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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것은 다 좋아, 그게 무엇이든 말야
작성자 울**** 작성일 2004-09-16 조회수 1650

얼리어댑터란 말을 아시나요? 새롭게 독특한, 이제 막 생산된 물건들을 가장 먼저 써보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남들과는 다른, 그리고 독특한 개성과 실용성, 디자인을 가지고 있는 물건들을 골라내는, 안목있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들은 최근 몇 년동안 새로운 유행을 이끄는 선두주자로 세상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사실 한국 사회에서 ‘디자인’이 중요하다고 다들 말은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심각할 정도로 천대를 받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개인적인 경험을 얘기하자면, 사이버 갤러리 관련 토론회를 열었을 때 참석한 한 화가는 “디자인이 미술이냐?”라고 질문했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들에게 디자인은 꼭 필요한 것이 아니라 있으면 좋은 것, 정도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돈이 모자라면 가장 먼저 외면해 버릴 수 있는.

하지만 인터넷의 확장과 일반인들이 상품의 디자인을 보는 안목이 높아지기 시작하면서, 그리고 네티즌 스스로가 자신이 사용하는 상품을 가지고 하나의 콘텐츠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기업들이 디자인을 받아들이는 시선은 엄청난 속도로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간단히 말해서, 이들이 디자인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기 시작하고 그 기준을 다른 보통 사람들이 받아들이게 되면서, 디자인이 못난 상품은 아예 상품으로서의 가치를 잃어버리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흐름을 이끌어간 이들이 바로 얼리어댑터들입니다. 한국의 인터넷 열풍이 만들어낸, 그리고 인터넷이 아니었다면 결코 주목받지 못했을 이들은 과연, 이 사회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일까요?

며칠 전 친구가 버리려던 작고 낡은 핸드백을 우연히 얻었습니다. 예쁜 디자인에 아직 쓸만해 보여서 아무 생각 없이 가지고 왔는데, 생각보다 여기저기 요긴하게 들고 다니게 됩니다. 요즘은 휴대용 디지털 기기들이 많이 늘어나서 남자들도 들고 다니는 물건들이 많아진 탓이지요. 평소에 항상 들고 다니는 물건들만 따져봐도 다이어리 수첩, 휴대폰, HDD형 mp3 플레이어, PDA에 볼펜까지 다섯 가지나 되니(카메라 내장형 핸드폰을 사기 전에는 여기에 디지털 카메라까지), 그렇지 않아도 가벼운 외출에 알맞은 작은 가방 하나를 살 예정이던 때에, 딱 맞는 좋은 제품을 얻은 셈입니다. 그런데 이 좋은 핸드백이 쓸데없는 문제를 하나 발생시키고 있습니다. 다름 아닌 ‘사람들의 시선’입니다.

핸드백을 들고 다니면 편하기는 한데, 자주 핸드백을 쓰지 않게 되는 이유는 오로지 사람들의 시선 때문입니다. 남자가 핸드백을 메고 다니면 안 된다고 법으로 정해진 것도 아닐텐데, 버스를 타거나 아이쇼핑을 할 때마다 이상하게 쳐다보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꽤 많습니다. 어울리지 않는 것을 억지로 매고 다니는 것도 아닌데, 사람들에겐 남자가 핸드백에서 휴대폰을 꺼내는 광경이 그리 익숙하지 않은 듯 합니다(실은 때려 죽일 듯한 시선으로 쳐다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예쁜 것을 좋아하는 것은, 죄일까요? 또는 남자가 예쁜 것을 좋아하는 것은, 죄일까요? 물론 그럴 리가 없습니다. 누구한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닌데 죄가 될 수 없지요.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아직도 가끔씩 그런 것을, ‘죄’나 ‘쪽팔린 짓’ 비슷하게 취급하는 것을 봅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의 억압적인 시선 안에서 과연 제대로된 디자인의 작품과 제품들이 나올 수 있을까요?

난 예쁜 것을 좋아합니다. 특히 내 책상 위에 놓여지는 물건들은, 내가 손으로 쥐고 사용하는 물건들은 예쁜 것이 좋습니다. 사람 몸에 닿는 물건일수록 좋은 물건을 써야한다는 생각 때문이기도 하지만, 매일같이 보고 만지고 곁에 있을 물건들인데 예쁜 물건일수록 스트레스를 덜 받고 일상이 편해진다는 경험 때문입니다. 물론 여기서 예쁘다는 것은 절대로, ‘외모가 예쁘면 모든 것이 용서 된다’는 식의 천박함이 아닙니다. 껍질로 내용을 포장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세상 물정 모르는 철부지들의 생각일 뿐. 정말로 예쁜 것은 반드시 ‘실용적’이고 ‘철학’이 담겨있어야만 합니다. 겉모양만 예쁜 물건들은 성형미인과 다를 바 없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요즘은 많은 사람들이 ‘예쁜 것’에 대하여 점점 마음이 열리고 있는 듯 합니다. 블로그나 홈페이지를 다녀봐도 예쁜 것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아무리 성능이 좋아도 디자인이 예쁘지 않은 물건들은 배척당하기까지 하는 분위기입니다. 자신이 직접 물건을 만들거나 예쁘게 고쳐서 쓰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고, 점점 늘어나는 디자인 상품 쇼핑몰을 통해 예쁜 것들을 쉽게 구입할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얼리어댑터들을 시작으로, 그들의 디자인 감각이 동 시대의 네티즌들에게 받아들여지면서, 새로운 디자인 문화는 이제 조금씩 꽃피기 시작하는 중입니다. 이제야 드디어 사람들은 디자인에도 대가를 지불할 마음을 갖추기 시작했습니다. 어쩌면 앞으로 문화예술에 대한 인정과, 그것에 대가를 지불하는 마인드도 이런 과정을 통해 생겨날 지 모릅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드는 풍경도 많이 보게 됩니다. 어린 아이 장난 같은 디자인을 가지고 ‘작품’이라고 떡-하니 내놓는 사람들, 물건을 사용하는 사람에 대한 배려없이 그저 예쁘게만 보이려고 만들어진 제품들, 때론 종이조각 몇 장을 붙여놓고 어처구니없이 높은 가격을 받으려는 사람들이나, 예쁘게 생겼다 싶은 상품들은 무조건 가져다놓고 팔아보자는 쇼핑몰들. 핸드백을 들고 다니는 남자들의 취향을 인정할 용기는 없으면서 유행만을 좆아가는 사람들. 예쁜 것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예쁜 것을 좋아하는 척, 사기 치는 사람들. 이런 이런, 예쁜 것을 좋아한다고 했지, 예쁜 것을 예쁜 것으로 인정하라고 했지, 누가 사기 치라고 했나요?

이 기사는 컬쳐뉴스에 게재된 것입니다.

                                                                               2004년 9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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