 게 뭔데? 죽어도 되지 뭐. 이런 날 사람 없는 길을 무서워하는 건 죽음이 두려워서니까. 나는 별로 두렵지 않다.

 

사실은 어느 날. 그래 바로 그 날부터 나는 항상 도끼로 내 모가지를 내려찍는 상상을 한다. 그러면 속이 조금 풀린다. 나는 누군가와 얘기를 하면서도, 걸으면서도, 가끔은 밥 먹으면서도 그런 상상을 한다. 그렇다고 자살을 하고 싶은 건 아니고. 타인을 죽이고 싶은 건 더 아니고.

 

한참을 걷는데 갑자기 비가 내렸다. 주룩 주룩. 처음엔 무시하고 계속 걸었다. 금방 그치겠지 하면서. 예상은 항상 빗나간다. 거센 비가 내렸다. 왜 항상 이럴 때만 예상이 빗나가지? 예상이 빗나지 않은 건 그 날. 그 어느 날 하루 뿐 이었다. 우산도 없이 비를 맞았다. 생각보다 나쁘지 않네. 그 때 전화가 왔다. 따르릉 따르릉.

 

여보세요. 어디야. 걷고 있죠. 비 오는데? 실내예요. 조심히 들어와. . . . ... 비가 오는 날 휴대폰이 젖던 말 던 이어폰에 감전이 되던 말 던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도 생각보다 나쁘지 않네. 나는 통화를 조금 더 하기로 결심했다. 그래도 걱정은 되니까 휴대폰은 주머니에. 그리고 전화를 걸었다. 하늘로.

 

여보세요. 뭐해? 밥은 먹었어? 난 잘 지내지. 너는 잘 지내? 보고 싶다. 거긴 좋아? 밥은 맛있어? 하긴, 밥 안 먹어도 행복한 곳이지? 너랑 다신 통화 못 할 줄 알았는데 할 수 있네. 좋다. 종종 전화 걸게. 안 받으면 때릴 거야 꿈에서. 누가 보면 진짜 통화하는 줄 알겠다. 그치?

기분이 좋았다. 꽤 많이 걸어갔다 생각했는데 돌아오는 길은 짧았다. 순간 느낀 것도 같았다. 내 정수리에 차가운 비가 아닌 따스한 손길이 스치는 걸.

 

그 날. 그래 바로 그 날. 그 어느 날. 내가 변하기 시작한 그 날. 나는 시간이 됬음에도 오지 않는 너가 사고가 났을 거라 예상했고 적중했다. 너의 전화를 받은 구급대원이 병원으로 오라했을 때 너가 심하게 다쳤을 거라 예상했고 적중했다. 근데 니가 죽었을 거라곤 예상 안했는데 그건 빗나갔다. 억울하다.

 

비를 흠뻑 맞고 집에 들어갔다. 엄마는 친구인 7층 아줌마와 얘기 중이었다. 그냥 별 말 없이 들어가서 씻고 옷을 갈아입었다. 이런 산책 나쁘지 않네. 종종 해야 할 것 같다. 너가 죽은 지 일 년 하고도 며칠이 지난 날. 특별할 것도 없는 날. 나는 특별한 산책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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