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설>해외파병, 인권의 부름으로만 | |||||
| 작성자 | 편** | 작성일 | 2007-03-19 | 조회수 | 13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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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장호 하사가 아프가니스탄에서 무슬림 전사의 자폭공격으로 사망했다는 소식이 온 국민을 슬픔에 빠지게 만들었다. 그런데 우리를 더욱 슬프고 황당하게 만든 것은 이 사건을 보도하는 언론의 태도였다. 주류 언론은, 기이한 것을 찾아 나서는(獵奇) 게 언론의 속성이라고 해도, 너무 선정적이다. 이 사건이 의미하는 바를 분석해서 국민들에게 알려주어야 할 터인데도 그 임무는 뒷전이고, 한 편의 무협만화를 그리고 말았다.
우리의 관심은 그의 영어성적도 학벌도 아니다. 왜 한국의 군인이 이역만리에 가서 죽어야만 하는지가 알고 싶을 뿐이다. 우리 헌법은 “침략적 전쟁을 부인”한다. 그래서 해외파병이 헌법 위반은 아닌지 고민할 수밖에 없다. 이미 이라크 파병이 도마 위에 오르기는 하였다. 그런데 이 문제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슬쩍 비켜섰다. 논리는 이렇다. 파병은 고도의 정치적 결단이 요구되는 사안이다, 따라서 그와 같은 결정은 그 문제에 대해 정치적 책임을 질 수 있는 국민의 대의기관인 대통령과 국회이 해야 한다, 그리고 그와 같은 고도의 정치적 결단은 가급적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결론의 이면에는 국회가 의결하면 헌법 제5조는 사실상 무시해도 된다는 생각이 가로놓여 있다. 그런데 수도의 이전 문제에 대해서는 관습헌법의 존재까지 만들어내면서 국회를 무시하던 기관이 이 문제에는 이렇게 관대한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헌법재판소의 정치성이라는 한계 때문이라는 추측을 할뿐이다. 모든 전쟁을 부인하는 극단적인 견해는 논외로 하고서도 적어도 침략적 전쟁은 부인하는 우리 헌법의 정신을 감안할 때 해외파병이 가능한 사유는 하나뿐일 것 같다. 우리 국민의 생명과 자유, 안전을 포함해서 지구촌 시민의 인권을 지키기 위해 파병하는 경우만이 그러할 것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그러한 경우인지 아닌지는 어느 한 나라(예컨대 미국)에서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지구촌 모두의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 파병이 이러한 사리에 따른 것인지 아닌지 좀더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렇지 않다면 하루라도 빨리 돌아와야 한다. 윤하사의 죽음은 이 문제를 성찰할 기회를 우리에게 주기 위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미셀린 이샤이는 <세계인권사상사>라는 책에서 이렇게 얘기한다: 보편적 인권의 필수요소인 안전, 시민·사회·경제적 권리와 부합하면서 화해를 향한 장기적 접근을 가능케 해주는, 인권의 통합적 세계관 창출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리고 (미국식의)일방적 세계전략이 아니라 UN과 다자간 국제기구, 그리고 현지NGO를 통한 노력이라는 일반원칙을 인권정책의 기본으로 받아들이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에게는 성찰의 시간이 필요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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