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25일 한나라당은 무려 20여 개에 달하는 미디어 관련 법안들을 국회 문방위원회에 또다시 기습적으로 상정하였다. 물론 이번의 문방위 법안 상정은 내부 표결과 법사위, 본회의를 거치며 차례로 상정, 표결과정을 거쳐야 하는 길고도 복잡한 과정의 첫 단추에 불과하다. 그러나 시작부터 무슨 군사작전 같이 해치우는 태도로 봐서는 남은 모든 단계들도 편법과 날치기로 밀어붙여 당리당략의 탐욕을 채우던 독재시절 여당들의 전철을 밟을 공산이 커 보인다. 대부분 집권여당의 이런 비신사적 행위가 바로 야당의 극렬한 반대와 폭력성 항거의 원인제공을 하는 것이다.
한나라당은 우선 하나의 법률이 탄생하기까지 왜 그리 어렵고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만 하도록 제도화해 두었는지부터 성찰하기를 권한다. 그런 편법과 날치기를 차단하고 모든 법률은 신중하고도 충분한 토론과 협의를 통해서만 탄생되어야 함을 못 박아 두기 위함이다. 그것이 의회민주주의 체제의 기본이다. 한나라당은 언필칭 국민이 그들을 다수파로 뽑았노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이처럼 비신사적인 리더십과 의회주의의 기본을 물먹이는 방식으로 정치판을 이끌라고 표를 준 것은 아니었다.
다음으로 한나라당이 추진하는 미디어 관련법 자체의 내용적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요컨대 ‘신문-방송 겸영’ 허용을 통한 세계적 미디어산업을 육성하겠다는 주장이다. 한나라당은 그것을 ‘개혁’과 ‘일자리’의 논리로 정당화한다. 그러나 그것은 개혁도, 일자리도 만들어내기 어렵다. CNN이나 알자지라 같은 방송이 신-방겸영제도가 있어서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되었는가? 자본이나 권력과 유착되지 않은 투철한 기자정신 때문 아닌가. 일자리도 새로 생기기보다 새 회사로 스카우트되는 효과가 고작일 것이다.
현재의 법안은 메이저 신문과 재벌의 자회사들이 조금씩 주식지분을 나누어 잠식토록 하여 결국 지상파 방송시장을 장악하도록 해줄 트로이 목마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훨씬 설득력 있다. 조·중·동으로 일컬어지는 메이저 신문들은 현재에도 신문시장의 70% 이상을 장악하고 있다. 이런 현상이 글로벌 스탠더드인가? 이것부터가 여론의 자율성과 다양성을 통해서만 존립되는 자유민주주의에 치명적이다. 신문시장의 이런 극단적 독과점을 완화시킬 법률을 만들어도 모자랄 판에 오히려 거기다 방송까지 더 얹어주려는 한나라당 정부는 대체 민주주의를 어디서 배워왔는가? 언론사에 관한 한 ‘자유경쟁’보다는 ‘여론독과점 방지’를 특히 우선시하는 것이 유럽이나 미국의 추세이며, 그것이 진짜 글로벌 스탠더드인 것이다. 다수 국민의 여론도 반대하고 있는 미디어 관련법안을 한나라당은 야당과 더 충분한 협의하에 신중하게 처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