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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국민에게 책임을 떠넘기지 말라
작성자 울**** 작성일 2003-11-04 조회수 2687

  지금 대한민국은 온통 벌집을 쑤셔놓은 듯 나라 전체가 난리통이다. 가뜩이나 민생은 고통받고 있는데, 정치권은 재신임 정국, 대선자금 정국을 연출하면서 극한대립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 더하여, 아직도 끝이 보이지 않는 북핵문제, 한·미 동맹관계, 이라크 파병문제, 송두율 처리문제 등등을 둘러싸고 이념적 입장에 따라 사사건건 대립이 일어나고, 국론분열의 양상마저 나타나고 있다. 한마디로 위기다.
  이러한 난리법석의 핵심에는 국민을 떠받드는 척하면서 책임을 국민에게 떠넘기고, 그런 가운데 정치적 이득을 챙기려는 정치인들의 야욕이 자리잡고 있다. 사실 인터넷을 비롯한 다양한 첨단매체가 발달하고 시민단체들이 폭발적으로 범람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중의 정치참여는 필연적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주의해야 할 함정이 있다. ‘마치 지배에 대한 욕망이 없는 듯’, 심지어 ‘국민주권’이라는 헌법정신을 내세우기도 하고, 모든 것을 국민의 뜻에 따라 결정하겠다면서 여론의 눈치를 살피는 정치인의 비겁함에 대중의 비합리적 충동이 가세하면 ‘대중독재’를 완성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게 된다. 총체적, 이념적 개념인 ‘국민’의 정치적 정당성을 독점하려는 일부 시민단체들의 과격성과 일부 시민들의 착각에도 책임이 있지만, 이를 조장하고 악용하려는 정치인들에게 훨씬 더 큰 책임이 있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재신임 정국이나 이라크파병 정국에서 대중독재가 생겨날 위험성이 감지된다. 인물에 대한 재신임이 헌법상 불가능하다는 것쯤은 누구도 모르는 바가 아닐 터인데, 재신임을 위한 국민투표 규정이 존재하지 않고 또한 재신임되지 않았을 경우에 대한 규정도 없는 상황에서 ‘국민에게 직접’ 재신임을 묻겠다고 한다. 좀 어색하다. 특히 이라크 파병문제에 있어서 현 정부가 보여준 태도는 매우 실망스럽다. 국가안보문제에 관한 한 정확한 정보를 정부가 가장 많이 가지고 있으므로 이라크사태에 대한 평가, 한·미 동맹관계의 본질 및 현 상황에 대한 판단은 대통령과 정부의 몫일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과 정부는 국민들 간의 찬반 토론을 부추기면서 여론동향 분석에만 골몰하였고, 국민들 사이에는 대립의 골이 깊어졌다. 막판에 파병결정을 황급히 졸속으로 할 바에는 이렇게까지 대립의 골을 깊게 파면서 국민을 분열시킬 일이 아니었다. 대통령과 정부가 판단하여 결정을 내리고 그 결정을 국민들에게 설득했어야 했다.
  정치적 리더쉽이 제대로 작동하는 것은 결코 국민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 선거에 의하여 부여된 정당성에는 정책위임과 책임이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진정으로 국민을 위한다면 헌법과 법률에 따라 행하면 되는 것이다. ‘국민’의 이름을 팔아 국면 전환을 시도하는 것은 국민을 떠받드는 것이 아니라 ‘대중독재’로의 길을 열 위험을 국민에게 감수시키는 것이다. 더 이상 ‘국민’ 타령으로 국민에게 책임을 떠넘기지 말라.

* 본 글은 우리 대학교 교수들의 청탁으로 이뤄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