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대학교 | 울산대미디어
본문바로가기
ender

뉴스미디어

뉴스미디어

혁명 이상의 변화에 불을 붙여라!
작성자 최** 작성일 2013-11-03 조회수 1861

  지난 7월 31일 개봉한 영화 <설국열차>는 10여 년의 구상을 거친 영화다. 또한, 봉준호 감독의 할리우드 데뷔작이라는 것과 400억 원대의 예산이 투입된 영화라는 점에서 많은 사람의 주목을 받았다. 그뿐만 아니라 매 작품마다 다양한 해석으로 주목받는 봉준호 감독의 영화답게 <설국열차>도 다양한 시각에서 해석되고 있다.

기자가 주목한 <설국열차>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커티스(크리스 에반스 분)가 움직이는 방향과 남궁민수(송강호 분)가 움직이는 방향이다. 커티스가 엔진 칸으로의 전진만 생각한다면 남궁민수는 기차 밖을 바라보며 기차 밖으로 나가려하기 때문이다. 이에 주목해 <설국열차>를 관람한다면, 지배와 피지배?혁명?사회 구조와 개인 등으로만 풀이하기엔 부족한 느낌을 받을 것이다.

 

◆윌포드와 꼬리 칸 사람들

<설국열차>의 방향에 대해 언급하기 전에 먼저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이 있다. ‘열차의 아버지’ 윌포드에게 꼬리 칸 사람이란 무엇일까? 꼬리 칸 사람들은 열차에 무임승차한 반체제적인 사람들이며 심지어 살아가기 위해서 음식을 필요로 한다. 열차의 생태계는 고정돼 있는 데도 말이다. 그리고 이들은 윌포드에게 있어 언제든지 제거할 수 있는 존재다. 하지만 윌포드가 꼬리 칸 사람들을 제거하지 않고 살려둔다.

이유는 열차의 고정된 생태계에서는 인구조절이 필수인데, 꼬리 칸 사람들은 이런 역할에 적합하기 때문이다. ‘고객’인 앞 칸 사람들을 인구조절이란 명목으로 죽인다면 윌포드의 체제는 무너지고 말 것이다. 그렇다고 인구조절을 하지 않는다면 이 역시 문제가 된다. 이런 진퇴양난 상태에서 윌포드에게 꼬리 칸 사람들은 한 줄기의 빛과 같았다. 꼬리 칸 사람들의 혁명과 이를 막는 머리 칸 사람들 간 대립을 통해 완벽한 인구조절, 정확히는 생태시스템 조절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윌포드는 이를 통해 자동 인구조절을 할 수 있었다.

 

◆커티스와 남궁민수의 방향

영화 속 혁명 주동자인 커티스는 시스템 혁명을 꿈꾸면서도 시스템 안에 갇힌 인물로 묘사된다. 머리 칸과 꼬리 칸으로 대변되는 열차의 체제에 반대하며 앞으로 나아가지만, 열차 ‘내(內)’ 체제 자체에 대해서는 의문을 갖지 않기 때문이다. 반대로 남궁민수는 열차 ‘내(內)’ 체제를 넘어 ‘체제’ 자체에 대한 변혁을 추구한다.

영화에서도 이는 여과 없이 드러난다. 유례없는 성과를 보이며 성공적인 혁명을 이어가는 커티스는 정신적 지주인 길리엄(존 히트 분)이 “이제 그만 돌아가자”고 제안하는데도 불구, 결국 엔진 칸에 도달한다. 하지만 거기서 그를 기다리고 있는 진실은 냉혹했다. 커티스의 존재도, 그리고 그의 혁명도 ‘완벽한’ 열차를 위한 시스템의 일부였기 때문이다.

반면 남궁민수는 처음부터 끝까지 줄곧 기차의 창밖만을 바라보며 앞으로 나아간다. 그가 스시를 먹을 때도, 메이슨 총리(틸다 스윈튼 분)의 살인형제와 격전을 벌일 때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는 창 밖에서 ‘중요한’ 무언가를 발견한다.

 

◆남궁민수의 결단, 그리고 새로운 시작

크로놀을 모으며 엔진 칸에 도달해서야 남궁민수는 고백한다. 엄청난 위험이 수반되겠지만 크로놀을 이용해 열차 ‘밖’으로 나가야 한다고 말이다. 이런 남궁민수의 말에 커티스는 “다 얼어 죽게 하고 싶어?”라고 비난한다. 커티스가 체제를 비판하고 있더라도 열차 안의 시스템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때 마침 윌포드는 말한다. ‘존속’을 위해서 열차의 불합리는 필요악이며, 이제 자신의 역할을 대신해 달라고 말이다. ‘흙’의 논리가 아닌, ‘철판’의 논리에 익숙해진 커티스는 그의 유혹에 넘어간다. 하지만 열차의 무한한 생명을 위해 꼬리 칸 아이들이 희생되는 체제의 실체를 본 이후, 커티스는 열차에 희망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제서 커티스는 남궁민수에게 “Take fire"라고 말한다.

 

<설국열차>에서의 지배와 피지배, 사회 구조, 개인 등 사회 비판적인 부분들은 한국의 역사를 바탕으로 했다. 한미FTA, 대운하, 무능한 의회, 빈부격차에 따른 차별 등 많은 부분에서 한국의 부정적인 사회를 보여준다. 이에 대해 국민들은 촛불시위, 대모, 집회 등의 혁명으로 대응한다.

이러한 대립이 가장 극렬하게 치닫던 때는 봉준호 감독이 대학교 초년생이었던 1980년도이다. 1980년도 독재정권에 대항하여 학생운동을 시작으로 전국적인 시위가 발생, 성공한다. 하지만 혁명이 성공했음에도 노태우 전 대통령으로 체제가 이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윌포드가 말하는 체제의 존속이었다. 어쩌면 윌포드의 체제가 그랬듯, 우리가 누군가의 의도대로 움직이는 시스템의 일부일지도 모른다.

현재 여러 대학의 대학생들은 시국선언을 통해 정부에게 소리를 내고 있다. 영화 <설국열차>는 이러한 시국선언들도 윌포드가 말하는 체제의 일부는 아닌지 생각해 보라고 얘기한다. 영화를 그저 흥미와 스릴로 단순 감상하기보다 사회와 현실에 빗대어 생각해 볼 거리로 여겨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최근영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