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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과의 동침’, 최대한 좋은 점만 얻어내라!
작성자 이** 작성일 2003-10-15 조회수 1434

  편집자주: 98년부터 3차례동안 단계적으로 진행된 일본대중문화개방. 이것이 내년 1월에 있을 4차 개방으로 방송과 극장용 애니메이션을 제외한 전 부분 개방된다.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과 역사적 교류관계를 통해 앞으로 대중문화개방에서 우리의 자세를 조명해본다.

 

  공식적 교류의 시작, 조선통신사
  1404년 조선과 일본과의 친밀관계가 성립되자 조선에서 일본의 막부장군에게 보낸 공식적 외교사절단이 ‘조선통신사’이다. 조선통신사가 일본으로 건너간 이유는 주로 왜구금지를 요청하는 사안이었으나 임진왜란 이후에는 포로쇄환 및 일본국정탐색의 일을 하게 된다. 우리 대학교 일본연구소 손주언 조교의 말에 따르면 조선통신사를 통해 우리나라와 일본이 공식적으로 문화교류를 시작했다고 한다. 
  기본적으로 중국으로부터 유교의 영향을 일찍 받은 우리나라는 중국에게는 사대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일본은 과소평가 하려는 경향이 강했다. 반면 일본은 우리나라를 통해 유교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려 하였다. 그 이유는 유교가 계급적, 수직적사회 이데올로기에 잘 맞아 신분제도 내 상하구분을 명확히 하는 힘이 있음을 일본의 권력계급들이 파악했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일본은 유교를 받아들이면서 우리나라에 고구마, 담배, 고추 등을 전해주게 된다.
  우리나라 조선통신사들은 여러차례 방문을 통해 문화적으로는 일본을 평가하지 않았으나 군사적, 경제적인 면에서는 우리보다 우월하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조선통신사는 일본의 우월한 면보다 예의없고 야만적이라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이러한 내용은 그들의 견문기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같은 성끼리도 혼인을 피하는 일이 없어 사촌끼리 서로 혼인을 한다. 형수나 제수도 과부가 되면 거느리고 부양한다. 음란하고 더러운 행위는 짐승과 다를 것이 없으며 집집마다 반드시 목욕탕을 설치하고 남녀가 함께 벌거벗고 목욕하며 벌건 대낮에도 서로 정을 통한다”(제9차 통신사 제술관 신유한)
  일본인들은 이러한 조선통신사의 거만한 태도에 대해 비꼬는 시들을 워낙 많이 지은 나머지 책으로도 냈다고 한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일본에 대한 연구가 조선후기 실학자들에 의해 체계적으로 이뤄졌는데 대표적 인물로 정약용을 들 수 있다. 정약용은 임진왜란 이후 다시 일본이 우리나라를 쳐들어 올 경우 어떤 경로로 진격할 것인가에 대한 예상 등을 연구했다.
  하지만 이러한 일본에 대한 연구도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소홀해지게 된다. 이 때 메이지유신을 통해 근대화를 성공한 일본은 대륙진출 발판을 마련하고자 우리나라에 침입, 식민통치를 하게된다.
 
  일본의 통치, 그리고 해방
  36년간의 일본 식민통치시기에는 일본문화가 일방적으로 우리나라에 들어오게 된다. 무단통치에서 문화통치로, 그리고 민족말살통치를 거쳐 우리의 많은 부분이 철저히 일본의 자본과 기술에 종속됐다.
  또, 일본을 통해 서양의 근대화된 문물이 우리나라에 전해지면서 현재 대중문화의 기본적인 틀이된다. 이렇게 들어온 서양문물은 일본에 의해 변형된 것일뿐더러 우리나라 자체적인 해석과 검증을 거치지 않아 서양에 대한 왜곡된 의식을 심어주는 계기가 됐다.
  더불어 출판, 신문, 방송, 영화, 가요, 만화 등 모든 분야에서 일본이 우리에게 영향을 끼치지 않은 것이 없을 정도이다. 이러한 영향력은 지금까지도 이어져 역사스페셜, 진품명품 등 TV 프로그램, 스포츠신문 등 많은 문화요소가 일본의 것을 모방하거나 일정부분 베끼고 있다.
  해방 후, 65년 한일국교정상화가 이뤄짐에도 불구하고 민족적 앙금과 일본문화가 우리나라에 끼칠 악영향 등을 우려해 정부는 일본 대중문화의 유입을 막아왔다.

  신세대들의 등장
  하지만 80년대 소련의 몰락으로 이념에 대한 문제와 갈등이 쇠퇴하게 되는데 이 과정 속에서 우리나라의 대중문화는 급격히 시장화, 소비상품화 된다.
  이에 따라 기성세대의 영향력이 줄고 대신 신세대가 대중문화의 핵심으로 등장하게 된다.
  신세대의 기성세대보다 개방적이며 민족성을 크게 따지지 않는 성향에 따라 자연스럽게 일본문화개방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그 예로 만화에 대한 기성세대와 신세대간의 인식 차이를 들 수 있다. 기성세대가 만화는 아이들이나 보는 단순 ‘놀이거리’에 불과하다고 느낀다면 신세대들은 만화 속에서 즐거움 뿐 아니라 의미를 찾을 수 있는 ‘문화’라고 생각하는 것이 그것이다.
  이러한 문화개방에 대한 여론이 커짐에 따라 98년 1차적으로 한일 정상간 ‘파트너쉽 공동선언’을 통해 국제영화제 수상작, 만화 등을 개방했다. 99년에 있었던 2차 개방에는 일본가수가 2천석 이하 규모의 실내장소에서는 대중가요공연을 할 수 있게 됐으며 2000년 3차 개방을 통해 12세쪾15세 관람가 영화, 스포츠, 다큐멘터리, 보도프로그램 등을 허용했다.
 
  4차 개방과 우리의 자세
  내년 1월에 있을 4차 개방에서는 일본 극장용 영화를 비롯해 일본어 음반, 게임기용 비디오 게임 등이 추가됨에 따라 사실상 완전 개방된다. 그러나 언론과 관련업계 전문가들은 ‘낙관적’이거나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그 이유는 일본대중문화의 3번에 걸친 개방이 우리대중문화를 잠식 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별다른 파급효과를 못 일으켰고, 이미 들어올 만한 것들은 음성적으로 유입돼 특별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다만 극장용 애니메이션이나 출판 쪽은 일본의 기술력과 자본이 워낙 높아 우리나라 시장이 잠식당할 수도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일본대중문화 전면개방을 맞이하는 우리의 자세에 대해 노성환 (일본어 일본학과) 교수는 “일본문화 완전개방 시 국민들의 분별력있는 안목이 필요하다”며 “좋은 문화는 적극 수용하고 일본과 경쟁을 통해 우리나라만의 문화적 역량을 키우는 기회로 삼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과거 일본과의 관계에서 불이익을 당한 것도 일본을 많이 알지 못했거나 굳이 알려고 하지 않았던 사고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대중문화개방에서 긍정적 효과를 많이 얻기 위해선 이해와 연구를 통해 정확히 일본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