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는 지역어 연구모임인 ‘탯말두레’ 회원과 전국 초·중·고교생 및 학부모 123명의 헌법소원을 기각했다. 헌법소원의 내용은 “지역 언어의 특성과 기능을 무시한 채 서울말을 표준어로 규정하고, 표준어로 교과서와 공문서를 만들도록 한 국어기본법은 행복추구권과 평등권, 교육권을 침해한다”는 것이었다.
재판부는 “서울이 갖는 역사적 의미와 문화를 선도하는 점, 사용 인구가 가장 많은 점, 지리적으로 중앙에 있는 점 등 다양한 요인으로 생각해볼 때 서울말을 표준어로 삼는 것이 기본권을 침해한다 하기 어렵고, 서울말에도 다양한 형태가 있으므로 교양 있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말을 기준으로 삼은 것은 합리적”이라고 밝혔다. 문제가 되는 ‘국어기본법’ 제14조와 제18조는 각각 공문서를 작성할 때와 교과서를 편찬할 때 어문규범을 준수하도록 하고 있다. 어문규범은 표준어규정과 한글맞춤법, 외래어표기법 등을 말하며, 표준어규정 제1장 제1항은 표준어를 ‘교양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와 같은 헌재의 결정은 우선 한국어를 둘러싼 다양한 어문정책에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표준어만 인정하고 사투리를 무시하거나 배제하는 한국사회의 구조적 문제점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주의 깊게 지켜봐야 한다. 그렇지 않아도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부문에서 서울 중심인 한국사회에서 위와 같은 결정은 어문정책까지 서울 중심의 획일적인 문화라는 것임을 단적으로 드러낸 것과 마찬가지이다.
사투리는 사라진 언어가 아니다. 여전히 보통 사람들의 실생활에서 사용되고 있으며 지역문화의 고유성과 더불어 사투리는 새로운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표준어라는 명목만으로 국가에서 강제로 서울 중심의 표준어를 가르친다는 것은 삶과 교육이 전혀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식민교육과 다를 바 없다. 결국 서울 중심적 사고방식이 그대로 투영된 것이다. 이처럼 사투리를 천시하는 국가는 전세계에 대한민국밖에 없다고 한다. 일본의 경우 다양한 언어사전이 33종이나 되는 데 반해 한국은 표준어라는 이름으로 획일화된 어문정책을 고수함으로써 다문화시대를 역행하는 정책이 우려되는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표준어는 우월한 위치에서 언어문화를 지배하고 있다. 사투리는 실생활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함에도 결정적 순간에는 항상 주변부로 밀려나고 만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는 이러한 한국문화를 돌아보게 만든다. 고인은 유서 마지막 부분에 ‘작은 비석’에 대한 소망이 나온다. 그는 한국사회에서 크고 거대한 것들과 끊임없이 불화하면서 ‘작은 것들의 신화’를 꿈꾸었다. 작고 사소한 것들을 질식시키는 한국사회에서 그의 죽음 이후 사투리의 부활을 꿈꿔본다.
권경우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