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대학교 | 울산대미디어
본문바로가기
ender

뉴스미디어

뉴스미디어

갑을(甲乙)관계, 무조건 나쁘다?
작성자 이** 작성일 2013-11-03 조회수 1743

갑을관계는 고정적인 것 아니야

이분법적 논리 적용은 위험해

요즘 가장 화제가 되고 있는 이야깃거리를 꼽아보라면 제일 첫머리에 드는 건 ‘갑을관계’가 아닐까 한다. 항공기 내에서 포스코에너지 임원이 “밥이 덜 익었다”, “라면이 맛없다”며 비행기 승무원에게 폭행을 휘두른 ‘라면상무’와 ‘빵회장’의 폭행 사건, 남양유업의 대리점 강매(밀어내기) 파문이 연달아 터지며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이 사건들은 개인의 개념 없는 행동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 만연해있는 비뚤어진 갑을문화의 단면을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으며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시선이 여기로 몰리자 국회에서는 ‘갑을관계 개선법’을 입법 예고하며 진통을 겪고 있다.

‘갑을관계’란 계약서 상 계약자들을 ‘갑’과 ‘을’로 지칭하는 단어에서 ‘갑’을 상대적으로 지위가 높은 계약자를 지칭하고 ‘을’을 상대적으로 지위가 낮은 계약자를 지칭하게 되면서 생겨난 말이다. 그런데 사실 ‘갑을관계’가 사회적 이슈로 주목받는 것은 새삼스러울 정도로 우리나라는 갑을관계가 고정적이다. 이미 ‘갑을공화국’이라는 말이 사회적으로 공공연하게 쓰이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대변한다.

하지만 갑을관계를 지나치게 강자와 약자의 이분법적으로 보는 시각은 조금 우려스럽다. 세상 어디서도 절대 갑이나 절대 을은 없기 때문이다. 갑과 을은 항상 바뀐다. 심지어 사회적 약자도 때에 따라 갑(甲)질을 한다. 고객센터에서 생선이 상했다고 집어던지는 사람이 모두 사회 기득권은 아니듯이 문제가 됐던 남양유업의 영업사원도 매달 대형마트에서 직영 아르바이트에게 진열볼륨을 넓히기 위해 굽실거릴 수밖에 없다.

사실 갑을관계는 사업상 자연스럽고 때론 생산적인 시스템이다. 갑에게 선택받기 위해 을은 매우 치열한 경쟁을 하고 이 과정에서 혁신과 부가가치를 창출하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갑을관계라는 프레임에 집착해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 식으로 사건을 몰고 가다 보면 비이성적인 ‘갑과 을’만 낳을 뿐이다. ‘라면상무’와 ‘빵회장’, ‘남양유업’사태로 대변되는 갑을관계 문제는 결국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닌 소통의 문제다. 일반적인 갑을관계 대기업과 중소기업, 본사와 대리점, 고용주와 고용인 등은 상생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국회는 생산주체 간 공정한 경쟁과 분배가 이뤄지는 환경을 만드는 것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인식을 바꾸는 것에 힘써야 한다.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갑을관계의 본질은 갑이 사회적으로 용인할 수 있는 상식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최소한 을들이 밑지지는 않도록 해줘야 협력사나 근로자들에게 온기가 미칠 수 있다는 것은 삼척동사도 아는 상식이다. 이 상식이 지켜지게 하는 것, 그것이 지금 국회가 해야 할 일이다. 분수효과니 낙수효과니 하는 거창한 경제용어를 들먹여 봤자 해결 될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갑의 행포와 을의 눈물은 한번쯤 짚고 넘어가야 할 사회문제이기는 하다. 그러나 지금 진행되는 갑을관계에 대한 논쟁은 너무 자극적이다. 갑과 을의 개념조차 각자의 입맛대로 해석하며 본질은 무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본질을 정확하게 파악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국회의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