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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뜨거운 감자] "인권은 만들어가는 것이다"
작성자 편** 작성일 2016-12-09 조회수 491

▲오문완 교수 (법학전공)


인권, 하루 아침에 생기지 않아

인권 발굴 과정이 곧 역사다

나아가며 길 만드는 것이 중요


몸부림 치면 낡은 법은 깨진다



  하도 세상이 어수선해 제정신을 찾기도 어렵다. 그래도 세상은 나아간다. 느리지만 꾸준히. 인권 역시 그러하다. 그런데 세상사 다 그러하지만, 인권이라는 게 하늘에서 뚝 떨어진 건 아니고 우리 선조들이 끊임없이 일구어낸 산물이다. 말로야 천부인권이라고 하지만 그게 눈에 보이는 건 아니다. 구체적인 인권 하나하나를 발굴해낸 과정이 인권의 역사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은 투쟁의 연속이었다.

  독일의 법학자 예링은 『권리를 위한 투쟁』(1872)이라는 작은 책자에서 법의 발전은 권리투쟁을 통해서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예링은 이런 멋진 말을 했다. 

  나는 “어떠한 불법도 감수하지 말라”는 것이 첫 번째 서열에 위치하고, “어떠한 불법도 행하지 말라”는 것이 두 번째 서열에 위치하여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고. 자기의 요구가 정당하다는 것을 사회적으로 승인받을 수 있도록 몸부림치는 가운데 낡은 법은 깨어지고 새로운 법이 만들어지게 된다.

  “생각해보니 희망이란 본시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없는 거였다. 이는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본시 땅 위엔 길이 없다. 걷는 이가 많아지면 거기가 곧 길이 되는 것이다.” 루쉰(노신)의 <고향>이라는 소품에 나오는 유명한 글귀이다. 루쉰에게 희망은 있는 건가 없는 건가? 보통은 ‘걷는 이가 많아지면 거기가 곧 길이 되는 것’이니 누군가 걷기 시작하고 남이 따라 걸으면 길이 생기는 터라 우리 삶은 희망적인 것이라고 해석한다. 그런데 일본의 시인 나카노 시게하루는 이렇게 말한다.

  “그것은 읽는 이에게 희망을 주고자 하는 말이 아니다. 희망은 없지만 걷는 수밖에 없다. 걸어야만 한다, 그것이야말로 ‘희망’이라는 이야기이다. 이처럼 루쉰은 희망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절망을 이야기한다. 암흑을 이야기한다.” (서경식의 <시의 힘>, 109쪽)

  그런데 ‘절망’을 말할 때도, “이런 짓을 해봤자 아무런 희망도 없어. 절망.”이라고 하는 것과, 루쉰이 말하는 ‘절망’과는 같은 단어이지만 쓰임새가 전혀 다르다고 한다.나카노 시게하루는 루쉰의 말에서 절망밖에 읽을 수 없건만 그럼에도 읽을 때마다 이렇게 느낀다고 말한다.

  “나도 좋은 사람이 되어야지, 어떤 일이 있어도 올바른 인간이 되어야지, 하는 것 이상으로 일신의 이해, 이기(利己)라는 것을 떨쳐버리고, 압박이나 곤란, 음모가들의 간계를 만나더라도 그것을 견뎌내며 어디까지나 나아가자, 고립되고 포위당하더라도 싸우자, 하는 마음이 저절로 생긴다. 그곳으로 간다.” (서경식의 <시의 힘>, 110쪽)

  중요한 것은 ‘나아가면서 길을 만드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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