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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 바로보기>휴대폰의 문자기능을 없애주세요(?)
작성자 김** 작성일 2006-03-21 조회수 2844

  “서울이 그립습니다. 진짜 우유가 그립습니다.”라고 보아는 말했다. 누가 보아를 그리운 서울에 오지 못하게 하는 걸까? 대체 그게 무엇이길래 한참 커야할 애한테 우유도 못 먹게 하는 거야?


  대중문화는 자본주의에 대해 태생적 한계를 안고 있다. 산업화 이후, 입고 먹고 쓰는 것들이 획일화 되고 이에 따라 우리의 상품화, 규격화된 생활양식과 의식들이 하나의 문화를 이루며, 매스미디어를 통해 그 구조가 공고히 재생산되어지는 태생적 한계. 대량생산 가능한 공장과 미디어를 소유한 지배집단이 아니고선 이 대중문화의 홍수 속에서 대중들에게 무언가 이야기할 수 없는 구조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런데 그 거대한 확성기를 가진 지배집단이 대중문화를 통해 더 평등한 사회, 사람이 존중되는 사회를 이야기하길 기대하는 것은 어느 CF에서 휴대폰 문자메세지 기능이 없어지길 기대하는 것처럼 부질없는 짓일 것이다.

  대학문화의 꽃이라는 대학축제는 대규모 협찬사들의 경쟁적 홍보의 장이 되어버렸고 몇몇 총학생회 선거에서는 이미 협찬기업이 확정적인 상태에서 USB를 전교생에게 돌리겠다는 공약을 들고 나오는 선본이 속속 당선되고 있다. 공연문화의 건강한 토양으로서 역할을 담당해 온 대학로에서는 상업성을 목적으로 한 공연들이 우후죽순처럼 고개를 내밀고 있는데 관객이 공연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미리 접하고 티켓을 끊기란 쉽지가 않다. 또 대중문화의 집결체라고 할 수 있는 CF에서는 ‘세상을 가질 수 없다면’ 자사의 카드를 쓰라고, ‘우정도 빨간 사과로 관리’하라고 무책임한 소비를 권장하고 있고 ‘참 많이 변한 당신, 멋지게 사셨군요.’라면서 자사의 큰 차를 타는 것이 곧 성공의 표상이라는 이미지를 심어놓고 있다. 최근에는 국내 굴지의 통신사가 국민 모두의 축제였던 서울시청앞 월드컵 응원을 통째로 사들여버리는 어처구니없는 사건에 많은 국민들이 분노하고 있다. 낡은 것과 새 것, 보수적인 것과 진보적인 것, 민중적인 것과 지배적인 것의 모든 경계를 허물며 틈입해 오는 대중문화의 이러한 자본논리를 제대로 바라보지 않고서는 자본의 노예로 되는 것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자본의 착취는 그 범위를 한 개 국가 안에 한정하지 않는다. 문화 제국주의. 우리가 어릴 때부터 햄버거와 피자에 길들여져 온 것은 우리의 식성이 모두 같기 때문일까? 그리고 그런 ‘급먹거리’는 세트메뉴로 묶어 꼭 콜라와 함께 먹을 것을 강요하는 건 또 왜지? 그래도 김치버거나 불고기버거는 그나마 우리식 냄새가 나니까...하고 자위하며 우리는 고이 접힌 햄버거 포장을 벗긴다. 어디 먹거리 뿐이겠는가. 식민지 재편전쟁의 최대 참전국이자 이득국인 미국과 일본은 영화 속에서 서로 2차대전의 피해국임을 자처하며 애국주의와 전쟁의 정의로움을 들이먹이고 있으며, 그런 영화를 팔아먹지 못해 애가 탄 나머지 유네스코의 문화다양성협약에 서명을 거부한 채(미국과 이스라엘... 묘한 연관성...) 휴대폰 팔아먹으려면 스크린쿼터를 내놓으라며 FTA를 강요하고 있다.


  그러면 우리는 문화제국주의의 피해국이기만 한 것인가? 최근에 불고 있는 한류열풍은 우리 역시 언제든 문화 먹이사슬의 상층부에 놓여 어느 저소득 국가의 이윤을 빨아먹을지 모른다는 우려를 하게 만든다. 태국 노동자들 월급의 두 배가 넘는 돈을 받으며 태국 젊은이들을 콘서트장으로 불러들이는 어느 한류가수의 기사가 자랑스럽게 뉴스에 휘날리는 마당에 그런 우려가 기우만은 아닐 것이다.


  대중문화가 자본에 의한 착취도구로 이용되고 있는 한, 그리고 국가간 민족간 지배의 족쇄로 채워지고 있는 한, 우리는 대중문화에 철저한 비판의 눈과 극복을 위한 의지로 마주서야 한다. 근데, 보아랑 싸울 수는 없지 않는가!


  “보아야, 내 말 오해하지 말고 들어~ 거기서 고생하며 회사 배 그만 불려주고, 와서 우리랑 우유 한 잔 하면 안되겠니~?”


김태일

문학예술청년공동체

대학문화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