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설>메멘토 5·18 | |||||
| 작성자 | 편** | 작성일 | 2007-05-15 | 조회수 | 116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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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멘토 모리. 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 잊지마라. 인생이란 부질없는 것, 귀의할 곳은 오로지 신인 것을, 이렇게 기독교는 가르친다. 하지만 이 얘기는 기독교보다는 훨씬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고 했다는데, 나의 무엇을? 인간이란 신과는 달리 전지전능하지 않고 한계가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신한테 도전하지 말라는 신의 말씀을 대신 전하는 것일까? 이 말씀이 소크라테스의 창작물이 아니라 이미 아폴론신전의 문에 적혀 있는 것을 차용했을 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우리 자신의 한계를 기억하고(잊지 않고) 되새기면서 겸허하게 살아야 한다는 교훈을 얻을만하다. 여하튼 기억의 끈을 놓쳐서는 안 된다. 그 연장선에 메멘토 5·18이 있다. 올해는 6·10항쟁을 20번째 맞는 해이자 87년 7-8-9 노동항거의 20주년이기도 하다. 그래서 시민사회, 노동단체에서는 이 두 행사를 준비하기에 여념이 없다. 그래서 5·18이 코앞인데도 별 움직임이 없다. 누군가는 아니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미 절차적 민주주의는 완성되었고, 민주주의의 내용을 채우는 일만 남았다고 한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최근 벌어지고 있는 사건 사고들을 지켜보자면 아직도 멀었다, 이런 평가가 좀더 진실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내용과 형식은 같이 간다, 같이 갈 운명이다. 내용과 절차의 민주주의를 이루어내는 데 누구나 다 애를 써야 한다. 그런데 수업시간, 그리고 그밖의 시간 마디마디 마주치게 되는 학생들의 모습에서는 그러한 고민의 흔적은 찾아보기가 어렵다. 어려운 얘기를 할 것도 없다. ‘스파이더맨’ 3편은 미어터지고 ‘천년학’은 파리를 날렸다. 어느 학과 선생님은 학생들한테 ‘우리학교’를 같이 보자고 했더니 그 시간에 ‘300’을 보자고 하더라, 한탄을 하시기도 한다. 골치 아픈 것은 싫고, 영화는 재미있어야 한다는 게 학생들 생각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은, 실은 학부모가, 선생님이 부추긴 결과이지 학생들한테 비난의 화살을 돌릴 까닭이 없다. 취업을 제일로 치는, 성과 위주의 교육을 제대로 받은 결과인 것이다. 이념이 없는, 재미가 없는 교육현장에서 학생들이 빠져나갈 수 있는 유일한 통로는 흥미의 추구에 있다. 인권을 얘기하고 가치를 얘기할 필요가, 전혀 없다. 교육은 100년 앞을 내다본 커다란 프로젝트라고는 말한다. 그러나 말뿐이다. 적어도 대학은 진정 그러한 그림을 그리는 교육의 터이어야 한다. 그래서 소학도 아닌, 대학이다. 학생들한테 눈부신 미래를 보여주고, 그러한 미래의 모습을 스스로 만들 수 있도록 부추기고 능력과 자신감을 키워주어야 한다. 그리고 사회의 현실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젊은이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한 사회의 동량 하나 하나가 우리나라를 살지게 할 것이다. 그것이 5·18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 역사를 잃으면 미래가 오지 않는다. memento 5·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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