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화상>노무현 양극화 | |||||
| 작성자 | 이** | 작성일 | 2007-04-11 | 조회수 | 376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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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2년 4월, 당시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필자의 관심은 온통 ‘새천년민주당의 대통령 후보 경선’이었다. 정치에 대해 아는 것은 없었지만 당내 경선을 통해 ‘후보’를 선출한다는 점이 매력적이기 때문이었다. 거의 매주 진행되는 경선을 지켜보면서 필자는 점차 노무현 후보를 지지하게 됐다. 단순히 ‘경선’ 때문만은 아니었다. 2002년 6월, 미군장갑차에 깔려 억울하게 죽은 효순이ㆍ미선이를 추모하는 촛불집회에 나와 함께 불을 밝히고 미국이 일으킨 일방적인 침략전쟁에 대한의 건아들을 파병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는 그의 모습이 믿음직스러웠다. 그가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던 1988년에 치러진 ‘5공 청문회’ 때 전두환 전 대통령을 호통쳤다던 과거 전력과 ‘빈농의 자식으로 태어나……’라는 문구로 시작한 그의 서민적 삶을 담은 소박한 광고 또한 한 몫을 했다. 결국 그해 12월, 그는 제법 당당하게 ‘대한민국의 제16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하지만 바로 다음해인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은 국민적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이라크 파병’을 결정했다. 게다가 같은 해에는 한-칠레 FTA 체결까지 진행했다. 마지막 KO 한 방은 바로 ‘김선일 씨 피살사건’이었다. 1차 이라크 파병에 이어 2차 파병을 준비하자 이슬람 테러리스트 알 자르카위가 파병 철회를 요구했고 이를 한국 정부가 받아들이지 않자 결국 잔인한 방법으로 살해한 것이다. 이는 매우 충격적이었다. 김선일 씨의 시신이 한국으로 들어오던 날 뉴스를 지켜보며 눈이 퉁퉁 붓도록 울었고 울산대공원에 마련된 김선일 씨 추모 분향소를 보면서 파병을 결정한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믿음은 완전히 무너졌다. 실망만 안겨준 노무현 대통령은 결정타로 ‘분노’를 안겨줬다. 지난해 새해벽두부터 기대를 져버리지 않고 ‘한미 FTA’ 추진 의사를 밝히고 국민의 반대여론과 관계없이 ‘무조건 타결’을 목표로 지난 1년 3개월 동안 무한질주를 해왔다. 많은 정치인들이 ‘한미 FTA’를 반대하며 단식투쟁에 나서고 국민들이 반대의 여론을 모아 촛불집회를 진행했지만 노무현 대통령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노무현 대통령은 일관된 사람이다. 단, 자신이 옳다고 결정한 일을 끝까지 추진하는 면을 봤을 때만 말이다. 하지만 그의 신념은 매우 양극화돼 있는 듯하다. “미국에 사진만 찍으러 가지 않겠다”며 미국에게 강한 펀치를 날렸던 대통령 후보 시절의 노무현과 미국의 경제적 종속국을 자처하며 ‘한미 FTA’ 타결을 환영하는 지금의 노무현이 같은 사람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이를 ‘노무현 양극화’라고 칭하고 싶다. 이 유 진 편집국장 (국어국문학·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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