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돈키호테>피아노로 숨 쉬는 남자, 한동일 | |||||
| 작성자 | 이** | 작성일 | 2005-04-12 | 조회수 | 25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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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인정한 피아니스트 ‘한동일’. 그런 그가 우리 대학교 음악대학 교수로 영구 귀국했다. 50여년을 미국에서 피아니스트와 교수라는 이름으로 살아 온 그의 이야기를 한번 들어보자.
▲ 3살 때부터 피아노를 치다 아버지로부터 3살 때 피아노를 처음 접한 그는 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피아노와 인생을 함께 하고 있다. 그러나 그 좋아하던 피아노를 중단할 수밖에 없었던 시기도 있었는데 바로 6.25전쟁 때문이었다. 그런 아들을 위해 그의 아버지는 친구들 집에서 연습을 시킬 정도로 열정이 대단했다고 한다. 그러던 중 한국 내 주둔하던 미 공군기지에서 피아노를 치는 것이 허락돼 그는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었다. 그 뒤, 그의 재능을 알아본 미 공군 앤더슨 사령관이 도움을 줘 12살 때 혼자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그때부터 그는 본격적으로 피아니스트의 길을 나섰다. ▲ 통일되기 전까진 울산이 내 고향 12살, 어린 나이에 미국에서 피아노 공부를 하며 어느덧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로 성장한 그. 짧지 않은 50년 동안의 미국 생활을 끝내고 어떻게 영구 귀국을 결심 했을까. 그의 피아노 선생님인 아버지는 1947년, 서울 시립교향악단 첫 번째 단원으로써 팀파니를 연주해 왔단다. 작년, ‘도미 50주년 기념 연주회’에서 91세 아버지는 팀파니를 치고, 자신은 피아노를 연주했는데 참 감동적이었다고 한다. 그때 그는 생각했다. ‘미국이 나를 교육시켜줘 고맙지만, 이제는 한국으로 돌아가 피아노를 통해 사람들에게 봉사할 때’라고. 바로 내 집으로 돌아가자고 말이다. 이렇게 우리나라에 돌아 온 그는 석좌 교수를 맡았던 인연을 되살려 지금 우리 대학교 음악대학 교수로 강단에 서고 있다. 그러나 한국으로 영구 귀국한 지금, 그는 가족들을 외국에 남겨둔 채 홀로 울산에 살고 있다. 피아노를 공부하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간 50년 동안에도 부모님과 6개월을 채 못볼 정도로 그는 홀로서기에 익숙하다. 이에 대해 그는 미소 지으며 “오직 피아노를 연주하기 위한 하나의 희생”이라고 말한다. 이것이 가슴 아픈 희생이 아니라 행복한 희생이라고. ▲사랑스러운 아이들 그는 우리 대학교 석좌 교수로 있을 당시,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한 학기에 두 번 한국에 들렀다. 그러나 길지 않은 학생들과의 수업으로 자신과 학생들 모두 아쉬워했는데 “지금은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계속 볼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그는 외국에서 많은 학생들을 가르쳤지만 “울산대학교 학생들이 제일 사랑스럽다”며 “지금 가르치는 학생들 모두가 순수하다”고 연신 얼굴에 웃음을 띄었다. 그는 이런 학생들이 음악을 열심히 한다면 우리나라만의 아름다운 음악이 나올 것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또, 그는 수업할 때 “각 학생들의 개성이 피아노를 통해 드러나도록 인도해주는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세상을 올바르게 보고, 사랑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음악의 목적”이라고. 음악으로 자신의 감정을 말하고, 호흡 한다는 한동일 교수.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라는 명성과 달리 그는 친아버지처럼 학생들을 따뜻하게 대하는 소박한 분이었다. 지금 이순간도 그는 음악대학 학우들과 피아노로 따뜻한 대화를 나누고 있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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