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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정치의 실종
작성자 편** 작성일 2008-05-15 조회수 1291

  우리나라는 정녕 역동적인 곳이다. 황우석 박사 때문에 난리더니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이 잊혀지고, 김경준이다 BBK다 떠들더니, 금방 대통령선거에 눈길이 쏠린다. 국회의원 선거로 신문이 도배돼나 싶은데 이제는 광우병 문제로 세상이 소란스럽다. 그런데 이 와중에 한 가지 공통된 현상이 엿보인다. 그것은 정부와 여당의 목소리만 높을 뿐 야당은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다.


  최근 스티브 호킹 박사가 새 책을 냈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이제 삶의 터전을 지구가 아니라 외계에서 찾을 때가 온 게 아닌가 하는 기사를 ‘참신하게’ 읽었다. 참신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참담하게’ 읽기도 하였다. 자신의 삶의 터전을 어지르고 더럽혀 놓고 다른 별을 찾으면 그만일까 하는 회의 때문이다.


  이 즈음에 한나 아렌트를 되새기는 게 안성맞춤이다. 아렌트는 우리가 지상에 살아남기 위한 조건, 즉 <인간의 조건>을 제시한 바 있다. 아렌트는 생명, 세계성, 다원성을 인간실존의 세 조건이라고 명명하면서, 이 조건들에 각각 고유한 활동의 양식을 부여한다. 생명으로서 산다는 것은 신진대사를 통한 자연과의 교통을 의미하는 까닭에 노동은 생명의 조건에 부합하는 인간의 기초적 활동이다. 따라서 노동의 동물로서 인간은 자연의 필연성에 예속되어 있다. 다음으로 인간에게 비교적 영속적 세계를 제공하는 활동은 바로 작업이다. 인공세계를 구성하는 사용물을 생산하는 작업은 따라서 수단과 목적의 범주, 즉 도구성의 지배를 받는다. 모든 사람에게 의미있는 공동의 세계에 관해 논의하는 기초적 활동은 행위인데, 행위는 노동의 필연성과 작업의 도구성 어느 것도 절대화하지 않도록 하고 동시에 서로 유기적 관계를 맺도록 만드는 인간의 기초적 활동이다. 이렇게 노동의 활동은 생명의 조건에, 작업의 활동은 세계성의 조건에, 그리고 행위의 활동은 다원성의 조건에 부합한다고 본다. 그리고 이 세 가지 조건들이 더욱 근본적인 조건에로 환원되는데, 그것은 바로 탄생성과 사멸성의 조건이다. 우리를 전율케 하는 전체주의야말로, 인간의 탄생성과 사멸성을 부정하고 모든 것을 영구화하고자 하는 태도를 의미한다. 아이히만 재판의 참관 기록인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도 절절히 쓰고 있듯이 우리가 이해할 수도 없고 용서할 수도 없는 ‘근본악’은 바로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는 ‘악의 평범성’에서 기인한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아렌트에 의하면 전체주의는 근본적으로 정신적 차원에서의 ‘사유하지 않음’과 실천적 차원에서의 ‘정치적 행위능력의 상실’에 의해 야기되었다고 진단한다.


  정치의 복원을 통해서만 민주주의를 되찾을 수 있다. 일반 시민들도 그러한데 정치인들이야 더 말해 무엇하랴. 정치인들이여, 정치를 복원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