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성의 CEO 되기>사랑하니까 괜찮아? | |||||
| 작성자 | 편** | 작성일 | 2006-09-08 | 조회수 | 30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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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2학년 그 당시 사귀던 남자친구가 군대를 가게 되었다. 군대 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만나던 날, 남자친구는 내게 성관계를 요구, 아니 강요에 가까운 요구를 했다. “키스나 스킨쉽도 했는데 그것만 안되는게 어디 있어?” 두 시간에 가까운 그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나는 준비가 안됐고 용기가 없다는 말로 그의 요구를 끝내는 거절했다. 그 뒤로 그 날은 용기가 없는 내가 그의 사랑에 응답을 해주지 못한 것으로, 남자친구에겐 목표달성에 실패한 하나의 기록으로 정리 되어버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갈수록 그날의 일로 내 기분은 나빠졌으며 결국은 그를 미워하고 원망하며 분노하는 마음까지 생기게 되었다. 도무지 나 조차도 내 감정의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2년이 지나서야 그것이 “데이트 성폭력”이란 것을 깨달으며 내 분노의 원인을 알기 전엔 말이다. 심지어 그 분노는 그 자리에서 yes, no를 정확히 말하지 못한 나에 대한 자책으로 번졌고 한동안을 괴로워해야했다. 그동안 그와 사귀는 과정에서 나의 ‘성’적인 부분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해보지 않았기에 어떻게 행동해야하는지 알지 못했다. 늘 상대가 원할 때에 성적접촉을 했고 정작 나는 내가 원할 때는 요구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늘 그가 해주기를 기다리기만 했고 그러는 것이 당연하다고 받아들였다. 결국 사랑 표현이니까, 사랑하니까 괜찮다는 생각은 내 ‘성’을 주체적으로 결정하지 못하게 했으며 나의 의사는 안중에도 없던 그의 태도는 나를 “데이트 성폭력”의 피해자로 그는 가해자가 되었다. “분명하게 의사를 밝히지 못했던 내 잘못이었을까? 아니면 뭐가 문제였을까?” 머릿속엔 나를 자책하는 말들이 떠나지 않았지만 그와의 ‘성’적인 관계에서 나는 피해자였으며 앞으로 절대 이렇게 성폭력의 피해자가 되지 말자는 생각과 실천의지를 불태우며 나 자신을 자책하는 것을 멈췄다. 이처럼 데이트 성폭력은 단지 기분 나쁜, 불쾌한 경험으로 정리되어 버리며, 성폭력으로 정의되기가 쉽지 않다.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의 하나로 손을 잡고 키스를 하고 포옹을 하는 행위가 어떻게 성폭력이 될 수 있는지 오히려 되묻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데이트 성폭력은 사랑하는 사이 혹은 사귀는 사이에서 상대방의 동의 없이 이루어지는 모든 성적 접촉을 말한다. ‘사랑 표현’으로 포장되어 수많은 성폭력 피해자를 만들어 내지만 우리 사회에서 심각하게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여성이 자신의 성적결정권을 행사하는 것이 어색한 사회문화, 여자의 no는 yes라는 왜곡된 의식, ‘사랑하니까 괜찮아’라는 생각 때문이다. 결국 데이트성폭력은 피해자도 가해자도 없는 일로, 단지 사랑의 상처로 기억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요즘 젊은 세대는 다른 어떤 세대보다 성에 있어 개방적인 사고를 하지만 데이트성폭력을 알고 그것에 대응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내가 원하진 않았지만 요구에 응하고, 기분은 나쁘지만 참으며 ‘사랑이니까’라고 말한다. 하지만 가해자에 대한 분노와 불쾌감은 끝없이 자신을 괴롭히게 된다. 그러기에 스스로 성적 자기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이 중요하며 이것은 처음부터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기에 끊임없는 학습과 노력이 필요하다. 성에 대한 올바른 정보, 지식을 알며 상대방과 성에 대해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며 생각을 공유할 수 있을 때 성적자기결정권은 힘을 발휘한다. 자신의 성적자기결정권을 당당히 행사하고 상대방의 의사를 존중할 때 데이트성폭력의 가해자도 피해자도 사라질 것이다. 조다영 실무자 부산성폭력상담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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