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처음 읽었던 때는 대학교 3학년 때였다. 어린 시절, 질리도록 위인전을 읽었던 터라 오빠 책상에 꽤 오랫동안 꽂혀 있었음에도 쉽게 손이 가지 않았다. 어느 날, 이 책을 손에 들게 된 나는 순식간에 끝까지 읽어 버렸다. 그리고 그때 느낀 감동은 한동안 나를 떠나지 않았다. 어쩌면 그 시절, 나는 지쳐가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대학에 갓 입학했을 때, 선배들은 나에게 앞으로 뭐 하고 싶으냐고 묻지 않고 ‘어떻게’ 살 것인가를 물었다. 어떻게라도 난 그 고민과 또 그에 따른 실천 속에서 내가 살고 있는 사회와 그 안의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을 배웠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사회와 사람들, 또한 각자 자기 살 길을 찾아가는 선배들을 보면서 나는 점점 지쳐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닥터 노먼 베쑨은 다시 한 번 내게 앞으로 걸어갈 수 있는 힘을 주었다.
닥터 노먼 베쑨(1890~1939). 그의 삶은 어떠했던가. 한 마디로 이야기해서 이 사람만큼 치열하게 산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는 캐나다의 외과의사였다. 그는 인생을 두 번 살았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데, 그것은 그가 36세 때 폐결핵으로 사망신고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 실험이 진행 중이던 폐 인공기 흉술에 기꺼이 자신을 모르모트로 내놓음으로써 그는 죽음의 문 앞에서 부활을 경험한다. 몸이 나은 뒤, 그는 결핵 연구에 투신하여 뛰어난 흉부외과의사로서 이름을 날리게 된다. 그러나 그에게 특별한 점이 있었다면, 그것은 그가 ‘돈’을 보지 않고 ‘사람’을 보고 의술을 행했다는 사실이다. 그는 “다시는 결코 메스를 들면서 그 어떠한 생명체에 대해서도 단순한 기계적인 유기체로 취급하지 않으리라. 사람이란 육체가 전부가 아니다. 사람이란 꿈을 가진 것이다. 따라서 이제부터 나의 칼은 육체와 동시에 그 꿈을 구하리라”라고 결심한다. 죽음의 문 앞에서 모든 걸 버렸다가 다시 부활하면서 그는 자신 속에서 샘솟듯 피어나는 꿈을 보았고, 모든 사람이란 바로 이러한 꿈을 가진 사람들이란 것을 이해했기 때문이었다.
나이 46세에 그는 의료지원단을 이끌고 스페인 내전에 참가한다. 이어 48세에는 중국 의료봉사대에 자원한다. 그 곳엔 파시스트들이 일으킨 전쟁이 있었고, 그 속에서 사람들은 아무 이유없이 죽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누군가 “질병을 돌보되 사람을 돌보지 못하는 의사를 작은 의사(小醫)라 하고, 사람을 돌보되 사회를 돌보지 못하는 의사를 보통 의사(中醫)라 하며, 질병과 사람, 사회를 통일적으로 파악하여 그 모두를 고치는 의사를 큰 의사(大醫)”라 한다던데, 노먼 베쑨 그야말로 사람의 육체를 갉아먹는 질병과 또한 사람의 꿈을 갉아먹는 사회를 상대로 치열하게 싸웠던 것이다. 결국 그는 모택동의 항일투쟁을 함께하며 전쟁터에서 병사들을 치료하다가 죽었다. 고갈된 물자로 인해 장갑 없이 맨손으로 수술하다가 생긴 손가락 감염에 의한 패혈증 때문이었다. 참으로 안타깝고도 어이없는 죽음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가 목숨을 걸고 치료했던 중국 민중들의 영웅이었고, 지금도 변함없다.
‘한 권의 책’을 추천해 달라는 청탁을 받고, 다시 이 책을 읽었다. 그러면서 가슴이 답답해져왔다. 나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가. 1학년 학생들 면담을 하면서 항상 ‘뭐 하고 싶어서 국문과 왔니?’라고 묻던 내 모습이 떠올라서 쓴웃음이 나왔다. 물론 88만원 세대가 존재하고, 먹고 살기 힘든 시대가 되었다. 따라서 당연히 노먼 베쑨처럼 자신의 분야에서 뛰어난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지 않은 사람들은 자신을 위해서만 살게 된다. 그런 사람들의 눈에는 자기 주위의 사람들과 자기가 살고 있는 사회가 결코 보이지 않는다. 자신이 좋아했던 월터 페이터의 경구 “격렬하면서도 우아한 불꽃으로 타오르는 것!”처럼, 노먼 베쑨은 아름다우면서도 불꽃같이 격정적으로 타오르는 삶을 살았다. 한 번뿐인 인생, 우리도 그렇게 살아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그런 삶을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김윤정(국어국문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