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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비정규직 제도개선 논의에 붙여
작성자 편** 작성일 2006-04-11 조회수 1536

  다시 국회가 열렸다. 국회 상임위 중 법사위는 민주노동당 의원들이 회의장을 차지하고 있는 모습으로 시작한다. 소위 ‘비정규직 보호법안’ 때문이다. 비정규노동자 처우에 관한 노-사-정의 논의는 정부 단일안을 거쳐 국회 환노위에서 가닥을 잡기에 이르지만, 그 내용에 대해 노사 어느쪽도 만족하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노동계는 이건 비정규직 보호법이 아닌 억압법이라고 하고, 업계는 그간 유연하게 고용을 해왔는데 이제는 인재를 활용하려고 해도 엄격한 법 때문에 계속 고용할 수가 없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물론 밖으로 내비치는 것과 속내가 다를 수 있으니 그 말에 오로지 매이지는 못하겠지만.


  쟁점은 몇 가지로 압축된다. 우선, 고용기간이 문제이다. 현행법은 강제노동의 폐해를 막기 위해 노동계약은 1년을 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이 조항이 임시직의 고용 불안이라는 부메랑이 되고 마는 측면도 있어 정부는 계약기간을 3년으로 하자고 한다. 그런데 계약의 반복갱신은 곧 정규직으로의 전환을 의미한다는 판례법리에 의하면 계약기간이 길어질 때 만년 임시직으로 남는다는 폐해를 남긴다. 국회에서 그 기간을 2년으로 정리한 것은 이러한 이치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여전히 장기간 임시직으로 떠돌 위험은 도사리고 있다. 중요한 것은 정규직 고용의 원칙을 지키려는 기업의 의지가 아닐까.


  노동계도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명문화에 집착할 필요는 없다.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A규약)> 제7조는 “공정한 임금과 어떠한 종류의 차별도 없는 동등한 가치의 노동에 대한 동등한 보수”를 보장하고 있다. 그리고 ‘합리적인 이유 없는 차별’이라는 문구를 통해서도 같은 이치의 해석을 이끌어낼 수 있다. 불필요한 주장은 서로 감정의 골만 깊게 할뿐이다.


  이런 논란을 바라보면서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근본적인 물음을 되뇌어본다. 한 가지 해답을 <지구촌 혹은 약탈촌 global village or global pillage>이라는 짧은 기록영화에서 찾을 수 있겠다. 요컨대 바닥을 향한 경쟁(race to the bottom)은 온 세계 노동자의 공멸을 가져오고, 그 대안은 사회의 연대, 세계의 연대라고 한다. 이웃나라 노동자는 우리의 경쟁상대가 아니다. 한 나라에서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은 경쟁의 상대가 아니라 조화와 협력의 대상이다. 인간 사이의, 그리고 인간과 자연의 공존과 조화를 향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평소 남을 배려하는 태도를 익히는 게 중요하다. 그 규모야 작든 크든 공동체에서의 삶을 통해 세상은 남과 같이 살아가야 하는 곳이라는 걸 체득할 수만 있다면 문제는 풀린 것이나 진배없다. 교육은 생존능력과 사회(연대)성을 길러주는 것인데, 사회성이 더욱 중요하다는 어느 철학자의 이야기가 새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