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토 유관순 | |||||
작성자 | 편** | 작성일 | 2015-03-11 | 조회수 | 9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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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토 유관순
많은 정보와 끝없는 경쟁을 유도하는 사회 속에서 바쁘게 살다보면 삶의 목표를 세우기도 어렵고 내가 선택한 길이 맞는지에 대해서도 자신이 없어진다. 그러다 보니 미래 또는 삶의 가이드라인에 관련된 서적, 강연, 세미나 등이 유행하고 ‘멘토’라는 외국어는 일상용어가 되었으며 주변에서 유명한 멘토들을 자주 보곤 한다. 지난 3월 1일을 보내면서 대학생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멘토 한 사람이 떠올랐다. 유관순이다. 1902년 출생하여 1920년에 사망하였으니 지금의 대학 일학년생에 해당하는 나이에 삶을 마친 것이다. 지금 태어났더라면 새내기로 대학의 봄을 맞이하였겠지만 그가 태어난 시대는 그를 가만히 놔두지 않았다. 시대 상황이 너무 다른, 근 100여 년 전의 인물에게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점이 무엇이 있을까 하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그를 살펴보면 지금의 젊은이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지침들을 얻을 수 있다. 그는 국가관이 뚜렷한 용기 있는 인물이었다. 1916년 이화학당에 입학한 유관순은 1919년 파고다공원 3·1 만세운동과 3월 5일 학생 연합 시위에 참여하였다. 조국 독립에 대한 염원을 간직하고 이를 위해 열심히 싸운 용기 있는 학생이었다. 글로벌 시대에 뚜렷한 국가관을 갖는다는 것이 구시대적으로 생각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지난 3월 1일 일본 동경에서는 혐한 시위가 있었고 여전히 독도영유권 주장과 교과서 왜곡 시도를 계속하면서 극우로 치닫고 있는 아베정권을 바라보면 나도 모르게 애국심이 치밀어 오르곤 한다. 또한, 그보다 며칠 앞서 열린 카네기 국제평화연구소 세미나에서 미 국무부 정무차관은 동북아 문제는 한ㆍ중ㆍ일 3국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고 하였다. 미국이 국익을 위해 과거사 문제를 본질과 무관하게 동북아 역내의 안정만 강조하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유관순 같은 인물이 없었고 일제 식민지 시대가 지금까지 계속되었다면 지금 우리의 모습을 상상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우리 상황이 그 때와는 다르지만 자손들에게 더 나은 미래를 물려주기 위해서는 유관순이 지녔던 투철한 국가관을 바탕으로 용기 있게 앞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그는 자기 주도적이고 능동적이고 개척정신이 있는 사람이었다. 3·1 만세운동 이후 고향에 돌아온 유관순은 서울의 만세운동을 알리고 1919년 4월 1일 병천 시장에서 수천 명이 참여한 아우내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이날 유관순의 부모를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이 순국하거나 큰 부상을 당하였고 유관순은 주도자로 체포되어 공주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나이 어린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일을 계획하고 꼿꼿한 독립투사로 제 몫을 하였던 것이다. 부모님의 보살핌과 풍요로움 속에서 자란 지금의 학생들에게서 발견되는 부드러움과 여유로움, 체제에 순응하는 특성도 우수한 덕목이지만 자기 주도적이고 능동적이며 개척적인 성향은 삶을 살아가는데 주요한 덕목이 아닐 수 없다. 그는 의지가 굳센 사람이었다. 1919년 5월 9일, 유관순은 공주지방법원과 경성복심법원에서 재판을 받았는데, 함께 재판 받은 사람들은 모두 고등법원에 상고하였으나, 일제의 재판권을 인정하지 않은 그는 상고하지 않았다고 한다.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된 후에도 독립에 대한 의지를 버리지 않은 그는 1920년 3월 1일에 3·1 운동 1주년 기념식을 갖고, 옥중 만세운동을 전개하였으며 이 사건으로 그가 당한 고문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심한 것이었다고 한다. 지금 우리 젊은이들이 처한 상황이 어렵다. 그러나 열아홉의 어린 나이에 나라를 위해 굳은 의지를 지킨 이도 있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의지를 갖고 삶을 살아가는 것이 어렵지만 그리 해야 하는 것이다. 예전에는 멘토를 위인으로 삼았던 것 같다. 삶의 방향에 대한 안내를 위인전을 읽으면서 그들의 삶을 통해 배우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들이 살던 시대와 너무 달라 그들의 삶의 방식에 적용되었던 원리들을 현재의 삶에 대비할 수 없어서인지 더 이상 위인전을 읽지 않는 듯하다. 그러나 역사는 반복되고 삶의 기본원리는 변함이 없어 위인은 현재에도 좋은 멘토가 될 것이다. 더욱이 역사 속의 멘토는 삶의 의미도 가르쳐 주지만 우리에게 역사에 대한 인식도 다시 일깨워준다. 새 학기가 시작되었다. 올 봄엔 위인전을 좀 읽어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