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 진리와 후 진리 | |||||
작성자 | 이** | 작성일 | 2017-03-20 | 조회수 | 86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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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사전 출판사들이 매년 새로운 단어들을 발굴하거나 조어하여 사전의 어휘를 풍부하게 만들어간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웹스터 사전이 1906년에 ‘psycho-analysis’를 새로운 어휘로 등록한 것이나 옥스포드 사전이 작년 2016년에 ‘post-truth’를 소개한 것은 그 좋은 사례에 해당한다. 옥스포드 사전측은 2016년의 단어로 그 단어 이외에도 몇 가지 것을 더 언급하였지만 특별히 그 단어가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끄는 것은 그것이 요즈음의 시대적 양상을 잘 요약하여 보여준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예의 그 ‘정신분석’이 웹스터 사전에 새로운 어휘로 등록된 것은 그 당시 세인들의 주목을 받고 있던 프로이트의 심리학에 말미암은 것이라는 점은 충분히 짐작가능하다. 그러나 옥스포드 사전의 예의 그 단어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 옥스포드 사전의 편집진들은 작년의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나 미국의 대통령선거 양상 등에 착안하여 그 단어를 2016년의 단어로 선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편집진들의 의도를 살리자면 그 단어는 ‘탈 진리’를 뜻한다고 보아야 한다. 그런데 그 단어에는 ‘진리 이후’ 또는 ‘후 진리’의 뜻 또한 들어 있다. 편집진들의 의도를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그 단어는 애당초 애매성을 띠고 있는 셈이다. 정치적?경제적 지형에 많은 변화와 혼란을 겪고 있는 것으로야 국내의 사정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작년에 시작된 정치적?경제적 혼란이 완화되기는커녕 더 심화되는 것을 보면 가히 지금의 시대적 양상은 ‘탈 진리’요 ‘반(反) 진리’라 할 만하다. 실지로 요즈음의 혼란이 초래된 것에는 정상적?z표준적 사고로는 납득되지 않는 면이 그 원인의 하나로 작용하였다고 볼 수 있다. 객관적 진리에 따르는 판단보다는 자의적 신념에 따르는 판단을 앞세울 때 그러한 혼란은 초래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각자 팔을 걷어붙이고서는 사라져 버린 진리를 대신하는 무언가를 모색해야 한다며 자신들의 의지와 힘을 과시하는 것도 있을 법한 일이다. 개혁가적 열의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지금의 혼란은 우리의 삶을 깨끗이 대청소하여 새롭게 단장할 수 있는 기회로 지각될지도 모르겠다. 개혁가적 사고방식으로 보자면야 묵은 때가 여기저기 덕지덕지 붙어있는 노인네 집보다는 깨끗하게 정리된 신혼집이 더 바람직하게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애당초 우리의 삶은 마냥 신혼집처럼 될 수 없다는 것은 긴 사색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삶의 진실은 결코 우리의 눈에 쉽게 띠지 않은 채 늘 가려져 있을 뿐, 사라지거나 없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요 또 현재의 삶을 새로운 것으로 대체할 수 있는 것은 더욱이 아니다. 그러니까 지금의 혼란은 없어진 삶의 진리를 대신하는 대안적인 새로운 것을 강구하기 위한 과정이 아니라, 진리가 더욱 진리답게 되는 ‘후 진리’를 정립하기 위한 과정인 셈이다. 삶의 혼란은 마냥 파국으로만 치닫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건설을 잉태하고 있는 그러한 것이다. 다만 이 건설은 혼란 속에서도 건설의 기미를 간파해내는 안목을 가지고 있을 때에야 비로소 가능하다는 것은 강조해 둘 필요가 있다. 노자는 자신의 도덕경에서 ‘잘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 이것을 일컬어 눈이 밝다고 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그리고 이어서 노자는 ‘부드러움을 끝까지 간직하는 것, 이것을 일컬어 힘이 세다고 한다’고 덧붙인다. 요즈음의 시대적 국면은 잘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줄 아는 눈 밝은 사람, 부드러움을 끝까지 간직할 줄 아는 힘 센 사람을 요구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다만, 눈이 밝은 사람이 곧 힘이 센 사람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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