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대학교 | 울산대미디어
본문바로가기
ender

뉴스미디어

뉴스미디어

<스포트라이트>‘배려’없는 ‘경쟁’사회
작성자 김** 작성일 2005-12-07 조회수 1072

  어린시절, 필자는 ‘경쟁’이라는 단어가 좋았다. 특히 ‘선의의 경쟁’은 매 시험 때마다 필자를 자극하던 아주 윤리적인 말 중의 하나다. 그러나 자라면서 이 말은 다른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특히 고3때는 ‘100등 안에 드는 사람’만 심야자율학습을 할 수 있게 해 ‘경쟁’에서 승리한 자들만 공부할 수 있게 했다. 그렇게 청년시절을 보내고 나니 이젠 대학이 살아남기 위한 ‘경쟁’을 제안한다. 경쟁은 ‘동종 또는 이종의 개체 사이에 생활에 필요한 환경자원에 양적인 제한이 있는 경우 이것들을 탈취하는 상호작용’이다. 생각해보면 필자는 늘 ‘경쟁’을 통해 모두가 함께 살아가기 위한 방법보다는 공평하게 받아야 할 것들을 빼앗는 것에만 익숙해져 온 것이다.


  정부도 ‘대학구조조정’을 명목으로 “살아남는 대학만 지원해주겠다”며 모든 대학을 하나의 경쟁구도 속에 몰아넣고 있다. 그렇다보니 당연히 정부는 ‘잘나가는 대학’에, 대학들은 ‘잘나가는 과’에만 지원을 늘리고 있다. 그렇게 모두에게 공평하게 돌아가던 지원금을 빼앗아간 소위 ‘잘나가는’ 곳들은 ‘살아남기 위해’라고  명분을 세운다. 우습지만 ‘살아남기 위해’라는 말은 정말 많은 것을 이해하게 하는 핑계가 된다. 우리말을 가르치는 ‘국문과’를 존폐위기에 놓기도 하고, 등록금은 매년 올리고, 대학이 당당히 돈을 벌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의 경쟁은 경쟁이 아니다. ‘경쟁’이라 함은 똑같은 조건 속에서 공정하게 이뤄져야 한다. 이미 잘나가는 것과 잘나가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경쟁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러니 한번쯤 생각해 볼 문제다. 한 대학 총장님의 “등록금 1천 5백만원의 시대가 와야한다”는 말의 의미 말이다. 등록금 1천 5백만원을 경쟁하기 위한 필수요건으로 세우고 잘나가는 사람들끼리의 경쟁구도를 만들려 하는건가?


  대학구조조정의 목적을 다시 한 번 살펴보고 싶다. 김영삼 정부시절부터 눈덩이처럼 늘어난 대학들의 거품을 빼고 알맹이만 남겨 정말 필요한 학문만 가르치고자 하는 것 아닌가.  그러나 정부는 그 알맹이가 ‘잘나가는’이 아닌 ‘꼭 필요한’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그리고 ‘꼭 필요한’은 ‘모든 국민에게 기본이 되는 학문’이요 ‘모든 국민이 평등하게 배울 수 있는 조건’을 갖춰야 한다.


  필자는 똑같이 ‘경쟁’이라 불리는데도 유독 어린시절의 경쟁만은 지금도 그립다. 우리에게는 ‘깍두기’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 시절 우리는 정규멤버에 속할 수 없는 한사람을 ‘깍두기’란 이름으로 소외시키지 않음으로서 그를 ‘배려’했다. 그 때를 떠올려보자. 우리가 ‘깍두기’를 정하던 그 때를, 제일 작고 힘없던 친구를 ‘깍두기’로 정하고 함께하지 않았던가. ‘경쟁’을 바라는 정부여, 이제 우리도 ‘깍두기’를 정하고 ‘경쟁’해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