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대학교 | 울산대미디어
본문바로가기
ender

뉴스미디어

뉴스미디어

[국장칼럼] No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당신에게(재업)
작성자 윤** 작성일 2020-09-15 조회수 248

윤병집 증명사진.jpg

 

 

꼴좋다

한 인터넷 기사에 올라온 댓글이다. 비리 공무원이 체포된 걸까, 아니면 성폭행범이 사형 선고라도 받은 것일까.

 

지난 718일 일본의 쿄토 애니메이션(이하 쿄애니)의 제1 스튜디오가 방화로 인해 전소되고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SNS에는 애도와 추도의 물결이 일었다. 그러나 이례적인 글들이 댓글난의 한편을 차지하고 있었다.

 

사람 죽는 건 안타깝지만 일본인이라 딱히...”, “잘됐다, 축하 꽃다발을 보내야겠다같은 고인 모독부터 시작해 이게 전부 다 아베(아베 신조 일본 총리) 탓이다”, “문재앙(문재인 대통령)의 재앙력이 일본까지 미쳤다등 정치적 문제까지 거론됐다.

 

오래전부터 꾸준히 지속해 왔지만, 한일 양국의 과거사를 둔 정치·경제 분쟁은 지난 7월 초부터 격화돼 현재진행형이다. 아니 오히려 크게 악화하고 있다. 엉킬 대로 엉킨 실타래는 차근차근 풀어나가도 모자랄 판에 시작점조차 찾기 어려워지고 있다.

 

이러한 교착 상태에서 반일운동은 어찌 보면 당연한 사회현상일 것이다. 시작은 과거 일본 정부의 반인권·인격적인 작태에 대한 사과와 보상’, ‘무역 제재에 대한 합리적인 비판이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이러한 비판이 점차 민족주의’, ‘증오와 같은 단순한 이분법적 사고로 회귀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 시작했다.

 

소위 시국이라는 이름하에 일본을 가거나 물품을 구매하는 행위를 비난하며 토착왜구혹은 친일반민족행위자같은 표현이 서슴없이 등장한다. ‘보이콧 저팬이라 불리는 반일운동을 옳고 그름을 떠나 동조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마녀사냥을 하는 것이 과연 민주적일까? 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표방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아이러니하게도 그 주체인 국민에서 배타적 집단사고가 싹트고 있다.

 

일본 자동차를 해머로 부수는 행위나 일본 여행 가는 것을 손가락질하는 것이 과연 진정한 애국일까. ‘빨갱이라면 남영동으로 끌고 갔던 그 시절의 흑백논리와 다를 게 뭐가 있는가. 어떻게 하면 이 지독한 집단사고와 증오의 고리를 끊을 수 있을까? 죽창으로 토착왜구를 모조리 숙청해야 할까? 아니면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으로 불의에 맞서는 것이 맞을까.

 

초등학교 도덕 시간에 배웠을 것이다. 다수결의 원칙은 민주주의에서 가장 보편적인 의사 결정 방식이지만 반대로 소수의 의견이 배척될 수 있다고. 그러므로 소수의 의견에도 귀를 기울일 줄 알아야 한다고. 지금이 바로 그때가 아닐까. 모두가 Yes를 부르짖을 때 소수의 No도 당당하게 얘기할 수 있는 시민 사회가 도래하길 간절히 바라본다.

 

윤병집 편집국장

 

<저작권자 ⓒ 울산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