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뜨거운 감자]위기의 한진해운 어디로 가나 | |||||
작성자 | 편** | 작성일 | 2016-10-08 | 조회수 | 4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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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온 교수(경제학) 우리나라 최초의 컨테이너를 운송하는 전용선사(Hanjin Container Lines; HJCL)로 1977년 5월에 설립된 한진해운은 중동, 북미서 안, 북미 동안, 등의 항로를 개설하였고, 1986년 11월에는 미국 시애틀에 전용 터미널을 설치하며, 한국 선사로는 처음으로 미국 대륙횡단 열차 서비스까지 실시하며 성장하였고, 1988년에는 대한상선과 합병하여 지금의 한진해운(Hanjin Shipping Company)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1990년대 이후에는 유럽지역으로 운송망을 확장하고 미국 캘리포니아주 롱비치(long beach)에 전용 터미널도 개장하였다. 2000년대 들어서는 중국 취산도에 수리조선소도 건설할 정도로 지속적으로 성장하였다. 그리하여 2007년에는 우리나라 선사로는 최초로 매출액 10조 원을 달성하였다. 대한항공과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의 동생인 한진해운의 조수호 회장이 사망한 이후 2008년 1월에 남편 조수호 회장의 뒤를 이어 최은영 씨가 한진해운 회장에 취임하였다. 최은영은 신격호 롯데 총괄회장의 외조카이며, 본인이 올해 9월 9일 국회청문회에서 ‘제가 집에만 있다가 회장이 돼서….’라고 말하듯 경영에 관한 경험이 없는 주부였다. 최은영 회장의 무능력과 김영민 전 한진해운 사장 등의 경영실패가 현재의 한진사태의 단초를 마련했다. 김영민 전 사장은 재직하면서 해운업이 호황을 누릴 것이라는 생각으로 과도한 용선료로 계약을 체결하여 대당 $30,000~40,000에 선박을 빌렸는데 2016년 상반기의 용선료는 대당 $13,000 수준이다. 현재 용선료의 두 배 이상의 가격으로 빌렸는데 전 세계적인 불황으로 해운 물동량은 급감하였으니 대여한 배를 이용할 수 없어, 빚만 쌓이게 되었다. 김영민 전 사장이 취임할 때의 부채는 155%였는데 그가 2013년 11월에 사장직에서 사퇴할 때의 한진해운 부채는 1,445%였다. 여기에 제수인 최은영과 시숙인 조양호의 경영권 다툼은 한진해운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최은영 회장은 취임하고 1년 후에 시댁으로부터 독립을 꾀하기 위해 지주회사인 한진해운홀딩스를 만들어 대한항공 등의 지분을 정리하려고 시도하였고, 조용민 한진해운홀딩스 사장이 최 회장의 경영권 방어를 위한 다툼의 전면에 나타난다. 김영민 사장의 해운업이 호황을 누릴 것으로 생각한 판단 미스, 조용민 사장을 내세워 최은영 회장의 경영권 방어에만 힘을 쏟을 동안 한진해운은 정상화할 기회를 잃어버렸다. 최은영 회장으로부터 경영권을 빼앗아 2014년 4월에 한진해운에 조양호가 대표이사 회장에 취임하였고, 한진해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투입되는 자금은 총 1,300억 원(조양호 400억, 최은영 100억, 한진해운 200억, 대한항공 600억)에 이른다. 여기에 산업은행이 필요한 경우 지원하겠다는 500억 원을 포함하면 최대 1,800억 원이 물류대란을 막기 위해 추가 투입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9월 29일) 대한항공이 한진해운 운송비 계좌로 600억 원을 입금한다는 소식이다. 대한항공은 한진해운 보유의 매출채권과 서울·부산의 사원 아파트, 미국의 애틀랜타 사옥 등을 담보로 돈을 꿔 주는 형식으로 지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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