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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축제의 어제와 오늘
작성자 울**** 작성일 2004-10-21 조회수 1728

  학내가 시끄럽다. 시월제를 알리는 여러 현수막이 문수골 곳곳에 나부끼고 현란한 앰프소리가 행사의 흥을 한껏 돋군다. 학생들의 눈빛에서도 축제에 대한 약간의 기대와 흥분을 읽을 수가 있다. 1학기 대동제와는 그 성격이 사뭇 다른 시월제의 열기에 각 단대, 각 과의 일꾼들은 행사준비와 홍보에 여념이 없다.


  무릇 지난 학창시절의 축제가 새삼 떠오른다. 내가 대학을 다닌 80년대 후반은 민주화 열기가 최고조로 달한 격동의 시기였다. 80년 5월, 피로 물든 빛고을의 진실과 군사독재하의 억눌렸던 민중의 함성은 87년 이른바 6월 항쟁으로 폭발하였고 노동자, 농민 대투쟁의 장이 올랐다. 88년 남북올림픽공동개최투쟁이 대학가를 휩쓴 가운데 89년 평양에서 열린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전대협 대표로 한국외대 임수경 학생이 방북하는 초유의 사건들은 그 시기 대학문화의 분수령이자 최고의 이념 이였다.


  사상최고의 취업난으로 허덕이는 지금과는 달리 당시 대학가의 가장 큰 화두는 이념과 사상의 전개였다. 86년 건대항쟁을 계기로 학생운동 내부에서 흔히 말하는 NL, PD의 두 주류가 나눠지고 그것은 곧 ‘학생운동 노선의 다양성’으로 귀착되었다. 축제 역시나 이러한 시대적 흐름과 무관할 수 없기에 학술제, 문화공연, 전시회 등은 시대상황을 노래하고 이상사회를 구현하는 방법론적 매개체로써 축제의 중심에 있었다.


  물론 지금의 학생들의 축제가 그때와 직접비교해서 어떻다는 섣부른 판단은 의미가 없다. 80년대 대학을 다닌 사람들의 잣대로써 2000년대 지금을 살고 있는 학생들을 평가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사상과 이념의 구속에서 훨씬 자유로운 지금의 학생들은 학내에 경찰이 주둔하던 그때와는 분명 다르다. 구속받지 않는 자유로움이 살아 숨쉬는 어린 학생들의 몸짓에서 청춘의 역동성을 느끼기도 하고 현상에 대한 다양한 측면을 바라보기도 한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건 자주성과 주체성의 결핍이다. 학교 밖의 일반 행사와 별반 다를 바가 없는 축제를 바라보며 상아탑의 존재가치에 대한 의구심마저 든다. 대동제든 시월제든 대학의 축제는 학생들이 중심에서 그 끼와 재능을 마음껏 분출하면서 자기인생의 중심으로 설 수 있는 계기가 되어야 하며 그냥 놀고먹는 유희의 장은 아니기 때문이다. 과 선배, 동아리 친구의 권유에 마지못해 참여하는 행사보단 자기 스스로 주인의식을 가지고 여러 행사에 참여해보자. 행사를 주관하는 학생회나 각 동아리는 학생들의 무관심과 참여의식의 부재를 탓할 것 만 아니라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할 신선한 아이디어와 홍보, 그리고 그 속에 진솔한 내용을 담을 수 있는 기획안을 고민해보자. 비록 미흡하고 많이 모자랄지언정 그러한 일련의 과정과 준비하는 순간순간이 바로 젊음의 기회이고 가능성이기 때문이다.


  문수시월제의 일환으로 총학생회가 주관하여 300여명의 학생들이 금강산으로 모꼬지를 다녀온다고 한다. ‘방북=간첩’이였던 나의 대학시절을 생각하면 부럽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하다. 불게 타오른 풍악산의 절경에 흠뻑 취해보기도 하고, 이북사람들을 직접 만나고 얘기하면서 한민족의 정체성을 느껴보고 그곳에서의 짧은 생활이 곧 도래할 통일시대를 준비할 수 있는 작은 초석이 되길 바란다. 

 젊음이란 모든 것에 대한 반응이며 자기 존재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과 내적성찰이다. 이것이 청춘의 본질이요 생명체의 근원인 것이다. 곧 다가올 학생회선거와 내년 대동제에서는 한층 더 성숙한 문수인의 축제를 내심 기대해본다.                  


김동옥(88학번·러시아어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