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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플>잊지못할 1개월(in Canada)
작성자 김** 작성일 2005-04-12 조회수 2480

  나는 1학년 여름방학에 학교에서 실시하는 외국어 어학연수에 참여 하게 되었다. 출발일자는 7월 2일, 캐나다 두개의 도시로 약 60명 정도의 학생이 반으로 나눠서 한 도시에 30명씩 가게 되었다. 인천국제공항에서 수속절차를 밟고 철저히 출발준비를 한 뒤 우리는 캐나다행 비행기로 몸을 실었다. 캐나다에 도착한 우리는 벤쿠버 국제공항에 내려서 입국 절차를 밟은 후 다시 조그만 비행기를 타고 우리가 생활할 도시 사스카츄완을 향했다. 도착시간은 밤 10시쯤 됐었던 것 같다.


  공항에서 나오는 우리를 한 달 동안 보살펴줄 홈스테이 가족들이 반겨 주었다. 나의 홈스테이 가족들은 필리핀계 캐나다인인 엘머와 그의 부인 킴 그리고 그들의 딸인 리스와 또 홍콩에서 어학연수온 아이번이라는 동갑내기 친구 이렇게 4식구였다. 그렇게 나의 홈스테이 생활은 시작됐다. 


  캐나다의 식습관은 한국인이 느끼기에는 정말 느끼한 식단 일 것이다. 다행이 우리 홈스테이 아저씨가 필리핀계라서 매일 저녁에는 쌀을 익혀 밥을 먹었지만 다른 반찬들은 느끼함 그 자체였다. 그렇게 늘 느끼한 음식들만 어렵게 먹다가 한번은 아줌마가 아주 매운 닭요리를 해주겠다고 하셨다. 매운 음식을 좋아하고 즐겨먹던 나한테는 더 없이 좋은 소식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요리가 완성되고, 모양은 새빨갛고 아주 먹음직스럽게 생겼었다. 아줌마는 “very spicy, very hot” 하면서 아주 매우니 천천히 먹으라고 했다. 기대를 하면서 먹었던 나는 조금 당황했다. 아주 맵다고 하면서 만든 요리가 내 입에는 그냥 조금 매콤한 정도의 양념치킨 같았다. 그래도 이 정도의 매콤한 것도 어디냐 하며 먹고 있는데 옆을 바라보니 아줌마가 땀과 눈물을 흘려가면서 아주 매워하시며 드시고 계셨다. 그 모습을 보며 속으로 웃음이 좀 나왔다. 그리고 역시 식습관의 차이도 많이 느꼈었다.


  학교에서는 한 달 동안 어학연수 프로그램인 ESL프로그램을 받게 되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1시까지 수업을 하고 수업이 끝난 한시 이후로 Activity를 했다. 그래서 많은 곳을 돌아 다녔는데 그 중에 Hutterite Colony를 방문 했던 것이 기억난다. Hutterite Colony는 도시에서 버스타고 한 시간 정도 가면 있는 조그마한 공산주의 마을이었다. 공산주의라 하면 북한처럼 그런 좀 딱딱하고 엄격한 것을 많이 떠올렸는데 그런데 그것과는 조금은 달랐다. 그 마을은 자급자족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고 많은 가축들을 기르고 아주 넓은 농장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거의 생활에 필요한 대부분의 것들을 자기들이 만들거나 길러내서 쓰고 평화롭게 사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러나 내가 생각하기에는 삶이 좀 지루해 보였다. 어떻든 참 신기한 체제를 갖춘 마을이었다.


  그렇게 Activity와 여러 신기한 것 들을 구경하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금방 흘러 가버리고 어느덧 마지막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캐나다 생활에 많이 익숙해져 처음에는 “I’m hungry”처럼 이런 간단간단한 문장들 밖에 할 줄 모르고 더듬거리기까지 했었다. 그러나 끝날 쯤에는 간단한 농담도 주고받으면서 지낼 정도로 의사소통도 원활했었다. 그런데 벌써 시간이 흘러가 버리다니 너무나 아쉬웠다. 마지막 날 공항에서 많이 울기도 울고, 많이 웃기도 웃으며 사진을 남기고 그리고 우리 홈스테이 딸이었던 리스도 내가 떠난다니 슬퍼했었다. 울먹거리며 나를 보내기 싫어하는 모습을 보니 나도 모르게 눈앞이 흐려졌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캐나다 생활을 다시 생각해보니 한 달 동안 달콤하고 잊을 수 없는 그런 꿈을 꿨던 것만 같다.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2004년 7월의 캐나다 사스카추완의 여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