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통령 선거가 끝난 지 한 달이 넘었지만 언론에는 여전히 오바마에 대한 이야기가 넘쳐난다. 무엇이 미국으로 오바마를 ‘흑인임에도 불구하고’ 그를 국가 지도자로 선택하게 했을까? 위기로 치닫는 경제 상황, 끝이 보이지 않는 이라크와의 전쟁, 국가위기 상황에서 한없이 무능하기만 한 현 공화당 정부에 대한 실망 등이 직접적인 원인일 것이다. 이처럼 어려운 때에 오바마가 보여준 이상과 열정, 통찰력에 매료되어 미국 국민은 주저 없이 흑인인 그에게 희망의 표를 던졌다.
그가 당선된 것은 그만큼 미국이 현재의 국ㆍ내외 상황을 엄중하게 보고 있다는 증거다. 지금 미국이 직면한 여러 가지 어려움은 과거와는 종류가 근본적으로 다르다. 한 마디로 이는 국제 정치경제질서의 근본적 변화에서 온 위기이고 전 세계가 연결된 구조적 위기이다. 오바마의 미국 대통령 당선은 단순히 흑인이 미국 대통령에 되었다는 사실을 넘어 국제질서와 나아가 세계사의 커다란 변혁을 암시하는 상징적 사건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이 변화의 핵심이 필자는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위기’와 ‘강대국으로서의 미국의 쇠퇴’라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가 목격하는 전세계적 금융위기, 어디에나 넘쳐나는 실업자, 극단적인 소득 양극화, 소위 헤지펀드를 비롯한 국제 투기자금의 횡포 등은 수십 년 전 월러슈타인이 예견한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말기적 증상과 일치한다. 그에 따르면 지금 세계를 휩쓰는 세계화, 자유주의 시장경제의 물결은 400년을 이어 온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해가 저무는 석양 빛이며, 그 뒤 어두운 혼돈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이렇게까지 비관적일 필요는 없지만 세계 자본주의 체제가 전례 없는 위기에 봉착해 있는 것은 분명하다.
초강대국으로서의 미국의 지위가 급속히 약화되고 있는 것도 이미 거스를 수 없는 역사의 대세이다. 미국이 쉽게 생각하고 덤볐던 이라크와의 전쟁에서 아직도 허우적거리며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재정적자, 자동차 산업의 몰락이 상징하는 경제력의 쇠퇴 등을 감안할 때 미국이 과거처럼 압도적 경제력과 군사력으로 세계질서를 주도해 나갈 수는 없을 것이다.
세계는 자본주의와 미국의 쇠퇴와 맞물려 지금 위험한 과도기에 접어들었다. 그 뒤에 무엇이 우리를 기다리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적어도 이 커다란 시대의 흐름만은 우리가 알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사실 미국을 비롯한 서구 국가들은 이미 이에 대응하여 국가정책과 외교의 일대 변혁을 시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세계가 변하고 있는데 아직도 개발주의, 세계화, 신자유주의, ‘혈맹적’ 대미 의존이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에게 적절한 사고와 행동의 지침이 될 수 있을지를 다시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오바마는 흑인이지만 젊고, 미국 최고의 학부를 나온 지식인이고, 농구를 좋아하는 스포츠맨이고, 블랙베리 스마트폰에 ‘중독된’ 전형적 신세대인이다. 이제 흑인으로서가 아니라 새로운 시대를 이끌 세계 지도자의 한 사람으로 그를 바라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