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색의 조화-슬픈 감성의 만남 | |||||
작성자 | 김******* | 작성일 | 2014-05-02 | 조회수 | 43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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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타프 클림트(1862~1918)의 작품은 관능적인 여성 이미지와 황금빛과 화려한 색채를 특징으로 한다. 모자이크와 패턴 사용을 즐겨 독창적인 양식을 발전시켰다. 그는 성과 사랑, 죽음에 대한 주제로 많은 사람들의 반향을 이끌어냈다. 그러나 자극적인 에로티시즘을 강조했다는 이유로 당시 많은 비판을 받기도 했다. 에곤 실레(1890~1918)는 죽음에 대한 공포와 내밀한 관능적 욕망, 인간의 실존을 둘러싼 투쟁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의 성과 죽음에 대한 묘사는 적나라할 정도로 솔직해 자극적인 에로티시즘으로 많은 논란이 됐다.
Q. 가장 인상 깊었던 그림은. 금비: 구스타프 클림트의 ‘사과나무’가 가장 인상 깊었다. 화려한 색채로 보는 이들에게 화사함과 생동감을 준다. 하단에 피어있는 꽃들이 봄이 오는 것을 알려주기라도 하듯 따뜻한 날씨에 가장 어울렸다. 미술전을 보며 가장 기분 좋은 그림이었다. 또한 ‘키스’는 많이 접해 본 명화라 익숙한 것이 주는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 반대로 에곤 실레의 ‘앉아있는 남성 누드’는 손, 발이 없는 강한 그림체의 누드화에 여백이 주는 압박으로 감상하는 내내 불편함을 느꼈다. 가장 어둡다고 느낀 그림이다. 동영: 구스타프 클림트는 뛰어난 화면 구성력을 가지고 있었다. 미술을 잘 모르는 이가 봐도 구성적 아름다움을 느낄 만큼 탁월한 능력을 그림에 담아냈다. 만약 그가 현대에 태어났다면 사진작가가 돼도 큰 성공을 거두었을 것이란 생각마저 들게 했다. 반면 에곤 실레는 그림에 우울함을 녹여냈다. 각각의 그림마다 상실감, 외로움이 드러났다. 시든 해바라기, 팔다리가 잘린 남자 그리고 어두운 배경에 복잡하게 그려진 건물들이 우울함을 대변했다.
Q. 구스타프 클림트와 에곤 실레를 비교하면. 금비: 구스타프 클림트와 에곤 실레 모두 에로티시즘을 강조했다. 그러나 구스타프 클림트는 에곤 실레보다는 부드러운 느낌으로 표현해 상대적으로 어두운 면이 덜 드러났다. 구스타프 클림트가 다양한 색채와 패턴으로 관람객을 홀렸다면 에곤 실레는 굵은 선과 세밀한 묘사로 관람객을 압도했다. 동영: 구스타프 클림트의 '키스'와 ‘유디트’는 한번쯤은 봤을법한 그림들이었다. 그것이 레플리카일지라도 실화로 보았을 때 느낌은 사뭇 달랐다. 유디트의 도도하고 어쩌면 건방져 보이는 모습은 팜므파탈적 매력을 물씬 풍겼다. ‘다나에’는 인간 피부에 대한 사실적인 묘사가 눈에 띄었다. 또한 다소 에로틱한 주제를 거부감 없이 볼 수 있도록 그려낸 것이 인상 깊었다. 에곤 실레의 작품 중에는 ‘앉아 있는 남성 누드’가 있다. 중요한 것은 이 남자의 팔다리가 잘려있다는 것이다. 단지 인체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누드화가 아닌 슬픔, 공허와 같은 상실감을 그려낸 인상적인 작품이다.
Q. 그림으로 느껴지는 구스타프 클림트와 에곤 실레는. 금비: 그림으로만 보았을 때 에곤 실레는 불행한 삶을 산 것처럼 느껴진다. 어두운 색채로 인해 그의 삶마저 불행하게 보였다. 구스타프 클림트는 동양적인 배경을 많이 사용해 그가 전 세계를 둘러보는 여유를 가진 사람이라고 느꼈다. 동영: 구스타프 클림트와 에곤 실레는 나타내고자 하는 바를 그림으로 잘 담아냈다. 그러나 둘의 표현법은 전혀 달랐다. 구스타프 클림트는 화려한 색감과 구도로 아름다운 작품을 그려냈다. 반면 에곤 실레의 그림은 아름다움보다는 상실감, 슬픔과 같은 감정에 치우친 그림을 거친 감각으로 그려냈다.
Q. 대학생들에게 미술전이란. 금비: 미술전은 과제가 아니면 내 돈 들여 잘 찾아가지 않는 곳이었다. 문화생활의 범주에서 영화, 연극, 뮤지컬 관람에 비해 잘 찾지 않았다. 음악회에 비해서도 발길이 적은 것 같다. 야동보다 야설이 더 야하다고 하듯 영상과 동작이 주는 감동보다 정적인 그림이 주는 감동이 더 많을 수도 있다. 때문에 조용히 생각하고 싶고 감동이 필요하다면 미술전을 찾아가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동영: 지금까지 미술을 대하는 자세는 항상 배움이었다. 우리는 미술책을 보며 슬픔, 상실감, 구도적 아름다움을 배웠다. 의무감에 피카소가 입체파 화가란 것을 외웠고, 고흐가 그린 그림들의 제목을 외웠다. 그러나 미술전을 가게 되면서 변화가 생겼다. 미술을 느껴보는 것이다. 미술적 안목이 높고 낮은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것을 실제로 앞에 두고 단 5초라도 그것을 바라본다면 의무감으로 머리 속에 외우던 것들을 마음으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한편 구스타프 클림트&에곤 실레 레플리카 명화전은 5월 11일까지 현대예술관 미술관에서 열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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