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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논리로 설명이 될 수 없는 스크린쿼터
작성자 여** 작성일 2005-11-23 조회수 2718
 얼마전 폐막한 APEC회담에서 미국은 한국의 스크린쿼터에 대해 미약하게나마 언급을 했었고, 부시는 한국의 스크린쿼터에 대해 노골적 유감을 표명했었다.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스크린쿼터제란 개봉관에서의 한국영화 의무상영일수를 말하며 현행 146일로 정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한국의 스크린쿼터는 프랑스나 브라질에서 존재했었던 그것에 비한다면 상당히 복합적인 문제를 끌어안고 있다.

  앞서 언급한 프랑스나 브라질의 경우에는 현재의 한국처럼 미국과의 경제협정으로 인하여 스크린쿼터의 점차적 축소 및 폐지의 단계에 이르렀다. 프랑스나 브라질 모두 세계영화사에서 그 큰 족적을 남겼을 영화강국이었다. 그러나 스크린쿼터의 폐지이후 자국내의 극장점유율은 급격히 하락했고, 브라질의 경우는 사실상 영화산업이 사장된 단계에 이르렀다.

  현재의 한국 역시 이처럼 경제논리에 의하여 ‘영화’라는 문화산업이 사장될 국면에 처해져 있다. 정동채 문광부 장관은 스크린쿼터 현행유지할 것을 발언했지만

 

지난 18일 부산에서 있었던 APEC 반대투쟁 @김태형 기자

경제라는 무기를 쥐고 덤비는 미국의 공격에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심히 불안할 뿐이다.

그렇다면 한국영화에 있어서 스크린쿼터는 왜 필요한 것인가? 앞서 언급한 대로 의무상영일수 146일 이외의 문제들을 떠안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웰컴투동막골>이 800만 관객을 넘기고, <가문의 위기>가 600만을 넘긴 시대에 굳이 의무상영일수를 정해둬야 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단적으로 얘기하자면 <태극기 휘날리며>, <웰컴투동막골>이 한국영화의 전부는 아니다. 스크린쿼터는 이처럼 한국영화의 흥행대작들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이 아닌 한국영화의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이다. 현재의 극장가는 대기업 자본의 유입으로 멀티플렉스가 곳곳에 생겨나면서 극장 고유의 특성을 잃어간 채 자본주의적 엔터테인먼트 공간으로 변화되어가고 있다. 단순히 영화보는 곳으로서의 극장은 아니라는 얘기다. 현재 극장가의 대부분을 잠식하고 있는 멀티플렉스는 CJ의 자회사인 CGV, 롯데의 자회사인 롯데시네마, 국내에 진출한 외국기업은 메가박스, 영화제작사 시네마서비스의 계열사인 프리머스까지 해서 총 4개의 대기업이 극장가를 잠식하고 있다. 극장 그 자체가 아닌 대기업의 돈벌이 수단으로서의 극장에 걸리게 될 영화라면 말 그대로 돈이 될 영화를 말하는 것이다. 물론 용산 CGV나 강남 메가박스에서는 아시아인디영화제 및 일본영화제, 유럽영화제 등을 기획하여 영화매니아들의 욕구에 부흥하고 있지만 이 역시 영화의 다양성을 확보하는데에는 역부족이다. 한국영화 의무상영일수 146일 안에는 흥행대작들 외에 저예산 독립영화나 작가주의 영화에 스크린을 부여하자는 의미도 갖게 된다. 현재 한국영화의 중흥과 발전으로 따진다면 146일은 오히려 모자라다고 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미국은 한국영화를 잠식하기 위해 어떤 논리를 앞세우는가? 그들이 한국영화를 잠식하기 위해 내세운 수단이 스크린쿼터 축소 뿐일거라고 생각하면 그것은 분명 오해다. 다른 나라에서의 최고의 영화감독들은 늘 헐리우드로 건너갔다. 뉴질랜드 출신 피터 잭슨은 미국에 가서 <반지의 제왕>을 만들었고, 홍콩출신 오우삼 감독은 미국에 가서 <페이스오프>를 만들었다. 일본출신 나카타 히데오는 미국에 가서 <링2>를 만들었다. 앞서 미국으로 건너간 감독들은 각 나라의 영화산업을 대표하는 감독들이었다. 미국은 대자본으로 그들을 유혹하여 헐리우드로 불러들였다. 그러나 그들이 만든 영화는 절대로 그들다운 영화는 아니었다. 피터 잭슨은 <반지의 제왕>을 통해 새로운 자신의 스타일을 찾았다지만 뉴질랜드 시절의 피터 잭슨을 떠올린다면 이건 상당히 시시한 수준이다. 오우삼은 헐리우드에 가서 몰락한 가장 대표적인 감독으로 기록될 것이다. 나카타 히데오 역시 마찬가지다. 이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미국은 대자본을 투자하여 타국의 명감독들을 데려온다. 그러나 그들이 투자한 것은 그 감독들의 스타일에 투자한 것이 아니다. 바로 자신들에게 투자한 것이며 그들의 스타일을 돈 주고 사온 것이다. 즉, 문화의 대표적인 컨텐츠를 자신들의 식으로 녹여버린 것이다. 최근 헐리우드에서 불고 있는 일본 및 한국영화의 리메이크 붐 역시 같은 맥락에서 해석이 가능하다. 자본주의의 집결체 미국은 타국의 문화를 존중해줄 만큼 넓은 아량을 갖고 있지 않다.

 

  다시 스크린쿼터의 얘기로 돌아가보자. 앞서 언급한 바대로 그것은 단순히 한국영화를 보호하자는 이야기가 아닌 한국영화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그 다양한 문화의 뿌리를 내리게 하기 위함이다. 이것은 애시당초 APEC회담에서 언급될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것은 경제논리로 해석할 수 없는, 문화논리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쌀 협상에 관련해서도 심히 유감을 표하는 바이지만 스크린쿼터는 문화재보호법과 같은 것으로 문화적 논리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영화인들의 밥그릇을 챙기기 위한 투정이 아닌 한국영화의 다양성을 누리기 위함이다. 산업으로서의 영화에 앞서 우리에게 영화란 가장 현대적이면서 뿌리깊은 문화임을 명심하자.

 

                                                                                              여용준(철학. 휴학)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