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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 바로보기>대중문화의 바다 위에 떠 있는 섬 ‘대학’
작성자 김** 작성일 2006-03-09 조회수 2751

  몇 편의 재난영화 마지막 씬에는 공통적인 장면이 있다. 대홍수로 모든 육지와 건물들이 바다에 잠기고 몇 안 되는 시민들이 섬처럼 남겨진 높은 지대에 살아남아 내일을 기약하는 장면이 그것이다. 어쩐지 우리 대학인들이 처해있는 문화적 현실과 참 많이 닮아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우리가 발 딛고 서있는 땅덩어리가 대중문화라는 거센 물살에 침잠되어 가는 것에 둔감해져 왔다. 2006년 현재, 우리 대학인들은 어느 문화적 토양 우에 까치발을 들고 서 있는가. 물이 더 차는 걸 막기 위해 담을 쌓을 것인가, 아니면 다른 많은 가치들처럼 대중문화의 바다위에 방향성 없이 표류할 것인가. 다섯 번의 연재를 통해 우리 대학인들의 문화적 위치와 대중문화의 심연을 들여다보고 어떻게 이 불안한 섬을 광범한 민중의 옥토로 바꾸어 나갈지를 고민해 보도록 하자.


  첫 번째로 스스로에게 던질 수 있는 물음은 ‘현재 우리에게 대학인들의 문화가 있기는 한가’하는 것이다. 제도권 교육에서 어렵사리 벗어나 사회에 눈을 뜨고 가장 진보적이고 창조적인 활동들을 펼쳐나갈 우리 대학생들에게 ‘대학문화’가 없다는 것은 두 가지, 아직 제도권 교육 안에 머물러 있거나 이미 그 제도를 재생산해내는 지배집단 내에 편입되어 가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일 것이다.


  한 때 ‘운동권문화’라는 말로 폄하되었던 대학 내의 공동체문화, 저항문화, 새로운 사회에 대한 담론들은 90년대 초 일정수준의 민주화 바람을 타면서 실체적 ‘적’을 상정하는데 한계에 부딪히고 대학은 자체적 문화생산의 주체들을 잃어가게 된다. 그러한 대학문화의 부재를 놓치지 않고 틈입해 온 것이 다름 아닌, 상업성을 최고의 가치로 하는 ‘대중문화’였던 것이다. 90년대 초반으로 기억되는 어느 시기, 나는 TV에서 일요일 아침마다 대학생들이 과단위로, 동아리 단위로 출전해 헬멧을 쓰고서 밧줄을 타고, 굴러오는 거대한 공도 피하고 마지막엔 외나무다리를 건너 최후의 승자가 되는 프로그램을 즐겨 보았다. 그때에는 과별, 동아리간 단합을 도모하는 모습이나 젊은 대학생의 패기 같은 것이 대중매체를 통해 조금은 느껴지는 때였다. 그러던 것이 언제부턴가는 전직 씨름선수였던 개그맨이 대학에 찾아가 남녀(간혹 남남)커플들을 모아놓고 타이타닉 자세로 오래 버티는 팀에게 상품을 주고 인기 가수들의 공연을 간간히 보여주더니, 지금의 대학 캠퍼스는 초대형 가수들의 콘서트장으로 전락해 버렸다. 퀴즈프로는 대학생들의 학문적 향연장(퀴즈 아카데미)에서 ‘전국민 상금불리기’로 기회의 확대와 자본의 속박을 맞바꾸었고, 다시 고개를 든 남녀 맞선 프로그램은 학벌과 외모로 출연자의 그룹을 나누고 있다. ‘멈출 줄 모르고’ 계속 새로운 시즌을 내놓는 어떤 시트콤에서는 아기자기한 기숙사에 살며 등록금에 대한 아무런 걱정 없이 사랑과 우정과 거짓말에 울고 웃는 예쁘고 멋진 대학생들의 일상을 너무도 ‘잔잔하게’ 그려내며, 한 캐릭터의 입을 빌려 ‘장기화된 경기침체로 인해 청년실업이 50만명에 육박한 이때에, 미래에 대한 철저한 준비 없이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겠’냐고 실토하고 있다.


  사실 필자역시 대중문화의 중독성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며 완벽한 대안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도 없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문화를 바라보는 관점 하나만 하나로 모으고 간다면 좋겠다. 세상은 우리에게 경쟁에서 살아남을 것을 강요하고 있다. 20대 80의 사회에서 모두가 20이 되라고 소리치고 있다. 그리고 대중문화를 통해 그것이 엄연한 현실이라고 웅변하거나, 아예 잊혀 지도록 일상의 아름다움을 노래한다. 선택은 우리의 몫이다. 그 경쟁의 논리에 몸을 던져 80을 밟고 20의 대열에 들어설 것인지, 아니면 경쟁논리(정)에 맞서는 우리식 논리(반)를 세워 100 모두가 함께 꿈을 이루고 사는 세상(합)을 만들어 갈 것인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있다. 그에 따른 문화적 대안을 앞으로의 연재를 통해 함께 모색해보자.


  섬은 물 위로 드러나 보이는 작은 땅덩어리를 가리키는 말일 뿐, 사실은 거대한 육지와 맞닿아있는 가장 높은 지점일 것이다. 지금은 물에 차 가라앉아 있는 거대한 땅덩어리를 믿고 발을 내디뎌보자. 바닷길을 내고 섬과 섬 사이를 잇자.



김태일

문학예술청년공동체

대학문화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