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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고래‘KOREA’를 찾아서
작성자 이** 작성일 2005-09-28 조회수 2513

  세계 80여종의 고래 중, 그 이름에 ‘Korea’가 들어가는 유일한 고래가 있다. 바로 영명은 ‘Korea Gray Whale’, 우리 이름은 ‘귀신고래’다. 고래 중 가장 긴 거리를 회유한다는 귀신고래를 최초 촬영해 다큐멘터리로 제작한 울산 MBC 이영훈 PD를 만나봤다. 


▶ 험난한 만큼 보람된 1년간의 취재현장

  “한국 귀신고래가 우리 동해를 활개 했고, 지금도 다닐 것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다”는 그. 취재를 시작하자마자 러시아, 캐나다, 멕시코, 미국, 일본 5개국을 다니며 겪은 일들을 풀어놓기 시작했다.

  첫 촬영지는 한국계 귀신고래가 나타난다는 러시아 오호츠크 해였다. 하지만 너무나도 잔잔한 수면에 ‘과연 나타날까?’라며 조급해 했었다고. 그러나 일순간 분수처럼 솟아오른 고래에 탄성을 지르며 놀라워했다고 한다.

  한편, 그는 아찔했던 기억도 떠올렸다. “귀신고래가 촬영 중인 보트를 꼬리로 치는 바람에 모두가 넘어 졌지만, 다행히 보트가 뒤집어지지 않아 계속 촬영을 할 수 있었다고. 다시 떠올리면 아직도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고 한다.


▶ 끈끈한 인연, 귀신고래

  그는 울산 곳곳엔 고래와 관련된 흔적이 많다고 말한다. 대표적으로 ‘염포’라는 울산의 옛 명칭에서 찾아볼 수 있다. 울산 앞바다는 염분 농도가 가장 높은 곳으로, 고래가 번식하기에 적합하다. 왜냐하면 고래는 물 속에서 숨을 쉬지 못하는 특성으로 인해 출산 시에는 물에 잘 뜨기 쉬운 염분이 높은 곳을 찾게 된다. 이후, 출산 시 새끼를 꼬리로 튕겨내 숨을 쉴 수 있도록 바다 밖으로 내보내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흔적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반구대 암각화’가 있다. 갖가지 모습의 고래그림만 봐도 고래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밖에도 그는 “산모가 미역국을 먹는 것도 귀신고래로부터 시작됐다”고 말했다. 조선 후기의 학자 이규경이 쓴 ‘오주연문장전산고’에 따르면, ‘사람이 고래뱃속에 들어가 보니 미역이 가득한 가운데, 악혈(죽은피)이 녹아 물이 돼있더라’는 구절이 있다. 즉, 미역이 보양작용을 한다는 의미다. 그 이후로, 산모들이 보양을 위해 미역국을 먹게 됐다. 귀신고래와 우리민족과의 끈끈한 인연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 화해와 통일의 상징, 귀신고래

  미국, 소련(러시아)의 냉전이 무너지기 시작한 계기가 귀신고래였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1988년 북태평양 북부에 있는 베링해의 얼음에 귀신고래가 갇힌 일이 있었다. 미국인들이 고래를 살려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을 때, 소련이 함께 동참해 쇄빙선으로 얼음을 깨서 귀신고래를 살려냈다고 한다. 이후 귀신고래는 화해와 통일을 상징하게 됐다고. 우리나라 역시 마찬가지다. 귀신고래가 동해로 돌아오기 위해서는 북한 바다를 지나야 하는데 이때 북한 과학자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는 “서로 협력한다면 수수께끼 같은 귀신고래의 회유경로도 알 수 있을 것”이라며 “이를 통해 남과 북이 좀 더 가까워지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 귀신고래를 볼 수 있는 그날까지

  한국 귀신고래가 점점 ‘Korea’라는 위용을 잃어가고 있다. 일본, 중국에서 발견되는 귀신고래가 정작 한국 앞바다에는 발견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고래가 한국으로 회유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환경으로 변해가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왜냐하면 고래의 주요 통행로인 동해는 배가 자주 드나드는 해양중공업이 발달돼 있고, 어류를 잡기위한 그물이 많아 고래의 통행을 방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그는 “귀신고래가 해안가로 지나다니는 특성이 있는데 이를 우리 스스로 막고 있다”며 “고래의 통행로는 양보하며 바다를 독점하는 행위는 없어질 수 있게 어민들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앞으로 강연, 저술 등을 통해 고래의 중요성을 고취시키도록 노력하겠다”는 그의 말처럼 다시 동해 앞바다에 귀신고래를 볼 수 있는 그날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