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대학을 품다> 키가 클 수 없는 난장이 | |||||
| 작성자 | 강** | 작성일 | 2007-03-20 | 조회수 | 32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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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난장이’의 딸 영희입니다. 아주 오래전 ‘낙원’구 ‘행복’동이란 곳에 살았지요. ‘낙원’, ‘행복’이란 말이 모순이라고 느껴지네요. 그곳에 살면서 ‘낙원’이라고 생각한 적도 ‘행복’한 적도 없었거든요. 오히려 하루하루 가슴 아프고 지옥 같은 일만 가득했습니다. 마치 약속이나 한 듯 차례대로 우리 형제들은 학교를 그만뒀습니다. 더 이상 우리가 학교에 다닐 만큼 집안사정이 허락지 않았거든요. 오빠들은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도 보장받지 못하는 공장에서 고된 노동에 시달렸습니다. 하지만 공장주는 날이 갈수록 일의 양을 늘리는 반면 노동자 수를 줄였습니다. 이윤창출을 위해서는 노동자의 인권은 안중에도 없던 공장주는 고용불안을 무기로 노동자에게 고된 노동을 요구했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키가 작은 아버지를 보고 ‘난장이’라고 불렀어요. 아버지가 낮에는 공장에, 밤에는 서커스의 웃음거리로 죽도록 일해도 우리의 생활은 오히려 더 힘들어지기만 했습니다. 그런 우리에게 드디어 ‘철거계고장’이 날아왔습니다. 집이 철거되고 들어설 아파트의 입주권이 주어져도 살 수 없는 우리에겐 입주권은 당장 살 곳을 잃었다는 걸 거듭 확인시켜주는 냉혹한 종이에 불과했습니다. 아버지는 매일 같이 채권 매매, 칼 갈기, 건물 유리닦이, 수도 고치기 등의 고된 생활을 하셨고 더 이상 넘을 수 없는 사회의 벽에 가로막혀 그만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리셨습니다. 전 죽어가는 아버지를 보면서 하염없이 눈물만 뚝뚝 흘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 얘기만 남았군요. 어린 시절 가출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전 어차피 있어도 아파트에 살 수 없어 싼 값에 팔려버린 입주권을 되찾아 오기 위해 그것을 산 사람에게 몸을 내던졌습니다. 그는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은 모두 가진 사람이었고 그가 원하는 일만 하면 갖고 싶은 것은 얼마든지 가질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건 허무한 환상이었어요. 그렇게 원하던 입주권을 손에 얻었지만 아버지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행복’동에 살았지만 정작 ‘행복’할 틈이 없던 우리 가족은 늘 천국을 생각했습니다. 천국에 사는 사람은 지옥을 생각하지 않아요. 지옥에 사는 사람만이 천국을 생각하지요. 아무리 열심히 일하고 공부해도 우리 가족은 난장이의 세계에서 빠져나오지 못해요. 기회의 균등을 이야기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 균등함의 의미가 퇴색해버린 지는 이미 오래됐으니까요. 아무리 노력해도 가난을 대물림 할 수밖에 없는 우리에게 오늘의 사회는 아직도 난장이가 보는 하늘처럼 높기만 합니다. 난장이는 언제쯤 키가 클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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