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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내전의 참혹한 실상 표현
작성자 편** 작성일 2015-04-09 조회수 900

스페인이 낳은 세기의 거장 파브로 피카소(Pabolo Picasso, 1881-1974)에 있어 그의 수많은 작품들 중에서 작품규모가 가장 크고 매우 강한 호소력을 지닌 작품은 단연 이 벽화 형식의 게르니카(Guernica)라고 할수 있을것이다. 이 작품의 주테마는 당시 그가 탄생한 스페인 내란으로 인한 전쟁의 비극성을 극적인 감성 기법으로 표현된 작품이다.

당시 그가 50대 중반에 이르렀을 무렵 스페인에서는 일부 독일 나치를 지지하는 극우 민족주의자들이 좌익의 공화주의 정권을 공격하면서 1937년 스페인 바스크지역의 자그마한 시골 게르니카라고 하는 마을에 갑자기 폭격을 가하게 된다. 그로인한 피카소는 정신적으로 매우 큰 충격을 받고 일종의 반전(反戰)의 강한 메시지가 담긴 게르니카작품을 제작하게 되는 동기가 된다. 이작품(벽화)의 상황적 설명은 당시 나치의 비행기가 친공화주의 성향의 도시로 알려진 게르니카에 대낮에 사정없이 폭탄을 투하하여 수백명의 무고한 시민들이 집단으로 사망하게 되는데 당시 이곳의 시골의 한 초등학교에도 무참히 가격하여 수업 도중에 있던 어린 여러 학생들도 집단으로 참상을 입었고 이러한 처참한 소식을 전해들은 피카소는 이에 격분한 나머지 억울하게 죽어간 어린 영혼들을 달래기 위해 이 작품을 완성하기에 이른다. 한편 그 당시 공화주의 정부는 마침내 그 무렵 파리 세계 민국 박람회가 개최되는 시점을 계기로 피카소에게 정식으로 이 벽화 제작을 요청하기로 했다. 다시 말하면 이러한 비참한 참상을 미술작품을 통하여 세계 만방에 알려주려고 하는 의도가 있었던 것이다.

피카소는 이러한 사건을 비추어 볼때 화가의 역할이 반드시 필요할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이 내전의 참상이 일어한 연후에 그는 그림(회화)은 벽을 장식하기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적에 대한 공격과 방어를 목적으로 하는 전쟁의 도구이다라고 술회한 적이 있다. “게르니카벽화 작품에는 상징적 의미를 지닌 형상들과 사물이 많이 등장하게 되는데 그는 평소 성향적으로 의미가 너무 분명하게 들어나거나 직접적이질 원하지 않았고 늘 그 의미들을 설명하는 것을 싫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에서 만큼은 매우 다큐적 성격의 분노한 드라마틱한 테마를 주저없이 연출하고 있다. 예를 들면 화면에 주제로 등장한 말은 분노한 사람을 의미하여 황소는 내란의 처참함의 비극과 암흑속의 잔인함을 뜻한다고 그가 말한 바 있다. 또한 그림 왼쪽에는 한 여인이 죽은 아이를 부둥켜 않고 울부짖고 있고, 살아남은 어떤 황소가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군인이 바닥에 죽은채로 누워 있기도 하고 그 위에 창에 찔린 말이 어지럽게 묘사되어 있다. 그 반대편쪽으로는 공포에 질린 어떤 얼굴이 창문을 바라보고 있다. 불타는 집에서 한 여인이 쓰러져 비명을 지르는 동안 다른 여성은 탈출을 시도하는 듯하다. 이 그림속에 등장하는 모든 형상들이 각진 형태로 날카롭게 묘사되어 있는 점이 매우 인상적이고 특이하다.

이러한 형태들 사이에 사물들이 해체되고 부서진 것처럼 보이면서 파괴한 부분들이 강조되어있다. 고통으로 점철된 죽음으로 사람의 얼굴들은 피카소 특유의 입체파적 기법으로 왜곡되어 재해석된 작품이다. 그 외에서도 발견할수 있는 것은 명암의 갑작스런 변화는 내전 당시의 폭발의 순간적 섬광을 암시하는 듯 하며 별다른 유채색을 사용하지 않아 그림은 한 층 더 냉혹하게 우리에게 다가온다.

순간적이나마 이렇듯 전쟁터의 참혹한 현장을 당시 신문을 통한 지상으로서 먼저 접해본 피카소의 번뜩이는 감성과 그만의 고유한 표현기법으로 간주된다. 비록 매우 순간적이긴 하지만 여러 사람들이 무참히 죽어가고 있는 이 참담한 현장에서 그는 무엇을 상상했을까?

필자는 다시 생각해본다. 우리 인간은 언제나 필연적인 죽음을 생각할 때 우리는 각자 자신의 삶의 가치를 한 번 더 되새겨 보아야 되는 것이 아닐까?

백경원 한국미술협회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