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권후보 이야기 - 박근혜 | |||||
| 작성자 | 성** | 작성일 | 2012-09-03 | 조회수 | 36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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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새누리당 소속 국회의원)란 인물은 문재인, 안철수와 더불어 2012년 대한민국의 중심에 있는 인물이다. 하지만 많은 대학생들에게 박근혜가 누군지 아는가라고 물으면 고(古)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 조금 더 관심 있는 학우는 새누리당 대권후보로만 알고 있다. 현재 대통령의 유력후보인 한사람으로서 어떤 사람인지 대학생의 눈으로 살펴보았다. 박근혜 의원의 핵심키워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자 보수진영의 대표주자, 퍼스트레이디로 정할 수 있다. 1970년대 북한보다 경제력이 떨어졌던 우리나라가 현재 경제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게끔 경제개발 5개년계획을 계획한 대통령. 그리고 현재의 빈익빈 부익부, 부의 양극화 현상을 초래하게 한 대통령의 딸인 박근혜 의원은 현재 우리의 아버지들 세대에 우상인 존재의 딸이다. 더불어 어머니였던 육영수 여사가 저격당하면서 우리나라의 ‘퍼스트레이디’이자 ‘영애’로서의 삶을 살기도 했다. 현재 박근혜 의원은 그 존재만으로 소속돼 있는 당에 큰 역할과 힘이 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박근혜 의원의 정치 입문은 1998년 한나라당 후보로 대구광역시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당선되면서 시작됐다. 2004년 고(古)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을 준비하며 단식농성을 치러 국민의 몰매를 맞았던 한나라당을 구원하며 그의 정치적 행보가 주목받기 시작했다. 당시 한나라당은 대통령 탄핵사건으로 당의 대표였던 최병렬 의원이 사퇴를 하는 등 큰 위기가 있었다. 이를 막기 위해 당해 3월 23일 당의 대표가 됐고 당시의 상황에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사과를 하는 등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후 17대 총선이 이뤄졌고 비록 여당의 자리는 뺏겼지만 121석을 차지하며 여전히 제1야당의 굳건함을 지켰다. 그 후 그는 당내 입지를 굳히면서 2007년 17대 대통령의 후보로 거론이 됐다. 하지만 서울시장을 역임하고 당시 경제위기에 처해 있던 우리나라에 적합한 인물로 이명박 대통령이 대권후보로 발탁되며 다음 18대 대통령의 강력한 후보로 자리를 매김 하게 됐다. 이후 우리나라에서는 최초로 개인의 이름을 딴 친박연대라는 당이 창당됐다. 비록 당의 주인공인 박근혜 의원은 입당하지 않았으나 “살아서 돌아오라”라는 발언을 하는 등 당을 간접적으로 지원했고 총선결과 14석의 의석을 확보하게 됐다. 박근혜라는 이름이 가지는 힘을 절실히 느낄 수 있는 결과였다. 그리고 2011년 겨울 한나라당은 한 번 더 큰 고비를 맞게 된다. 국민의 소리를 듣지 않는다는 여론형성과 디도스 파문 등 국민으로부터 큰 질책을 받으며 홍준표 당 대표가 사퇴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에 전 대표였던 박근혜 의원이 당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선출되며 다시 한 번 더 당을 수습하기 시작한다. 이에 당의 색을 평소 금기시 하던 붉은색으로, 한나라당에서 새누리당으로 개명하는 등 당의 이미지를 쇄신했다. 이러한 박근혜 의원의 당 쇄신이 효과를 보였을까. 다수당으로 민주당이 될 것이라는 전문가의 예상을 깨고 새누리당이 다수당으로 한 번 더 자리를 잡게 된다. 단순히 박근혜 의원이라는 인물만의 역할을 아니었지만 분명 기성세대와 박근혜라는 이름이 가지는 힘이 큰 역할을 했음에 틀림없다. 이처럼 박정희 대통령의 딸이라는 이미지를 자신의 강력한 무기로 삼고 기성세대는 물론 현재 많은 2030세대에 큰 영향을 주는 박근혜 의원. 강력한 대권후보로 자리를 잡고 있다. 하지만 아직 수첩공주, 공주후보 등 아직 많은 이들의 질타가 있다. 또한 신비주의 전략으로 정치적 활동이 이 크게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도 고쳐야할 부분이다. 박근혜 의원은 현재 새누리당의 대권후보로 경선에서 당선된 인물이다. 우리나라를 5년 간 이끌어갈 대통령의 강력한 후보로 많은 기성세대들은 박근혜 의원을 무조건적으로 맹신하는 경우가 있다. 후회하지 않는 투표를 위해 보다 그 인물을 알아보고 연구해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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