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0회 부산국제영화제 답사기 - 10월 12일 | |||||
| 작성자 | 여** | 작성일 | 2005-10-21 | 조회수 | 37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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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6일부터 14일까지 열린 부산국제영화제에 직접 참가한 우리 대학교 여용준(철학 · 휴학) 학우가 상역작과 더불어 영화제 전반에 대해 보고, 듣고, 느낀 생생한 현장을 답사기 형식으로 엮어서 연재합니다.
# 해운대 백사장
어찌하다보니 5일간 피프를 돌아다니면서 해운대에 위치한 피프 파빌리온을 찾아간 건 마지막 날이 되었다. 지금와서 생각해봐도 참 의아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아무튼 그렇게 다시 찾은 해운대는 참 많은 것이 변해있었다. 새삼 바닷가를 옆에 끼고 하는 영화제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깨닫게 해준 순간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티셔츠를 찾기 위해 조금 일찍 출발한다고 하긴 했으나 나의 게으름증은 결국 17:00 영화 <빼앗긴 시선>을 포기하게 만들었다. 사실 별 생각없이 고른 영화라 그다지 땡기진 않았다. 영화를 포기하는 대신 보고 싶었던 사람들을 만나야 겠다고 생각했었다. 2년전 티켓팀 스탭으로 일하던 누나를 우연히 만났다. 메가박스 티켓부스에서 자봉이랑 노가리 까는 중이었다. 이런... 그리고 군대시절 동기녀석도 만났다. 꽨 동안에 깜찍한 것이 정말 무슨 개구장이마냥 생긴 녀석인데 그 녀석도 이제 많이 늙었더라. 예비역의 영혼은 역시 속일 수 없는건가보다. 영화제가 좋은 것은 좋은 영화와 좋은 만남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 ID CARD
지금으로부터 2년전, 막 전역하고 시작하는 직장생활, 난생 처음 내 이름으로 된 명함도 파보고, 군대가 아닌 곳에서 뭔가 책임져야 할 일들을 하는 내 모습이 참 기분좋게 의아해 보이던 그 시절. 나는 제 8회 부산국제영화제 초청팀 스탭이었다.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군대 전역 후 했던 일자리 중에서 가장 재밌었던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단기계약직이라는게 아쉬웠지만 이 일이 얼마나 재밌는지 몇 년째 영화제 스탭으로 눌러사는 사람들도 있곤 하다. 뭐... 난 그럴 베짱까진 없다. 8회때의 일들을 좋은 추억으로 갖고 살지만 한 번 더 해보고 싶긴 했다.
PIFF 센터로 갔다. 9회때 봤던 그 친구가 올해도 아이디카드를 파고 있다는 소식에 살아있나 싶어서 갔다. 녀석은 그 분야에 있어선 나보다 더 경력자다. 물론 8회때 처음 바뀐 시스템에 숙련된 사람은 나였지만 이제 그 친구는 9, 10회를 뛰었으니 경력도 나보다 길어진 셈이다. 작년에 초청팀은 분위기가 살벌했다고 한다. 아이디카드에게 듣기로는 초청담당자들이 일에 대한 경험이 없어서 막무가내로 하다보니 초청정보 넘어오는게 늦어서 아이디발급이 늦어졌다고 한다. 거의 7회 이전의 아이디카드 발급체제로 회귀한 셈이었다. 그런 아이디카드 체제를 바뀐 시스템에 알맞게 간단한 일로 만들어버린 사람은 바로 나였다. 7회 이전엔 3명의 자원봉사자를 데리고 했었는데 9회 이후로는 자원봉사자도 없다. 좀 외로워 진 셈이다. 그 친구는 올해도 많은 영화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여전히 관객인 나를 부러워하고 있었다. 꼬우면 지도 내년부터 관객하라지. 역시 영화제는 관객들을 위한 것인가부다. # AFA(Asian Film Academy)
제 10회 부산국제영화제를 '감독,배우와 영화를 보다' 이벤트로 오지 않았다면 저 행사로 찾아오고 싶었다. 올해 처음 시작된 행사인데 말 그대로 필름워크샵이다. 아시아 전역에서 선발된 28명의 영화학도들을 대상으로 6주간의 영화수업을 하는 것이다. 교장선생에 허우 샤오시엔, 교수진에는 차이밍량, 박기용, 모흐센 마흐말바흐 등 아시아의 명감독들이 두루 교수진에 개입해있는 말 그대로 아시아 최대규모의 필름워크샵이다. 지원을 고민했었으나 좌절하게 된 건 모든 수업이 영어로 진행된다는 점이었다. 그땐 그랬다. 영어를 못하면 영화공부도 못하는구나 생각했었다. 헌데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그렇다고 내가 영어를 아예 못하는 것은 아니다. 최소한 외국인 만나면 간단한 회화정도는 할 줄 안다. 앞서 만난 스탭친구는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거 영어회화만 할 줄 알면 수업듣는데 지장없다던데...", "야, 생각해봐라. 영어권 국가에서 온 애들도 아닌데... 교수나 학생이나 영어 못하는 사람들 많아.". 가만 생각해보니 맞는 말이다. 영어가 만국공통어마냥 쓰여지긴 하지만 아직도 세상엔 영어를 못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그러나 영어를 배울려고 발버둥 치는 나라가 우리나라말고 또 있는지는 모르겠다. 다시 한 번 생각하지만...영어, 그거 배울 시간에 영화공부나 더 하자.
# <하녀> 김기영 감독의 영화는 분명 낯선 영화임에도 그것이 너무나 친숙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아마도 너무나 유명해졌기 때문이 아닐까? 썡뚱맞는 얘기지만 이런 김기영 감독을 세상에 꺼내어 준 박찬욱 감독에게 다시 한 번 감사드리며, 이번 영화제에서 본 영화 중 가장 재미난 영화로 칭하고 싶은 <하녀>에 대한 감상을 엮어 보고자 한다. 영화를 좋아하던, 좋아하지 않던 이 영화가 보여주는 최고의 미덕에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아역배우 안성기를 보는 것과 초섹시다이너마이트급 몸매의 엄앵란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비록 손상된 프린트를 재편집, 인화해서 만든 프린트릴이라 보는 동안 불편하긴 했으나 이 영화는 그 불편함마저 사랑스러웠다.
영화의 유머는 분명 50년대 식이다. 유치한 구어체 대사와 50년대에나 가능한 상황들은 분명 시대를 보여주지만 영화의 스토리라인이나 그 정서는 현대에 내놔도 손색이 없는 깔끔한 스릴러이다.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하녀의 섬칫한 연기는 간담을 서늘하게 하기 충분했고, 음모를 꾸미는 엄앵란씨의 연기와 김진규씨의 연기 또한 일품이었다. 게다가 마지막에 두번이나 뒤통수를 후려치는 반전은 과연 예술이었다. 시대가 시대니 만큼 그런 반전을 심은 것인지 아닌지... 50여년이 지난 영화라도 감히 스포일러 하고 싶지 않은 훌륭한 반전이었다. 이 영화...올해 영화제에서 본 것 중 단연 최고다. # 감자탕과 함께 한 부산에서의 마지막 밤
김지운 감독님은 스케줄 때문에 새벽이 다 되어서 도착하셨다. 부산 해운대 안내책자에도 소개된 일본식 선술집 '미나미'를 가고 싶어하셨지만 언급한 대로 안내책자에 소개된 집이다. 자리가 있을리가 없었다. 그리하여 우리가 선택한 메뉴는 감자탕집. 얼큰한 국물과 싸한 소주 한 잔은 잠을 잊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그제서야 정말 진지하고 재미난 이야기가 오고 갈 수 있음 또한 즐거웠다. 그 이야기 내용을 다 언급할 순 없어도 에스프레소와 이스탄불은 아직도 잊을 수 없는 화두임에 틀림없다. 자리에 있었던 사람만 아는 이야기다...후훗..ㅋㅋ # 티셔츠
올해는 이벤트 참가자들에게 티셔츠를 준다고 한다. 어느 정도 각오는 했지만 역시 최악의 디자인임에 틀림없다. 담배사러 집앞 슈퍼가기엔 입기 좋았으나 공교롭게도 난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이 티셔츠를 엇다 써야하나 고민하던 우리는 거기다가 김지운 감독님의 사인을 받기로 했다. 영화제 기간 중 참 많은 사인을 했던 김지운 감독님은 거의 마지막 사인인 셈치고 티셔츠 12장에다가 모두 사인을 해줬다. 나도 사인티셔츠를 보관하고 있는데 공교롭게도 사진을 못 찍었다. 그리고 13번째 티셔츠인 감독님 티셔츠에는 우리 12명의 사인이 담겨져 있었다. 감독님도 처음부터 그거 입고 어디 다닐 수는 없을거라는 계산을 하셨었다. # 이 색기를 공개수배합니다.
하재봉 선생 밑에서 수업을 듣는다는 걸로 봐서 녀석은 동서대 영상학부 쪽 학생이다. 생긴 걸로 봐서 예비역이다. 게다가 알렉스 프로야스 감독의 <다크시티>에 나오는 외계인을 닮은 걸로 봐서 결코 범상한 외모는 아니다. 즉, 찾기 쉬운 놈이란 얘기다. 녀석이 지은 죄는 우리 팀원의 티셔츠를 훔쳐간 유일한 용의자로 지목되었다는 사실이다.
사건개요는 이렇다. 티셔츠에 사인을 다 주고받은 다음 기념으로 단체사진을 한 장 찍었다. 그때 마땅히 사진 찍어 줄 사람이 없어서 옆테이블의 그 학생에게 사진 찍어줄 것을 부탁했다. 아까 처음 감자탕집에 들어갔을 때, 김지운 감독님에게 사인을 요청한 것도 있고 해서 뭐 그 정도는 찍어주겠지 싶었다. 녀석은 농담반 진담반으로 티셔츠 얘기를 꺼냈다. 사인티셔츠기에 절대로 내줄 순 없었다. 암튼 그렇게 사진을 찍어주고, 안면부 도금시술을 받았는지 낮짝 두껍게도 우리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그렇게 일단 녀석은 지 자리로 가서 다시 술을 먹었다. 새벽 4시가 임박할 즈음 감독님은 내일 일찍 출발하셔야 했기에 숙소로 향했다. 우리는 모두 감자탕집 문앞까지 나가서 감독님을 배웅해드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1명은 짐을 지켰어야 했다. 감독님을 보내드릴 즈음 옆테이블 녀석들도 계산을 하고 나갔다. 그러고 다시 들어와서 한참 이야기하다가 일어날 즈음, 팀원 한 명의 티셔츠가 없어졌다. 다시 한 번 언급하지만 사인티셔츠다. 방석사이도 다 뒤지고 한참을 뒤졌지만 없었다. 용의자는 좁혀졌다. 아까 그 <다크시티>에 나오는 외계인 닮은 녀석이 탐내면서 집어들었던 티셔츠였기 때문이다. 그 놈을 공개수배한다. 잡히면 죽는다!!! # 백사장 옆에서 맞이한 아침. 참 의아한 건 술이 없이도 밤을 샐 수 있다는 사실이다. 백사장에서 아침을 맞이하기 위해 당연하다는 듯, 맥주를 집어들었으나 왠일인지 전부 다 음료수와 아이스크림을 들었다. 이런 바람직한 아이들을 봤나... 대세에 편승하여 나 역시 녹차페트를 들고 백사장으로 향했다. 그렇게 노가리를 까는 가운데 피프의 마지막 아침을 맞이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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