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학기를 맞으며 | |||||
작성자 | 오** | 작성일 | 2011-09-07 | 조회수 | 8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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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또 한 학기가 시작된다. 여름 방학 때 무언가를 추구하다가 뜻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 학생들한테는 그 좌절을 치유할 또 하나의 기회가 온 것이다. 학창시절은 두 차례의 시작을 할 수 있다는 데서 여느 때와는 다른 축복받은 시기임이 분명하다. 아니, 방학까지 생각하면 네 번의 새 출발을 할 수 있는 기회의 시기이다. 그런데 동전에 양면이 있듯이 이 기회는 그만큼 많은 좌절로 끝나기도 한다. 그래도 좋다, 젊으니까. 그래서 이제는 흘러간 사람이 된 민태원은 청춘을 예찬하였다. “청춘! 이는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다. 청춘! 너의 두 손을 대고 물방아 같은 심장의 고동을 들어 보라. 청춘의 피는 끓는다. 끓는 피에 뛰노는 심장은 거선(巨船)의 기관같이 힘 있다. 이것이다. 인류의 역사를 꾸며 내려온 동력은 꼭 이것이다. 이성은 투명하되 얼음과 같으며, 지혜는 날카로우나 갑 속에 든 칼이다. 청춘의 끓는 피가 아니더면 인간이 얼마나 쓸쓸하랴?” 사이버공간을 뒤지면 이 유명한 수필은 찾아보기 어렵고, 각종 공연과 드라마, 음반에 대한 소개뿐이다. 그만큼 청춘은 예찬의 대상이다.
대학시절은 방황과 고뇌의 시기일 수밖에 없다. 자신의 앞길을 정했든 정하지 않았든 그 결정 또는 미결정을 그대로 가져가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아니 쉬어서도 안 된다. 그 결정이 평생을 좌우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인류의 역사는 그 결정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많은 장치를 마련하고 있다. 서양에서는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고 얘기하고, 동양에서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이니 법고창신(法古創新)이니 얘기를 해준다. 열하일기로 유명한 박지원은 <초정집서楚亭集序>라는 글에서 이를 잘 정리해 주고 있다. “옛것을 본받는 사람은 자취에 얽매이는 것이 문제다. 새것을 만드는 사람은 이치에 합당치 않은 것이 걱정이다. 진실로 능히 옛것을 본받으면서 변화할 줄 알고, 새것을 만들면서 법도에 맞을 수만 있다면 지금 글이 옛글과 같다.” 루쉰의 <고향>, 그 마지막 구절은 너무도 잘 알려져 있다. “나는 생각했다. 희망은 본래 있다고 할 수도 없고, 없다고 할 수도 없다. 그것은 지상의 길과 같다. 사실은, 원래 지상에는 길이 없었는데, 걸어 다니는 사람이 많아지자 길이 된 것이다.” 청춘의 고뇌와 좌절은 이 길을 찾고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서로 소통하는 것이다. 선생과 제자가, 선배와 후배가, 또래와 또래가, 남과 여가 소통하고 조화를 찾아가는 것, 바로 이게 새 학기를 맞는 마음의 자세가 아닐까. 주역에서는 64괘 중에서 가장 이상적인 괘를 지천태(地天泰), 태괘라고 한다. 양괘 세 쌍은 밑에 깔리고 음괘 세 쌍이 위에 있는 모습이다. 땅이 위에 있고 하늘이 아래에 있는 모양은 자연스럽지 않고, 자연의 형상과는 역전된 모양이다. 그러나 바로 이 점이 태화(泰和)의 가장 중요한 조건이라고 설명한다. 하늘의 기운은 위로 향하고 땅의 기운은 아래로 향하는 것이기 때문에 서로 만난다는 이치이다. 이를 화이부동(和而不同)이라고 바꾸어 말할 수도 있는데, 바로 이 생각이 인권의 출발이다. 자연을 사랑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생각하면서 서로를 존중하는 태도야말로 학창시절에 다져가야 할 덕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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