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충일을 맞아 3일의 황금 같은 연휴기간에 15만 명이 넘는 인원이 72시간 철야 촛불집회를 진행했다. 촛불집회 참가자들의 마지막 발걸음은 청와대로 향하고 있다. 그 길은 전경과 경찰로 막혔지만 국민들은 ‘이명박 대통령과의 만남’을 고대하며 오늘도 청와대를 향해 걷고 있다.
87년 6월 민주항쟁, 당시엔 학생과 일명 넥타이부대가 집회 현장에 있었다. 그들은 소수지만 상당히 조직화 된 ‘운동권’이었다. 하지만 현재는 가족단위의 참가가 높고 초·중·고등학생들도 함께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여성이 있다. 7·80년대 화염병이 난무하는 집회현장에서 여성은 약자였고 그 곳에서의 역할은 다른 이들을 돕는 일에만 그쳤다.
하지만 오늘날은 다르다. 집회 현장에서 가장 눈에 띄는 모습은 유모차와 세발자전거를 탄 어린 아이들과 함께 나온 어머니들이다. 유모차 덮개에는 ‘광우병 쇠고기 싫어요’라는 플랑이 나풀거리고 아이의 표정은 천진난만하다. 유모차를 앞세우고 나온 어머니들의 목소리는 강력하다.
촛불집회 자유발언대에는 ‘촛불소녀’들이 길게 줄 서 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너나할 것 없이 발언대 위에 선다. 애띤 얼굴에 교복을 입은 소녀들은 ‘배후세력이 누구냐’고 묻는 이들에게 ‘우리를 촛불집회로 내몬 배후세력은 바로 이명박 대통령이다’라고 당당히 말한다. 정치에는 관심이 없을 거라고 여겼던 20·30대 여성들도 집회 현장에 뛰어 들었다. 인터넷 화장품 동호회에서 결성된 ‘새틴’ 회원들은 하이힐과 치마를 입고서 ‘평화시위를 보장하라’고 외치며 행진한다. 이들은 5.18 당시 시민들처럼 시위대가 가장 힘들어 하고 물품 보급이 끊긴 새벽 시간에 시민들에게 따뜻한 커피와 코코아를 건네고 있다.
이렇게 여성들이 이번 집회를 통해 일상의 정치를 주도하는 세력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그들은 기존의 진지하고 격렬한 구호 대신 위트와 유머를 이용해 유쾌하게 불만을 표현한다. 또 폭력과 욕설이 난무할 것 같은 집회 현장에서 전경들과 대화를 나누며 평화적이고 따뜻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여성들이 집회현장에서 두각을 나타낸 이유는 비단 지금의 촛불문화제가 ‘문화제’적, ‘축제’적 성격이 강해진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그만큼 먹거리가 생존권과 직결된 문제며 오랫동안 우리의 ‘먹을 것’을 책임져온 여성들이 미국산 쇠고기의 위험성을 가장 강하게 인식했기 때문이다. 여성들이 집회에 나오기 시작하면서 청소년들도 함께 자유롭게 촛불집회에 참여할 수 있게 됐고 이는 촛불집회에 전 대중적 참여가 이뤄지는데 윤활유 역할을 하고 있다.
“내 아이에게 광우병 소를 먹일 수 없다!”, “나는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하고 싶다”. 지금 서울 시청 앞, 부산항 앞, 아이들의 급식소 앞 등에서 들리는 그녀들의 외침은 그 어떤 정치적 구호보다 강하다.
박 다 영 편집국장 (정치외교학·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