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나갈 수도 없고 있을 수도 없고 | |||||
작성자 | 박** | 작성일 | 2014-12-03 | 조회수 | 8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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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갈 수도 없고 있을 수도 없고
심각한 청년 취업난과 졸업생보다는 재학생이 취업에 유리할 것이라는 인식에서 도입된 졸업유예제는 하나의 트렌드가 된 듯하다. 올 해 초 한 구직사이트가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대졸 또는 대학 재학 중인 학생 1,116명 가운데 53%가 ‘취업 준비’ 등을 이유로 졸업을 유예했거나 ‘앞으로 유예할 계획’이라고 답했을 정도다. 지난 10월 이런 트렌드에 영향을 미칠 만한 공지가 하나 떴다. 2015년 1학기부터 졸업유보자의 수강신청 제도가 일부 변경되어 “0원 등록‘이 폐지된다는 것이다. 얼마 전에 발표된 교육부 자료를 보면, 전국 144개 대학 중 121개교가 졸업유예 제도를 실시하고 있고 그 중 수강을 강제하는 학교가 75개교, 수업을 듣지 않아도 등록금을 징수하는 학교가 21개교이고 일부 또는 전체감면을 하는 학교가 5개교라고 하였다. 울산대학교는 전체 감면을 하는 5개교 중의 하나였던 셈이다. 그러나 내년부터는 반드시 1학점이라도 수강신청을 하고 학점별로 등록금을 내야한다. 졸업을 유예하는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무엇보다 취업을 못했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게다. 그 외에도 기업 지원 시 졸업자보다 재학생을 우대하는 경향, 성적향상이나 스펙을 쌓는 등 취업 경쟁력 증진, 또는 학생신분을 연장함으로써 스트레스를 덜 받고 도서관 출입 및 도서 대출 등 취업을 준비하는 데 이점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결과 현재 학교에 졸업유보생은 2010학년 대비 4배나 증가되어 2014년 1학기에만 800여명이라고 한다. 이와 같은 졸업유보생의 증가는 재학생 수를 증가시켜 학교의 여러 측면에 영향을 미친다. 교수 한명 당 학생 수가 많아지고, 학생 수 증가로 학생들의 수업만족도를 떨어뜨릴 수 있으며 학교 프로그램, 도서관 좌석이나 도서 대출 등에서 보다 경쟁적인 상황을 빚게 된다. 양측의 입장을 들어보면 졸업 유보를 할 수 밖에 없는 학생과 졸업 유보생들의 편의를 계속 봐주기 어려운 학교의 입장이 다 이해가 된다. 그렇다하더라도 졸업유보는 임시 방편은 될 수 있을지 모르나 목적 없는 졸업유보는 시간 낭비일 뿐 아니라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도 있으니 신중히 선택해야 하며, 학교도 졸업유보생들이 사회와 학교 모두에서 내처짐을 당하고 있다는 생각은 적어도 안 들게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학벌, 학점, 토익, 어학연수, 자격증 등 ‘취업 5대 스펙’이 봉사, 인턴, 수상경력까지 추가되어 ‘취업 8대 스펙’이 된 지금 졸업 유보생의 증가추세는 꺾일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이 문제는 더 이상 개인 또는 대학의 문제로만 인식할 수 없을 것 같다. 어떤 측면에서 졸업 유보는 학생들이 원해서 라기 보다 일자리를 보장해야 하는 국가와 사회에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국가와 사회는 이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만 인식하는 듯하다. 청년실업은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특히 다른 국가나 사회보다 고학력을 우대하여 높은 대학 진학률로 매년 많은 졸업생을 배출하고, 취업 스펙이 계속 늘어 젊은이들을 무한 경쟁에 내몰면서도 고학력자를 위한 일자리를 만들어주지도 않은 채 취업하지 못하면 낙오자가 된 것 같은 느낌을 갖게 만든 것은 국가와 사회이다. 대학 입학은 반드시 해야 하는 것처럼 느끼게 한 것도 우리의 교육제도와 사회이지만 사회는 나올 데가 없다고 한다. 경기불황에 따른 취업문이 좁다 하더라도 실제 현장에서는 사람이 필요하다는데 졸업생은 갈데가 없다고 한다. 구인자와 구직자의 눈높이가 다른 까닭이다. 우리 사회 속에 만연된 직업 귀천 의식과 올바른 직업 교육부재, 어느 세대보다 풍요로움 속에서 자란 젊은이들의 높아진 눈높이는 졸업 유보자를 양산하기에 딱 알맞은 조건이다. 국가와 사회는 변화되는 사회와 사회 구성원들에게 맞는 일자리를 연구, 생성하며 올바르고 건전한 직업교육도 동시에 진행했어야 했다. 이제 졸업유보생 문제는 더 이상 개인 또는 대학의 문제로 다룰 것이 아니라 사회구조적인 측면에서의 접근이 필요하고 개인, 대학, 정부 및 사회 모두가 이 문제에 대해 함께 고민해야 하는 시기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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