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커플>평평한 땅에 서다 | |||||
| 작성자 | 김** | 작성일 | 2005-12-07 | 조회수 | 31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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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7일, ‘우리겨레 하나되기’ 운동본부에서 주최한 1박 2일간 광복60주년기념 평양문화유적참관으로 평평한 땅의 의미를 가진다는 평양에 섰다. 인천부터 우리를 실은 비행기가 순안공항에 내려 커다란 김일성주석의 사진을 보고나서야 ‘내가 정말 북한에 왔구나’는 실감이 났다. 그리고 영화에서나 봤던 군복 입은 북한사람들이 우리를 반겨주니 순간 긴장이 되기도 했다.
평양에서 우리의 교통수단은 안내원선생님 3분과 함께한 버스였다. 이동 중에 버스 안에서 본 평양의 모습은 예상외로 밝고 평화로워 보였다. 우리나라와 똑같이 고층건물이 계속 보이고 웃으며 인사해주는 평양시민들을 보자 긴장했던 마음이 편안해졌다. 우리 일행은 평양시 호텔 중에서 제일 최근에 건설된 현대식 건물인 대동강의 섬 양각도에 위치한 ‘양각도 국제호텔’에 머물렀다. 짐을 풀고 호텔을 둘러보며 생각지도 못했던 좋은 시설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일행 중 최연소였던 나를 안내원 선생님들이 “막내야, 막내야”라고 부르시면서 식사는 맛있게 했는지 끼니때마다 챙겨주셨다. 음식을 많이 먹어 체한 걸 아시곤 눈이 마주칠 때마다 “속은 좀 괜찮냐”고 평양을 떠나는 순간까지 걱정해주셨다. “평양까지 왔는데 아프면 어떡하냐”고 안쓰러워하시며, 체했을 때 좋다며 손 지압을 꾹꾹 정성스럽게 해주시시는 안내원들.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지냈던 사이처럼 마음이 푸근해지고 친근함을 느꼈다. 한번은 너스레를 떨며 내가 “저희가 와서 좋으세요?”라고 묻자 금방 환한 미소를 지으시며 “너무 좋습네다”라고 젖은 눈망울로 말하셨다. 사람과 사람사이에, 마음과 마음사이에 정이 오고감을 알았다. 말로만 들었지만 평소엔 좀처럼 와 닿지 않았던 ‘한핏줄, 한민족’이 마음에 와 닿는 순간이었다. 평양시내를 참관하면서 저녁에 공연할 아리랑을 연습하는 많은 학생들이 가는 곳마다 보였다. 저녁이 되자 우리는 아리랑공연을 보러 15만 명의 수용능력을 갖춘 5.1경기장에 입장했다. 아리랑공연은 민요아리랑을 주제로 ‘민족의 운명사’와 세시풍속을 서사시적으로 표현한 예술 공연이었다. 환영장을 시작으로 서장, 종장, 본문 1-4장 및 13경으로 구성된 것이었고 무려 10만 명이 참가하는 카드섹션 및 집단 체조와 함께 화려한 빛의 3차원적인 레이저 영상이 어우러지면서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아리랑공연을 보는 도중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마치 영화화면이 바뀌듯 자연스럽게 바뀌는 카드섹션을 보자니 ‘학생들이 얼마나 피땀 흘려가며 연습했을까’라는 안타까움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아리랑 공연을 보면서 ‘이런 정신으론 못해낼 일이 없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완벽한 아리랑공연을 해내게끔 한 그들 깊숙이 박힌 사상이 섬뜩하게 느껴졌다. ‘도대체 북한에 있어서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장군이 어떤 존재이길래,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사회주의 사상이 어떤 것이 길래’라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다음날 잘 정돈된 고구려 시조 동명왕릉을 보고, 그 유명한 옥류관에서 평양냉면을 먹고, 북측 예술작품을 감상하며 짧았지만 많은 것을 느끼게 한 평양문화유적참관이 끝났다. 헤어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던 버스 안에서, 떨리는 목소리로 눈물을 보이시며 안내원선생님이 불러주신 ‘다시 만나자’는 노래를 나는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우리는 서로에 대해 잘 몰라서 우리만의 잣대로 북한을 평가해 남북교류협력이 빈번히 벽에 부딪히곤 한다. 우리는 더 이상 이념대립 할 것이 아니라 북측을 바르게 알아가기 위한 적극적인 활동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이번 평양문화유적참관은 북한을 실제로 우리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느꼈던 점에서 참 뜻 깊은 경험이었다. 김윤경 사회과학부·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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