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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회 문수문예] 소설 당선작 <개들의 행성으로 가기까지>
작성자 이** 작성일 2017-12-15 조회수 577

개들의 행성으로 가기까지

 

문선혜(국어국문학·4)

 

차 문을 닫기도 전에 택시기사가 몸을 반쯤 돌린 채 목적지를 물었다. 기사는 눈썹은 유난히 짙은 색이었고, 밑으로 약간 내려가 있었다. 억울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그것 외에는 그저 평범한 중년남성의 모습이었다. 누렇고 희멀건 눈동자가 재희의 머리부터 무릎까지 천천히 훑었다. 그 시선에 재희가 코트 소매를 만지작거리자, 흠흠 거리며 헛기침을 해댔다. 옅은 홍삼 냄새가 택시 안을 배회했다. 재희는 답하지 못하고 망설였다. 택시기사가 눈짓으로 눈치를 줬다. 지체할 수 없었다. 무심결에 목적지를 말해버렸다. 실수였다. 기사는 아무렇지 않은 듯 내비게이션을 입력했다. 갑갑한 정적이 차 안을 장악했다. , , 일정한 속도로 발생하던 소리가 갑자기 더뎌졌다. 시선을 느낀 재희가 상자를 더욱 세게 안았다. , 소리를 내며 차 문이 닫혔다. 곧이어 문이 잠기는 소리가 났다.

 

그게 뭔교.”

 

택시기사가 물었다. 고개를 반쯤 돌린 채 턱짓과 눈짓을 했다. 대답 대신 어색하게 웃음을 지었다. 백미러에 서로의 시선이 부딪혔다. 좁은 차 안에 정적이 흘렀다. 차량용 시계를 보니 어느덧 오후가 지나고 있었다. 거의 반나절을 밖에서 보냈다. 간만의 외출이었다. 의도치 않은 외출이었고,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재희의 인생에서 갑작스러운 일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자신이 꿈을 꾸고 있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때마다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컹, 하고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재희는 카시트에 몸을 기댔다. 품 안에 안고 있던 상자는 무릎 위에 내려놓았다. 창밖 햇빛은 계절을 잊은 듯 강렬하게 빛났다. 그 아래로 햇빛을 받은 강물이 반짝였다. 그 옆 들판은 풀이 메말라 죽어있었다. 조용하고, 그러면서 삭막한 것이 꼭 그림처럼 느껴졌다.

 

그 상자 뭐인교. 못 말해 줍니꺼.”

 

기사가 차를 출발시키며 다시 물었다. 꽤 집요했다. 재희는 출발한 뒤에야 계속 멈춰있었단 걸 알아차렸다. 동구 쪽으로 가달라고, 자세한 목적지는 가까이 가서 말해주겠다고 답했다. 택시기사가 짧게 혀를 차며, 볼륨을 만졌다. 라디오 디제이의 목소리가 서서히 흘러나왔다. 어색한 공기가 한층 가라앉았다. 재희는 여전히 창밖을 바라보았다. 무언가 간절하게 찾는 듯 보였다. 택시기사는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볼륨을 한 번 더 만졌다. 소리가 높아졌다. 소리가 소리에 묻혔다. 반짝이는 강과 죽어있는 들이 서서히 멀어졌다. 들판 끝, 검붉은 빛 벽돌로 만든 집도 멀어졌다. 그 집의 커다란 굴뚝에서는 쉴 새 없이 하얀 연기가 올라왔다. 연기가 하늘 위를 한없이 맴돌았다. 빽빽한 가로수에 집이 가려졌다. 재희는 미련 없이 시선을 돌렸다. 기사와 눈이 마주쳤다. 누런 눈동자에 의문이 가득 담겨있다. 백미러가 문제였다.

 

강아지 유골이에요.”

 

방지턱에 걸린 택시가 덜컹거렸다. 반동에 두 사람의 몸이 흔들렸다. 밖에서 흘러들어오는 햇빛도 출렁거렸다. 택시기사는 밑 입술을 샐쭉 내민 뒤 고개를 끄덕였다. 시선은 앞에 둔 채였다. 재희는 이런 반응을 예상했는지 바깥풍경만 보았다. 택시가 왼쪽으로 부드럽게 커브를 돌았다. 두 사람의 몸도 오른쪽으로 기울었다. 맥락 없이 라디오 디제이가 말을 이었다. 몇 달 전 경북과 경남을 강타한 지진에 관한 이야기였다. ‘열대야도 아니고,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 죽겠어요. 창문이 조금만 흔들려도 깨요. 무엇보다 꿈에서도 자꾸만 쿵, 소리가 들려요.’ 디제이가 사연을 읽다 말고 끙 소리를 내며 작게 앓았다. 침 넘기는 소리가 고요한 택시 안을 장악했다. ‘남 일이 아니죠?’ 잠깐의 침묵 뒤 나온 말이었다. 택시기사와 재희가 동시에 백미를 보았다. 시선이 맞부딪혔다. 먼저 눈을 돌린 건 택시기사였다. 기사는 머리를 벅벅 긁더니 속트름을 했다. 재희는 점점 눈을 느리게 감았다가 떴다. 나른한 기운이 히터 탓인지, 햇빛 탓인지 알 수 없었다.

 

몇 년 키웠는데예.”

……. 십오 년 정도일 거예요.”

속상켔네. 오늘 죽었능교.”

 

속도기 바늘이 60에서 80으로 서서히 올라갔다. 앞서가던 차들과 간격이 좁아졌다. 재희는 고개를 느리게 끄덕였다. 그런 뒤 작게 탄식했다. 정확히 몇 시에 죽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사실 알지 못했다. 새벽은 어제인가, 오늘인가. 재희의 미간에 미세한 주름이 졌다. 검지로 나무상자를 만지작거렸다. 힘차게 문지르다가도 조심스레 어루만졌다. 확실한 건 자신의 개가 가루가 된 게, 하루도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출처를 모르는 온기가 부유하던 공간이었다. 장례사는 개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라고 했다. 재희는 삼베에 쌓인 개를 쳐다보았다. 개는 눈을 부릅뜬 채 엎드려 있었다. 어쩌면 살아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례사는 돌연 재희에게 씩씩하다며 칭찬을 했다. 재희는 순간 미간을 좁혔다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뒤를 돌아보니 화장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이 서너 명 있었다. 흰 종이상자를 붙들고 울던 짧은 파마를 한 중년 여성. 손수건으로 이마를 닦으며 카드결제를 하던 30대 남자. 그 소매를 붙잡고 훌쩍거리던 열 살 정도로 보이는 여자애. 자신의 개를 돌로 만들면 얼마가 드냐고 묻던 여자. 사람들 다리 사이로 미니핀 두 마리가 계속 뛰어다녔다. 중년 여성이 상자를 끌어안은 채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상자가 움직이며 덜그덕, 하는 소리가 났다. 재희가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다. 저 사람들에게 개는 어떤 존재였을까. 눈을 감아도 불편한 소음이 이어졌다. 자꾸만 눈이 뻑뻑해졌다. 건조해지다 못해 도리어 차갑게 식었다.

 

택시기사가 다시 백미러를 힐끔 쳐다보았다. 오른손을 뻗어 라디오 채널을 돌렸다. 지직거리는 소리가 반복됐다. 숫자가 빠르게 망가지다 90.7에서 멈췄다. 방금전 들었던 디제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기사는 목소리를 기억하지 못하는지 채널을 더이상 돌리지 않았다. 재희 역시 상관없다는 듯 코트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돈은 얼마 들었능교.”

……이십만 원 정도…….”

 

택시기사의 짙은 눈썹이 꿈틀거렸다. 털 많은 애벌레 움직임 같았다. 재희는 뒤적이는 걸 멈추고 주머니 안 깊숙이 손을 찔러 넣었다. 300미터 전방에 고속도로 입구입니다. 내비게이션에서 알림음이 났다. 몇 오류가 난 듯 창문에 가로수의 잔상이 짙게 남았다. 앞서 달리던 트럭은 어느새 저 뒤에 있었다.

 

근데, 아가씨 거기는 왜 가는교? 아무래도 그 지역 사람 아닌 거 같아가꼬, 와 그 머라하는 건 아니고, 그 먼데 와 가는 가 싶어서.”

잠깐 살았어요. 그냥 그 정도…….”

 

재희는 눈동자를 느리게 굴린 뒤 상자만 응시했다. 택시기사는 더이상 묻지 않았다. 잠깐이라고 부르기엔 긴 시간일 수도 있었다. 재희는 청소년기를 그곳에서 보냈다. 바다와 근접해 있는 아파트에 살았고, 마린시티와는 조금 달랐다. 살아온 날의 절반을 그곳에서 보냈지만, 자신이 그 지역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엄마 뱃속에서 나온 뒤 서류에 기록된 곳이 아니어서 일수도 있었으나, 그와는 다른 종류의 이질감이었다. 재희는 가끔 개를 끌어안고, 베란다에 앉아 바다를 내려다보았다. 바다는 언제나 푸르다기보다 검게 일렁였다. 낮에도, 밤에도. 아파트 근처에는 조선소가 빽빽이 들어서 있었고 앞바다엔 해상크레인과 커다란 배가 떠 있었다. 밤에도 불은 꺼지지 않았다. 밤바다는 언제나 크레인에 달린 불빛을 머금고 반짝였다. 아름답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우주를 바다에 부은 듯 이상한 모습이었다. 한참을 바라보고 있으면 개가 재희의 얼굴을 핥았다. 그제야 베란다에서 멀어질 수 있었다.

 

톨게이트가 가까워지자 세상이 한 템포 느려졌다. 택시기사는 인상을 쓴 채, 속으로 트름을 삼켰다. 재희는 연체동물 같은 동작을 지켜보다 이내 시선을 앞으로 옮겼다. 눈이 부신지 미간을 찌푸렸다. 펼쳐진 도로 위로 기다란 금이 가 있었다. 택시기사가 혀를 짧게 차더니 차선을 바꿨다. 내비게이션이 울렷다. 택시는 속도를 더 올렸다. 꽤 길게 펼쳐졌던 금이 사라졌다. 흔적도 없이. 여전히 햇빛은 강렬하고 건조해 보였다. 재희는 코트깃을 여몄다.

 

개 종이 뭐였는교?”

……. 말티즈였어요.”

말티즈? , 그러면 그 어디 차고. 그 차는 개새끼 이름을 딴거가. 그래서 그따군갑네. 아니다. 그 와 저는 똥개 좋아합니더. 시골 가면 천지빽가리 개 있지예.”

 

재희는 작게 대답하며 시선을 밖으로 던졌다. 택시기사가 자신의 개 이름을 묻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끝없는 회색 벽이 이어졌다. 그 위로 둥근 태양이 강렬하게 빛을 냈다. 당장 불이나 무언가 타버려도 이상하지 않을 듯했다. 유골 상자 위로도 햇볕이 따갑게 내려왔다.

 

늙은 개는 커다란 화덕 안으로 천천히 들어갔다. 눈을 뜬 채로. 도리어 눈을 감은 건 재희였다. 눈을 감은 순간 어디선가 컹, 하며 개가 짖었다. 소리가 나는 쪽을 쳐다보았다. 미니핀 두 마리가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뛰어갔다. 유리 벽 사이로 세 마리 개가 서로를 향해 짖어댔다. 소음이 타올라 공중에 맴돌았다. 투명한 유리 벽에 개의 침이 질척하게 묻었다. 재희가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봤다. 장례사는 그 어깨에 손을 올리고 느리게 토닥였다. 손길에 굳게 닫혔던 입이 열렸다. 눈 뜨고 죽은 개도 좋은 곳으로 가나요? 재희의 질문에 장례사가 어깨에서 손을 거둔 뒤 팔짱을 꼈다. 아주 느린 순간이었다. 화덕에서 불씨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장례사가 손짓을 하며 입을 열려는 순간, 30대 남자가 다가왔다. 손수건으로 연신 얼굴을 닦으며 장례사에게 물었다. 저 진돗개는 얼마에 사셨는지 …….

 

간헐적으로 내비게이션이 울렸다. 택시기사가 입을 쩌억, 벌린 채 하품을 했다. 재희는 백미러를 슬쩍 본 뒤 주머니에서 손을 뺐다. 잔뜩 엉킨 이어폰이 나왔다.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을 정도로 엉켜있었다. 재희가 꼼지락거리며 줄을 만졌다. 한쪽이 엉키면 다른 한쪽이 엉켰다. 재희는 손으로 머리를 짚은 뒤 시트에 몸을 기댔다. 사이드 미러에 자동차가 줄줄이 비췄다. 도로너머 공장지대도 보였다. 굴뚝에서 시뻘건 연기와 뿌연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재희는 멍한 표정을 한 채 일부러 창문에 머리를 박았다. 표정이 한껏 무너졌다. 백미러를 올려다본 기사가 볼륨을 만졌다. 잔잔하게 나오던 라디오 소리가 커졌다. 디제이는 여전히 지진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낙엽이 질 무렵 지진은 시작되었다고 했다. 사람들은 행성 하나 추락한 듯 큰 굉음이 들렸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도망칠 틈 없이 유리창, , 벽시계, 벽걸이 TV, 소파, 냉장고, 찻장, 선반, 책이 가득한 책꽂이, 침대 등등이 흔들렸다고 했다. 등등이 무엇인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세상이 흔들렸다는 건 확실하다고 했다. 어떤 사람은 책상 위 선반에 있던 선인장이 진동을 이기지 못하고 떨어졌는데, 그제야 그 자리에 두었었단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본 모습이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말라비틀어져 죽어있었고, 그게 너무 무서워 핸드폰을 무작정 들었는데, 어디에도 그 누구에게도 연락할 수 없었다는 말을 덧붙였다. 흔들리고 흔들렸다. 흔들린 것은 무너졌다.

그쯤 발생했던 지진은 재희도 느꼈다. 지진의 근원지에서 거리가 있는 지역이었지만 흔들렸다. 아주 짧은 시간이었다. 평소와 다름없이 침대에 누워있던 재희는 고개만 든 채 흔들리는 방안을 바라보았다. 흔들리는 천장을 보며 재희는 천천히 침대에서 내려와 늙은 개를 안았다. 단지 그것뿐이었다. 아주 미미한 진동이었고, 뒤늦게 울린 경보음만큼이나 위협적이지 않았다.

 

다음 안내 시 까지 직진입니다. 내비게이션이 울렸다. 재희는 다시 창밖을 보았다. 빽빽이 들어선 공장들이 한층 가까워졌다. 회색 연기가 굴뚝에서 흐물거리며 흘러나왔다. 목적지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짧고도 긴 시간이었습니다. 집이 흔들렸고, 낙엽이 지고, 공장이 문을 닫고 사람들이 무너졌습니다. 각자의 사연을 업은 사람들이 거리로 나왔습니다.’ 멀어졌던 디제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불안한 말을 내뱉는 라디오와 달리 바깥은 평화로웠다. 재희는 자세를 고쳐 앉으며 상자를 더 끌어안았다. 높은 상공에 종을 알 수 없는 검은 새들이 떼를 지어 날아다녔다. 그 옆으로 양털 같은 잔 구름이 일정하게 하늘을 수놓았다. 재희는 가는 눈으로 광경을 쳐다보다, 아주 질끈 두 눈을 감았다. 여전히 엉켜있는 이어폰을 상자 위에 올린 뒤 가슴 위쪽을 주먹으로 아프지 않게 두드렸다. 어딘가 답답해보였다.

 

십오 년이면 좀 정 마이 들었겠네. , 가족 아임니꺼.”

 

재희가 백미러를 빤히 보았다. 택시기사가 흘끔거리며 백미러를 보다 시선을 피했다. 두툼하고 주름진 손가락이 핸들을 빠르게 두드렸다. 작게 대답하는 소리가 택시 안에 퍼지자 조금 느려졌다. 디제이는 여전히 같은 주제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기사가 목을 가다듬더니 볼륨을 줄였다. 재희는 주먹 쥐었던 손을 상자 위에 조심히 내려놓았다. 가족은 중요하다며, 기사가 은근슬쩍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지역에 하나밖에 없는 4년제 대학에 다니고 있다고 했다. 충분히 서울을 갈 수 있는 성적이었지만, 부모 사정을 생각해서, 집안의 맏이여서 집 근처에 있는 대학에 갔다고 했다. 재희는 약간 굽은 어깨와 허한 정수리를 바라보다 아드님이 효자라는 말을 건넸다. 택시기사가 가볍게 속도를 밟았다. 가라앉았던 공기가 다시 가볍게 공중을 떠다녔다. 택시는 멈추지 않고 계속 달렸다. 삭막한 도로 위 풍경이 이어졌다. 솔직히 말하면 요즘은 돈이면 다 된다고, 이 지역 사람들은 참 취업 잘하고 잘 사는 편이지 않느냐며 어깨를 으쓱거리기도 했다. 재희는 기사가 물음을 가장한 말을 할 때마다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는 걸 잊지 않았다.

, 그렇구나. 그럴 수도 있겠네요. 혼잣말처럼 대답하며 천천히 앞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을 떠난 지 몇 년이 지났던가. 햇수가 기억나지 않을 만큼 시간이 꽤 흘렀다. 허나 사람이 쉽게 변하지 않듯이 도시라고 부를 수 없을 만큼 황량한 이 지역도 바뀌지 않았을 것만 같았다. 조수석 앞에는 택시운전자격증이 붙어있었다. 한층 밝아진 기사의 목소리를 들으며 자격증을 천천히 눈으로 읽었다. 낡은 사진 한 장과 4줄의 정보. 그 위로 노란 햇빛이 쏟아졌다. 기사가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며 하품을 했다. 재희는 다시, 기사의 뒷모습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언듯 궁금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기사가 거친 손바닥으로 마른세수를 했다. 깊게 베인 주름이 엉망으로 망가졌다. 손을 내린 뒤에도 꽤 오랫동안 무너져 있었다. 옆 차선에서 차들이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꽤 높은 속도로 달리는지 강하고 빠르게, 소리가 사라졌다.

 

아무튼 개가 죽어서 마이 속상켔네예. 좋은 데 갔을겁니더. 비싼 돈 주고 화장도 시켜줬다 아입니꺼.”

 

기사가 헛헛한 웃음을 지으며, 엑셀을 천천히 밟았다. 택시가 물길을 거스르며 올라가는 물고기처럼 도로를 거슬러 올라갔다. 도리어 옆 차선에서 달리는 차들이 물길에 휩쓸리는 것처럼 보였다. 창문이 조금 열렸는지 몇 가닥 없는 검은 머리칼이 흔들렸다. 매캐한 냄새가 나는 듯했다. 재희는 기사가 한 말을 곱씹었다. 좋은 데 갔을 거라니. 재희가 빠르게 눈을 깜빡거렸다. 카시트에 바짝 기댔던 상체를 앞으로 조금 당겼다. 엉켜있는 이어폰이 미미하게 흔들렸다.

 

좋은 곳은 어디일까요.”

 

택시기사는 뒤를 슬쩍 보더니 껄껄 웃기 시작했다. 운전석이 크게 들썩거렸다. 한참을 웃는 동안 고속도로를 벗어났다. 300미터 전방에, 과속 주의 구간입니다. 시속 …… , 전방에 ……. 내비게이션이 말을 끝맺지 못했다. 사거리가 나왔다. 빨간불이었다. 화물차들이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크레인을 탄 남자가 담배꽁초를 바닥에 버렸다.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진 담배꽁초에 아직 불씨가 남아있었다. 타오르고 타올랐다. 기사가 팔을 쭈욱 뻗고 앓는 소리를 냈다. 목도 뻐근한지 양쪽으로 움직였다. 뼈끼리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천국 아니겠습니꺼. 천국! 어서 들은 게 있는데, 개들이 먼저 죽는다 아잉교, 그라믄 걔들이 먼저 거서 기다린다는 말 어서 들은 적 있습니더. 안 그러겠습니꺼. 아가씨도 너무 속상해 마시고 밥 잘 챙겨묵고 잠도 잘자고 그래야하는 거 아니겠습니꺼. 사람은 살아야지예.”

 

택시기사는 두꺼운 손가락으로 귀를 파더니 공중에 한 번 튕겼다. 가망 없는 기대였다. 신호가 바뀌었다. 기사가 재빨리 기어를 올렸다. 차가 부드럽게 달리기 시작했다. 핸들을 왼쪽으로 돌리자 몸이 오른쪽으로 기울었다. 재희는 유골함을 꽉 붙잡았다. 햇빛이 차 안으로 쏟아 들어왔다. 공사장에 모래를 들이붓듯 많은 양이었다. 건조했다. 재희가 입을 열려는 순간 택시 앞 유리에 검은 무언가가 부딪혔다. 기사가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았다. 끼이익 소름끼치는 소리가 고막을 울렸다. 안전 벨트를 하지 못한 재희가 앞 좌석에 몸을 쎄게 부딪쳤다. 기사가 아무렇게나 주차한 뒤, 차에서 내렸다. 차 문이 쿵, 소리를 내며 닫혔다. 시발거! 재희는 반사적으로 몸을 떨며 앞을 보았다. 기사가 짙은 눈썹을 일그러뜨리며 화를 내고 있었다. …… 재수가 없을라니까! 입 모양을 읽은 재희가 유골함을 더욱 껴안았다. 기사는 양손을 허리께에 얹고 땅을 쳐다보다 주머니에서 무언갈 꺼냈다. 담배였다. 손짓으로 재희에게 양해를 구한 뒤 불을 붙였다. 가늘고 긴 연기가 담배 끝에서 올라왔다. ‘보통 일이 아닙니다. 정부의 조치가 매우 필요한 시기인 것 같네요. , 김영자님이 한 마디 보내주셨네요. 다른 나라도 똑같이 문제 많아서 갈 곳 없다고 하시네요. 틀린 말 아니죠. 지구 밖으로 나가야 하나 싶습니다. , 다음 신청곡은 …….’ 에이 시벌. 목소리가 목소리에 묻혔다. 기사는 크게 욕을 뱉은 뒤, 차 밑에서 무언가 들어 올렸다. 새까맣고 큰 까마귀였다. 다리를 붙잡힌 까마귀는 힘없이 푸드덕거리다가 이내 날개를 늘어트렸다. 목이 부러졌는지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흐늘거렸다. 까만 깃털이 빛에 반사되어 반짝였다. 재희는 혀로 입술을 축이며 몸을 웅크렸다. 창백한 피부가 더 새하얗게 질렸다. 기사가 침을 땅에 뱉으며 까마귀를 인도 옆 풀숲으로 던졌다. 관리받지 못한 잡초가 요란하게 흔들렸다.

 

미안합니더. 아 오늘 날이 아닌갑네예. 뭐가 불길하긴 불길한갑다. 새가 막 날아와 머리박고 죽질 않나. 뭐고 이게. 하이고 빨리 집에 갑시더.”

 

기사가 문을 닫은 뒤 시동을 걸고 차를 출발시켰다. 택시가 다시 부드럽게 도로를 달렸다. 스쳐 지나가는 가로수가 하늘에 걸렸다. 낮은 하늘에 거미줄 같은 실금이 퍼졌다. 내비게이션이 계속 울렸다. 전방 백미, 전방 오십, 전방에, 전방, , 전방에 사고 다발 주의구간입니다. 생전 예약자 20% 할인 서비스. 일오사사 공 삼 …… . 어느새 라디오에서 광고가 흘러나왔다. 분위기를 읽지 못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엉키고 엉켰다. 재희는 왼손 검지와 엄지 사이를 오른쪽 검지로 긁었다. 검지와 엄지 사이 살이 붉게 올라왔다. 도로에 택시가 덜컹, 튀어 올랐다. 몸이 자꾸만 흔들렸다. 재희는 다시 오른손으로 왼쪽 가슴을 두드렸다. 숨쉬기 어려울 정도로 빠르게 심장이 뛰었다.

간판 색이 점점 더 짙어지고, 모양이 바뀌었다. 간판 글씨가 명조체에서 다양한 글씨체로 바뀌었다. 단층 건물이 하나 둘 층수가 늘어났다. 하나 둘, 인도를 걷는 사람들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불어났다. 재희가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가 내쉬었다. 창밖 시야가 어지러운 탓인지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택시가 빨간불에 걸렸다. 신호등 옆에 고여 있던 사람들이 방류되듯 쏟아져 나왔다. 왼쪽 인도로 가려는 사람과 오른쪽 인도로 가려는 사람들이 한데 섞였다. 부딪히고 부딪혔다. 길을 거슬러 올라가는 사람과 내려가는 사람들이 엉키고 엉켰다. 바다와 강이 섞이는 하구처럼 혼돈의 지점이었다. - - 세상을 가를 듯 날카로운 경보음이 울렸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건너가는 사람들. 통화하던 행인 몇 명. 그리고 재희와 택시기사까지. 똑같은 자세로 핸드폰을 바라보았다. [국민안전처] 16:22 경북 경주시 남남서쪽 9km 지역 규모 3.5 지진발생 / 여진 등 안전에 주의바랍니다. 이미 몇 분전에 일어 난 지진이었다. 사람들 머리 위로 태양이 타올랐다. 초록불이 5초 정도 남았다. 사람들은 핸드폰을 다시 주머니에 넣은 뒤 발걸음을 옮겼다. 통화하던 사람은 입 모양이 언뜻 욕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택시기사가 내뱉었던 욕과 비슷했다. 그 사람 발걸음 뒤로 미세하게 땅이 갈라져 있었다. 재희는 다시 핸드폰을 쳐다보았다. 안전에 주의바랍니다. 의미 없는 말이었다.

 

그 뭐…….예민할 수밖에 없긴 하지예. 나도 좀 그래. 좀 무서워. 근데 아가씨요. 안 죽잖아. 나는 예, 사실 차안에만 있어가꼬 지진 한번 밖에 못 느껴봤어. 아가씨도 방금 거 못 느꼈잖아.”

 

택시기사가 입을 열 때마다 미약하게 담배냄새가 났다. 재희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서부아파트 근처에 내려주시면 된다는 말을 했다. 기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속도를 높였다. 가로수 잔상이 짙게 남았고, 건물이 뭉개졌다. 간판 글자를 알아볼 수 없었다. 기괴한 낱말들이 이어졌다. 재희는 오른손으로 가슴께를 쓸었다. 손끝이 미약하게 떨렸다. 포장도로가 끊기고 비포장도로가 나왔다. 재희가 양측 창문을 두리번거리자 지름길로 들어왔다며 안심시켰다. 꽤 오래 이 지역에 살았지만, 이 길은 처음이었다. 몸이 흔들리다 못해 반동에 살짝 튀어 올랐다. 거친 길에 재희가 미간을 찌푸렸다. 유골이 흔들리지 않게 두 손으로 꽉 안았다. 생기 잃은 입술에 하얗게 껍질이 일어나 있었다.

 

아 아가씨요. 내가 말했자나.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꼬. 거 참 보는 사람도 우울하게 와그라는교.”

 

그러더니 왼손으로 차를 더듬더니 여행용 티슈를 꺼내 던져주었다. 재희는 두 손에 잡힌 여행용 티슈를 멍하니 보다 사이드 미러를 쳐다보았다. 눈 밑이 거뭇해 보이긴 했지만 울 것 같은 얼굴은 아니었다. 재희는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가 세웠다. 휴지는 옆자리에 살포시 내려두었다. 햇빛이 불안정하게 차 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잠시 간 비포장도로가 끝난 뒤 낡은 골목길이 나왔다. 길옆에는 간판이 곧 떨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낡은 가게가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브신탕, 토기탕, 오리당, 염스탕 ……. 간판 글자가 한 글자씩 헤졌지만, 알아볼 수는 있었다. 머리가 하얗게 센 할아버지가 경이네 영양탕 안으로 들어갔다. 택시가 그 곁을 지났다. 재희는 살짝 열린 틈을 무심하게 보았다. 머리가 새하얗고 벗겨진 할머니와 할아버지 몇 명이 있었다. 숟가락을 반쯤 공중에 들고, 고개를 반쯤 숙이고 있었다. 역한 누린내와 매운 양념 냄새가 차 안으로 침입하는 듯했다. 재희는 미간을 펼 수 없었다.

 

아저씨는 무슨 일 때문에 제가 있던 곳에 계셨어요?”

 

낡은 가게가 늘어선 골목을 벗어났다. 서서히 아래로 내려오는 태양에 빛을 받은 가게들이 옅은 붉은 색으로 달아올라 있었다. 낮은 회색 담장이 이어졌고 그 뒤로 각진 공장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었다. 조금 더 뒤로 해상크레인의 윗부분이 보였다. 태양이 그곳에 비스듬히 걸려있었다. 하늘 위로 연기와 구름이 뒤엉켜있었다. 어느 것이 구름인지 매연인지 알 수 없었다. 재희는 저도 모르게 숨을 참았다. 코트에 쌓인 목덜미에서 미세하게 소름이 돋았다.

 

밥먹고 오는 길이었심니더. 어머니 산소가 그쪽에 있어가꼬 뵙고 오면서 겸사겸사.”

다행이네요. 밥 드신 거라서.”

다행이긴예. 거 고기가 영 시원찮아 가꼬. 오늘 영양탕을 먹었는데, 아니 뼈를 발라먹는데 거기에 철심이 있드라고. 짐승 뼈에 왜 철심이 박혀있는교. 이이잡아온 거 잖아예! 하 그래가꼬 대판했다아닝교!”

 

쭉 뻗은 도로 옆으로 생기를 잃은 나무가 쉴 새 없이 사라졌다. 그 뒤로 시옷자모양의 낮은 지붕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서 있었다. 조선소였다. 목적지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해상크레인의 기둥이 건물 사이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 밑으로 검푸른 바다가 검게 일렁이고 있었다. 빛나지 못하고 검게. 아주. 돌연 재희의 표정이, 무너지고 있었다. 이마에서부터 눈썹, 쌍꺼풀 없이 매끈한 눈 높지도 낮지도 않은 코. 그리고 유독 붉게 칠했던 입술. 무너졌다. 재희가 어깨를 들썩이며 울기 시작했다. 택시기사가 당황하며 백미러와 재희를 번갈아 보았다. 짙은 눈썹을 일그러트리며 눈을 굴렸다. 아가씨요. 아가씨. 재희를 다급하게 불렀지만 답하지 않았다. 오히려 세차게 고개를 내저으며 어깨를 들썩이기 시작했다. 택시가 차선을 나갈 듯 불안하게 움직였다. 택시기사가 자신에게 손을 뻗자 몸을 구석으로 당겼다. 얼굴이 눈물에 무너졌다. 손바닥이 눈물로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기사는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고 휴지를 집어 재희 앞에 탈탈 흔들었다. 무서워요. 무서워. 손을 떨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 개새끼 죽은 거가지고 유난이네. 하여간 여자가 첫 손님이면 재수가 없다니까.”

 

택시기사가 한숨을 크게 내쉬며 핸들을 오른쪽 주먹으로 내리쳤다. 차를 세우진 않았다. 미터기에 쉬지 않고 숫자가 올라갔다. 택시 옆으로 차와 가로수와 멈춰있는 바다가 흘러갔다. 인도 위를 걷는 사람들이 느리게 따라 올라오고 있었다.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었다. 낮은 지붕을 한 공장지대가 어느 순간 끊겼다. 끝없이 바다였다. 그 뒤로 해가 낮아지고 있었다. 크레인에 달린 작은 불 들이 켜지지 않았다. 만들어지다 만 배들이 바다 위에 덩그러니 버려져 있었다.

, 소리를 내며 차 문이 닫혔다. 문이 잠기는 소리가 나진 않았다. 택시기사는 재희에게 나온 금액보다 이만원을 더 불렀다. 고속도로를 탔고 먼 거리를 주행했으니 이 정도는 받아야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재희는 기사를 빤히 쳐다보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얼굴을 흠뻑 적셨던 눈물이 흐릿한 흔적으로 남아있었다. 벌게진 눈을 몇 번 깜박이다 엉킨 이어폰을 귀에 낀 뒤, 차에 서 내렸다. 핸드폰에 연결했지만, 노래는 흘러나오지 않았다.

살을 벨 듯 날카로운 바람이 얼굴에 달라붙었다. 긴 머리칼이 걷잡을 수 없이 휘날렸다. 재희는 오른손으로 코트 깃을 붙잡은 뒤 왼팔 사이에 유골함을 끼워 넣었다. 눈앞에 발가벗겨진 민둥산 이 보였다. 그 뒤로 태양이 마지막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온 세상 이 형용할 수 없는 주황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재희가 숨을 크게 들이켰다.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택시가 매연을 뿜으며 사라졌다. 신고 있던 구두가 또각또각 소리를 내며 앞으로 걸어갔다. 질은 흙에 구두 굽 자욱이 깊게 박혔다.

재희는 나뭇가지가 말라비틀어진 숲 안으로 들어갔다. 쉴 틈 없이 걸어 들어갔다. 몇몇 활엽수 가지에는 미처 떨어지지 못한 죽은 잎들이 위태롭게 매달려 있었다. 땅과 하늘 어중간한 곳에 걸려 흔들리고 있었다. 하늘은 하늘색으로 불리지 못할 만큼 변하고 있었다. 재희는 누군가 이 시간을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고 칭하는 것을 들은 적 있었다. 깊숙이 들어갈수록 여기로 돌아온 게 실수가 아니라는 생각이 강렬하게 들었다. 시간이 천천히 거꾸로 흘러갔다. 개가 잠들어 있는 상자를 고쳐 안고 걸어갔다. 발바닥에 저릿한 통증이 일어났다. 심장박동이 귓전에 강하게 울렸다. 붉은빛을 받은 재희의 표정이 그림자에 삼켜졌다.

 

딱 한번, 재희는 이 숲에 온 적이 있었다. 자신의 개가 함께였다. 이곳에 산지 어언 이 년쯤 되었고, 열다섯에서 열여섯으로 넘어가기까지 얼마 남지 않은 시기였다. 그쯤 재희는 넋을 놓는 일이 많아졌다. 당연한 일이었다. 교실엔 늘 미약하게 담배 냄새가 났다. 선생님에게서 나는 것은 아니었다. 학생부에 반영하기 위해 장래 희망을 조사하면 대다수가 없음이라고 적어냈다. 당연한걸. 어차피 공장에 들어갈 텐데. 같은 반 아이들은 창밖을 내다보며 말했다. 태양이 비스듬히 해상크레인에 걸려있었다. 크레인이 빛을 내는 듯했다. 이상한 반응은 아니었다. 돈이 좋구나. 재희의 부모님은 언제부턴가 뉴스를 보며 무표정으로 과일을 씹었다. 뉴스에선 늘 이름 모르는 사람이 한 명씩 죽었다. 이런 일이 잦아졌고, 부모님은 이곳으로 오기 전보다 살이 붙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당연한 게 아니라고 말하게 되는 건 껑충 짧아진 치마 때문이었다. 한 뼘이나 짧아진 치마는 재희를 늘 슬프게 만들었다.

고단한 몸을 문 안으로 쏟으려 하는 순간, 다리 사이로 개가 빠져나갔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개는 뒤 한번 돌아보지 않고 아파트 단지를 벗어났다. 혓바닥을 내민 채 활짝 웃으며 아파트 뒤쪽 산으로 달려갔다. 더 깊이, 더 깊숙이 들어갔다. 낮은 산, 꼭대기에 태양이 걸려있었다. 주변의 낮은 하늘이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나뭇가지가 그 빛에 타고 있었다. 산으로 들어갈수록 길이 험해졌다. 재희는 올라갈수록 휘청거리는 횟수가 늘었다. 발목도 서너 번 꺾였다.

그러나 멈출 수 없었다. 숨을 한 번 고르면 개는 두 배로 멀어졌다. 이를 악물고 얼어붙으려는 목구멍을 침으로 녹였다. 팔뚝과 다리에 도깨비 풀이 붙었다. 팔에 부딪힌 마른 가지가 맥없이 부서졌다. 더 깊이 들어갈수록 태양이 내려왔다. 나무 기둥에 걸려 부서진 듯 보였다. 시야가 속절없이 흔들렸다. 너무 깊이 들어왔다는 자각이 들었을 땐 이미 늦은 후였다. 땀이 얼굴을 뒤덮었다. 손으로 대충 닦으며 개를 보았다.

개는 가파른 절벽을 오르고 있었다. 네 발로. 재희는 침을 무겁게 삼킨 뒤 절벽으로 다가갔다. 절벽 높이에 잠깐 망설여졌으나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일상에서 지루함을 느꼈을 때, 다가온 한 마리 토끼에 의해 세상이 달라졌던 꼬마의 이야기가 있다. 동화를 믿진 않았으나, 개를 믿었다. 그리고 그 즉시, 재희는 어떻게 돌아올 건지 생각하지 않고, 개를 따라 절벽을 오르기 시작했다.

재희는 두 발과 두 손으로 땅을 짚으며 올라갔다. 뒤돌아볼 수 없었다. 옆에서 작은 돌 하나가 굴러떨어졌다. 밑을 보면 돌멩이 신세가 될 것 같았다. 재희는 눈을 꼬옥 감고 다시 바위를 짚었다. 오르면 오를수록 절벽이 가팔라졌다. 개는 앞만 보며 네발로 뛰어가고 있었다. 개 뒤로 해가 떨어지고 있었다. 어둠이 껑충 아래로 내려오고 있었다. 하늘이 온통 까맸다. 땀을 많이 흘린 탓인지 숨이 가빴다. 손에 힘이 자꾸만 빠졌다. 오르면 오를수록 깊고 깊어졌다. 몸이 돌이 된 듯 무거웠다. 개는 어느새 절벽 끝에 올라 하늘을 보고 있었다. 재희는 생각을 버리기로 했다.

절벽 끝에 다다랐을 때, 재희는 입을 다물 수 없었다. 땅보다 하늘이 가까이 있었다. 바다를 수놓은 불빛보다 하늘에 걸린 별이 더 밝았다. 동화처럼 아름답고 환상처럼 화려하지는 않았다. 재희가 숨을 쉴 때마다 하얀 김이 연기처럼 피어올랐다. 개가 갑자기 하늘을 보더니 컹컹 짖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듣는 소리였다. 재희의 개는 단 한 번도 짖은 적이 없었다. 달 옆에서 빛나고 있는 별을 향해 계속 짖었다. 어딘가 애달픈 소리였다. 재희는 조용히 다가가 개를 끌어안았다. 아무도 없는 세상. 아무것도 없는 공간. 온 전한 둘만의 시간이었다. 세상이 멸망해도 나쁘지 않을 듯했다. 개는 유일한 친구였고, 자신도 그런 존재일 거라 믿었다. 약속을 하나 할게. 재희는 개를 품에 안으며 말했다. 개가 품 안으로 파고들었다.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아버렸다. 개가 하늘을 향해 길게 울었다.

그날 밤, 척박하고 황량한 흙에 앉아 서로의 체온을 지켰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던 밤이었다.

 

그러나 더이상 절벽을 오를 수 없었다. 재희가 커버려서가 아니었다. 절벽이 사라졌다. 재희는 맥이 탁, 풀리는 기분을 느꼈다. 절벽이 있어야 할 자리에 회색 콘크리트 건물이 서 있었다. 재개발이 이루어지다가 멈춘 듯했다. 창문과 문이 있어야 할 곳이 뻥 뚫린 채 버려져 있었다. 정리되지 못한 여러 감정이 물들어오듯 밀려와 속 깊은 곳에 사무쳤다. 숨이 턱 막혔다. 물 밀려나듯 온몸에 힘이 빠졌다. 그 바람에 유골 상자를 떨어트릴 뻔했다. 재희가 다시 가슴을 주먹으로 퍽퍽 쳤다. 진동에 상자가 흔들렸다. 바람이 더욱 거세게 불었다. 눈과 코가 빨갛게 얼어가고 있었다.

재희가 자리에 주저앉아버렸다. 멍하니 밑만 바라보았다. 하늘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흐릿하게 달이 자리를 지킬 뿐이었다. 물감 스며들듯 하늘에 어둠이 퍼졌다. 어떤 의식처럼 하나의 절경이 되어가고 있었다.

. 하늘에서부터 굉음이 퍼졌다. 행성 하나가 떨어진 듯 굉장한 크기였다. 곧이어 세상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나뭇잎을 잃은 나뭇가지가 위아래로 흔들렸다. 저 멀리 고층건물이 요동쳤다. 어디선 가 비명이 울렸다. 재희는 상자를 꼭 껴안은 채 하늘을 바라보았다. 어둠에 삼켜지고 있었다. 다가오는 어둠과 눈앞에서 입을 쩌억, 벌린 어둠. 어느 것이 더 무서운가. 재희가 유골을 품에 안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약간 휘청거리긴 했지만, 일어선 이상 비틀거리지 않았다. 입술을 꽉 깨물었다. 다시 한번 쿵, 소리가 났다. 이윽고 세상이 조금 더 세게,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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